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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19. 2023

이번엔 제가 잡아 드릴게요

실내엔 은은한 캐럴이 울리고 어둑한 창 밖으로 하얀 솜사탕 가루가 아련하게 내린다. 오랜만의 눈으로 움츠려든 어깨 사이로 사람들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 마음을 같이 나누면 좋으련만 가슴에 냉기만 감돌고 설레어야 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둘째 아이가 기침이 심해지다 종당엔 폐렴으로 넘어갔다. 대학병원을 들락 거리며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그 기간 나는 새벽수영을 가지 못 했다. 살면서 민원을 처음 넣었고 잘 해결되기를 바랐다. 9개월의 정든 마음을 담아 강사님의 처우가 개선되고 다시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내용을 보냈다. 다른 분들도 시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기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면담에 나오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실망한 마음을 감추고 애써 웃으며 반드시 강사님이 재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할 테니 1월에 수영장에서 만나자고 당당하게 말했다. 샤워 후 수영친구와 어떻게 민원을 넣어도 소용이 없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어보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일주일 동안 선생님을 못 뵈어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수업 때 나가 물어봤어야 하는데 마음이 입술로 옮겨져 종종 대었다. 띵똥. 2024년 1월 수영장 운영안내 알림이 왔다. 평소 오던 날짜보다 조금 늦어서 어떤 내용으로 왔는지 잠금을 해제하는 손길이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아래로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변경되어 오히려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었다. 해결이 잘 된 게 아니라 강사를 새로 뽑았구나 달라진 종목을 보며 더 이상 희망을 걸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울고 웃기는 글빨 좀 받는 작가 아니었나? 더 잘 써서 설명했다면 달라졌을 텐데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끌어안고 동동거리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친구는 내일 접수인데 선생님도 그만두고 날도 추워서 등록을 안 하겠다고 전화를 주었다. 나 역시 날씨가 추워서 여기까지만 할까 하는 생각과 강사님이 바뀌어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혼란했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축축 쳐지는 기분에 스팸인데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내일 병원예약으로 전화가 울리나 싶어 받았다. ㅇㅇ수영장인데 민원주신 소로소로씨 맞냐며 물었다. 네 맞아요 제가 소로소로입니다. 민원을 넣은 게 다 알려졌나 순간 당황했지만 다닐까 말까 하는 마당에 두렵지 않았다. 시청직원 주사인데 수영장 운영문자 받았냐고 물어봤다. 이젠 별 걸 물어보는군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분은 한 톤 밝아진 목소리로 다음 달에도 꼭 등록해서 새벽수영 계속하시라며 해결되어 직원들이 근무한다고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강사님들 처우도 개선되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뻐 감사인사를 몇 차례 말씀드렸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가족



다시 본 문장 속엔 누군가의 가족이오니 가족이다 생각해 주면 가족처럼 다가서겠다는 문장에서 멈췄다. 9개월 동안 만난 강사님은 가족처럼 나를 가르쳤고 나오지 않으면 왜 안 나왔냐 힘들면 당장 집으로 가셔도 된다고 농담할 사이가 되었다. 배영 할 땐 다리가 평영에서 손이 잘 안 되어 손을 잡아주고 다리를 밀어주셨다. 덕분이 얼음장같이 추운 새벽에 일어나는 힘을 불어넣어 주신 강사님 얼굴이 떠올랐다.



수강생의 팔과 다리를 잡아주시는 강사님 이번엔 제가 잡아 드릴게요. 손 놓지 말고 오랫동안 만나요. 다시 일 년이 채워진 오늘 하늘에서는 하얀 함박눈이 내려요. 보고 계시죠? 강습 때 더 많이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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