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글쎄 뭘까 생각에 잠기는 척 먼 산을 바라봤다. 독서라고 말하기에 아는 작가도 없고 아직 독서보다 누워서 폰을 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몸이 알고 있다.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조차 책 대출과 반납 흐느적거리기 아이들 병원투어 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그랬던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새벽수영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8할은 물개강사님 덕분이다. 초급 남자선생님의 유머러스는 딱 초급까지였고 중급에서 만난 물개강사님은 물면 개가 된다는 전설에 따라 발 엉덩이 배까지 후려치며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힘들면 집으로 가셔도 된다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로 어깨를 지지라는 독한말도 이제는 그냥 웃어넘기는 사이가 되었고 힘이 들어 다리를 떨면 뱀장어들처럼 왜 이러냐고 손을 파르르 떨면서 강습해 줬다. 이런 스타일이 선생님의 유머구나 이제야 웃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새벽수영을 얼마나 했나 개월수가 단박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꽤 근사한 9개월 차에 이르렀다. 날이 추워져 따뜻한 극세사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란 어지간한 의지로는 힘들다. 새벽 수영의 비결을 전수해 준다면 첫 번째 5시 20분 알람이 울리면 1초의 미적거림도 없이 핸드폰을 쥐고 일어난다. 두 번째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 논하기 전에 늙어 걸어 다닐 힘 없이 죽을 것이냐 건강하게 천수를 누릴 것이냐 상기를 시킨다. 세 번째 신속하게 양치를 하며 거울에 한마디 외친다 대단하다!! 장하다!! 외쳐도 사실 여기까지는 마음이 흔들린다. 네 번째 수영바구니를 챙겨 신발을 신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사실 문 손잡이에 차가움을 느낄 때 제일 흔들리지만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 95% 성공이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똥배도 들어가고 셀룰라이트 팔뚝과 등살이 나가떨어졌다. 뭔가 일자 허리도 조금 잘록해진 거는 기분 탓 정도로 하겠다. 초급 중급을 지나 상급반에 당당하게 입성하며 기존 상급반 회원들을 고급으로 올리고 중급 회원들이 치고 올라온다. 아직 평영이 완벽하지 않지만 수영이 마냥 싫지 않은 걸 보면 강사의 능력이 만랩이라고 칭송하고 싶다. 흐느적 힘없는 뱀장어 같은 다리에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어 주었다.
12월 첫 강습이 시작되었다. 으흐흐 중급에서 온 애송이들아 안녕~ 상급반 3개월 차다 오늘부터 너희들의 헉헉 거리는 모습을 보겠다며 으쓱해졌다. 당당하게 3번째 줄에서 시작했다. 역시나 중급에서 올라온 10명은 차원이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고 그렇게 50분의 강습이 끝나며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쳤다.
강사님은 이번달에 무조건 평영 마스터해야 합니다. 평영은 사실 발차기가 발등이 아니라 더 어렵다며 두 달은 해줘야 완벽한 발이 되는데 강습이 주 2회라 8회 절대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2달 꼬박해야 완성되는데 왜 8번 이야기를 하지 갸우뚱거리자 이번달까지 강습하고 다음 달엔 쉰다고 말씀하셨다.
수강생들은 왜 그러냐고 여기까지 올라오게 만들어주셨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한 참 뜸 들인 강사님은 관장님이 연차, 월차,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강사들 전부 계약 만료 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말과 3차 공고가 나왔지만 강사를 구해지 못 해 수영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루이틀이 지나자 기존 회원들도 강사님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강사를 못 구하게 되면 전체 자유수영으로 변경될지도 모른다는 말과 이미 조건이 안 좋은 걸 알지만 돈 때문에 분명 다시 채워지겠구나 싶었다. 결국 약자의 복지는 달라질 것이 없으니 말이다. 강사님이 마스크를 쓰고 수업할 때 이상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칠 일인가 샤워실에서 씻을 때 코로나에도 저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행여 옮길까 다른 구역에서 샤워하기도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니 피했던 내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세상은 넓지만 인간관계는 손바닥 만한 게 국룰이다. 건설회사를 다닐 때 이력서에 있는 현장명을 보고 아는 지인을 총동원해 평판을 꼬치꼬치 물어보는 모습을 적잖이 봤다. 이직을 하고 회사 내 부당함을 고발한다면 개선이 되었을까 전혀다 말한 사람이 매장당하고 되바라진 사람이 되는 게 더 빨랐으니 말이다. 그나마 정직원은 테두리에서 그들만에 보호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 범주안에 들지 못 함으로 고발과 보호는 가당치도 않았다.
수영강사님들의 처우를 위해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이 시대 연차, 병가로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니 변한 게 없구나 놀라웠다. 단체로 그만두는 모습을 보노라 관장의 지독함을 혀를 내둘렀다. 여전히 일을 하려면 부당함을 외치기엔 아직인가 싶다.
올린 민원은 어처구니없게 담당 시청이 아닌 상수도사업본부로 배정이 되었다. 시청으로 배정되어도 될까 말까 한 민원이 상수도사업이라니 갈길은 멀고 험해 또다시 내 전화기는 바삐 움직인다. 단 한건의 민원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그냥 바라볼 자신이 없어 작은 목소리를 전달했다. 그들의 처우가 조금은 개선되기를 아플 때 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지기를 바란다.
물면 개가 된다는 별명과 가르침에 진심인 강사님이 1월에도 내 이름을 호명해 주길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본다. 행여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환한 미소로 격려해 주신 덕분에 새벽 루틴을 지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