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소로 Mar 05. 2024

노답이라 쿠팡 알바를 갑니다

노답(no答)
‘답이 없다’는 뜻으로, 어떤 상황에서 해결 방법이 없거나 어떤 사람의 행동이 변변치 않음을 이르는 말.



74일 긴긴 방학이 괜찮을 줄 알았다. 아이는 특별하게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성격이고 어미 또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스케줄을 만들어 초등생활 원 없이 놀았구나 한 번쯤 쉼을 경험해 주고자 했다. 방학 절반이 지난 2월이 되자 아이가 아닌 어미의 마음에 균열이 서서히 갈라지다 메울 수 없는 싱크홀이 생겼다.



커다랗게 뚫려버린 시커먼 구멍은 가까이 갈수록 두려워 쳐다볼 수 조차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은 소름 끼치도록 두려워 뒷걸음쳤다.  추워서 그럴 테니 따스한 바람이 뺨을 스칠 때면 싱크홀을 마주할 용기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설연휴가 지나 따스함은 내 곁에 다가와줬고 불안도는 정반대로 치솟았다. 첫째 아이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둘째 입학식이 기다리고 있고 더 가열하게 살아야 함을 외면한 대가는 처절했다.




맞벌이지만 외벌이만큼 작은 주머니 속상정은 나아지질 않아 아이에게 적당한 결핍은 필요하다 둘러 말했지만 간간히 미안했고 그간 보내주지 않던 둘째 미술학원은 입학과 동시에 꼭 보내주리라 약속한 터라 마음 분주했다. 구도심 아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예체능 학원이 없기도 하고 어려운 경기 탓에 차량운행도 끊겼다. 기대하는 초롱초롱한 둘째 눈을 볼 때면 맨밥에 물 말아먹는 사람처럼 처량하고 먹먹했다.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데 머릿속 움직이질 않는다.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기 늦은 나이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 생각해 봐도 모르겠고 잘하는 게 무엇이냐 질문에 입술만 달짝 거릴 뿐이다. 단기 계약직이 간절하지만 아이가 아프면 머리 조아려 못나겠노라 고해야 하는데 사정을 봐주는 일자리는 단언컨대 없다. 그것이 싫어 차린 카페는 폐업이 눈앞에 이다. 이렇다 할 선택지는 없다인지 아니면 이 정도 간절 타격감을 모르는 사람은 아닌데 분간 못하는 나란 사람이 싫다.




아이는 엄마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하는 줄 알고 우리 부자 되는 거냐 물어보곤 했다. 언제부터 일하러 가는 거야? 질문할 때마다 엄마가 일하러 가면 너희 둘이 저녁밥 차려 먹고 있어야 하는데 할 수 있냐는 말에 아이는 입을 다문다. 멀리 내다보고 퇴근이 7시인걸 잘 알아봤더라면 다른 일을 찾았을까?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성급함을 탓하기엔 두어 달 남짓 자격증은 내 손안에 잡힐 것이다.




마음을 너무 잘 알았던 동네 친구는 쿠팡알바를 가자고 제안했다. 집 근처에서 알바를 하는 그녀도 둘째가 학교에 입학하자 씀씀이는 줄여서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라 함께 알바를 신청했고 그 어렵다는 쿠팡알바를 덜컥 보기 좋게 나만 확정 문자가 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나 혼자 가려니 슬그머니 불안도가 치솟았지만 2월 매출집계표와 둘째 미술학원이 오버랩되며 단칼에 불안함 보다 돈의 위력으로 잠재웠다.



말로만 알바라도 해야겠다 읊조리던 아내가 진짜로 쿠팡알바 간다고 하자 남편 눈이 휘둥굴 해 졌다.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미술학원 보내줄 거야란 말로 더 이상 질의응답은 멈춰버렸다. 농담처럼 각자 한 아이 학업은 책임지자로 했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진즉 뜨끈한 돈 맛을 아는 나인데 차곡차곡 모아 누군가를 위해 쓰는 그 맛은 황홀하고 아이에게 들어가는 그것 말해 무엇하나 씩씩하게 알바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나왔다.



노란색 셔틀이 서서히 다가왔다. 쉼 호흡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탑승계단에 발을 올린다. 두리번두리번 어느 누구 하나 눈길이 마주치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차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가시자 쿰쿰한 공기가 코끝에 훅 올라왔다. 서서히 눈시울이 흐릿하게 뜨거워지고 목구멍이 따갑게 울컥 차오른다. 야간 포장알바를 하게 되다니 자기 연민이라면 좋았을까 단기 알바라도 생겨 감사함을 느끼는 여유도 내겐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자기 검열에 답이 없는 한심함이 밀려왔다. 무섭게 달리는 셔틀버스 사이 차량 불빛만이 나를 조롱한다. 자기 주도적 평탄한 삶에 정답을 내놓았던 결혼 전과 달리 마흔 살 직업을 잃은 엄마는 젊은 시절 이것저것 알바라도 경험했다면 나았을까 후회가 밀려다. 졸지에 쿠팡 일용직 아르바이트생이 돼버린 슬픔이 아니라 이루고자 간절한 바람도 무엇을 해야 할지 해결방법을 내놓지 못 한 나에게 보내는 아련함이다.



주어진 궁색 맞은 기분은 딱 20분이었다. 셔틀에 내려 두리번거리는 여유는 인생초보다. 뭐로 가든 남들 따라 하면 평타라고 했다 그들이 직진이면 나도 직진이다. 신규 표지판에 어색함은 친절한 시스템 덕분에 느낄 수 조차 없다. 모든 것은 사람과 마주함이 아닌 핸드폰과 일체형을 이룬다. 입사도 어플 차량셔틀도 어플 출근 로그인도 어플 모든 것은 스마트 시스템으로 무장했다. 인사카드는 큐알바코드 코팅지와 마주하는 신박함 어질어질 아찔하다. 쿠팡관계자와 마주하는 시간 단 3초 로그인 확인과 작업복 사물함 위치안내가 끝이다.






단순화된 시스템은 속전속결 생각 겨를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음식도 앉은자리에서 주문과 결제까지 가능한 시대 알바도 걸맞게 온라인과 함께하니 혼자 일하다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오래지 않아 포장 알바도 없어질 것이다. 무엇을 할 거냐 물음에 답 하지 못한 노답이라 쿠팡 알바를 왔고 구덩이를 마주 보는 내게 두려워 말라 말하고 싶다. 정답 없음이 포기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민준 씨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전 없다고 생각해요."
" · · · · · · ·."
"없으니까 각자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찾은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요."
" · · · · · · ·네."
"그런데 못 찾겠어요."
" · · · · · · ·뭘요?"
"의미요.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내 삶의 의미는 사람에 있을까? 아니면 우정일까? 책일까?
서점일까? 어렵네요."
" · · · · · · ·."
"찾고 싶다고 해서 금방 찾아지진 않을 거예요. 그렇겠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_。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 7천만 원짜리 포트폴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