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ui Dec 16. 2022

당신의 운전은 어떻습니까

쌍라이트 발사~ ; 뉴질랜드에서의 쌍라이트 사용방법 101

섬뜩한 TV광고가 기억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뭐, 대충 이런 느낌의 아파트 광고였다. 21세기에 옛날 봉건시대에나 나올 법한 문구로 만든 광고라니. 

이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는 미뤄두고자 한다. 길어질 것 같으니. 


나는 이와 비슷한 말을 혼자 되뇌며 운전을 한다. 


“What you drive doesn’t tells who you are, but how you drive tells who you are.”

당신이 몰고 있는 차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운전하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진정 이렇게 믿는다. 그래서 항상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운전하려 애쓴다. 길에서 애스턴 마틴이나 람보르기니를 보고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내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때가 아니라 그 대단한 차를 가지고서도 신호를 딱딱 지켜가며 운전할 때이다.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지키는 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든 뉴질랜드에서든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운전하는 사람들이야 나름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난 그런 사람들을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에서 일반적인 시내 도로의 주행속도는 시속 50km이다. 오클랜드 시내 다운타운의 제한속도는 시속 30km로 느림보 통행이다. 지하철을 만드느라 여기저기 공사도 많이 하기도 하지만 규정속도 자체를  확 줄였다. 

모터웨이라고 부르는 고속도로는 시속 80~100km이다. 요즘은 오클랜드에서 해밀턴까지 가는 일부 구간, 해밀턴에서 타우포까지 가는 일부 구간이 시속 110km로 상향되었다. 


어린이 보호구간도 있다. 학교 주변을 지나갈 때 자세히 보면 School Zone 표지판이 보인다. 

보통 학교 시간은 아침 9시에 시작하고 오후 3시에 끝난다. 초중고 모두. 

어린이 보호구간 시행 시간은 학교 시작 35분 전에, 학교 끝나고 20분 정도 운영한다. 이때는 속도를 시속 40km로 줄여야 한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운전자들의 운전습관 중에서 가장 차이 난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운전자들에 대한 배려심인 것 같다. 

서울에서 운전할 때 방향 지시등을 켜기만 하면 어찌나 뒤차들이 달려들던지. 미리 충분히 거리를 두고 깜빡이를 켰는데도 어느새 바짝 붙어서 들어갈 틈을 찾기가 힘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여유를 갖고 들어오게 해주는 운전자를 찾기가 더 어려웠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길도 깜빡이만 켜면 쉽게 양보를 해준다. 이렇게 쉬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뉴질랜드의 교통환경은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해마다 수입, 판매되는 차량이 많은데 비해 교량과 도로와 신호체계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도로를 늘리기 위해 공사도 하고 회전교차로를 업그레이드하는 식으로 바꿔도 그 한계가 명확하니 교통 체증이 늘 심하다고 느낀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한국에서 상향등을 여러 번 깜빡이는 경우는 주로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조심하세요] 보다는 [하지 마]라는 느낌. 


뉴질랜드에서의 상향등 사용은 주로 상대방 운전자를 배려할 때 사용한다. 

차선을 변경할 때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상향등을 깜빡여 내 주의를 끄는게 보인다. 작은 지선에서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서야 할 때면 어김없이 너그러운 어느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고 상향등을 번쩍인다. [얼른 들어오세요, 제가 천천히 갈게요.]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렇게 들어온 차량이 배려해준 운전자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들거나 비상 깜빡이로 감사함을 표현하면 

[네, 별말씀을]하는 의미로 상향등을 한두 번 켜서 인사를 받아준다. 

밤중에 운전하는데 차량불빛이 들어오지 않은 차량을 발견하면 그 뒤의 차량이 상향등을 깜빡여 운전자의 주위를 환기시키다. 


모든 상황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운전자를 배려해주는 차원에서 상향등을 사용한다. 

저 멀리 하버브리지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니니 잘 찾아보자.


어느 화창한 오후, 하버브리지를 건너는 중이었다. 

차창 너머로 불어오는 시원하고 상쾌한 여름 오후의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옆 차가 경적을 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러 번 소리를 듣고서야 옆 차의 경적을 인지할 만큼 그다지 크지도 않고 작게 여러 번 계속해서 울려대고 있었다. 고개를 틀어 쳐다보니 옆 차량의 운전자가 나를 향해 이런저런 손짓을 보내온다. 계기판을 보니 다리 초입에서 차선을 바꾸며 켜 놓았던 방향지시등이 미처 꺼지지 않은 채로 깜빡이고 있다. 아마도 내가 계속 켜 놓은 방향지시등 때문에 다른 차량들이 내 옆을 지나가기가 좀 불편했을 듯 싶다. 

고맙다고 마음 속으로 인사하고 그 차량 뒤로, 상향등 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