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해외여행 중 만난 착한 놈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다.
여행 중에 시간을 완전히 착각해 버려서 새벽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 새벽에 숙소밖을 돌아다니는 건 나에게 죽음을 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는데 말이다.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이 아침이라 그보다 3시간은 더 일찍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시간의 역순을 따라 생각하다 보니 새벽 3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도 내가 아니라 이스탄불 첫날 공항에서 나에게 도움을 준 팔자걸음 여행자(이하 A 씨)이었다. A 씨는 몇 가지의 질문만으로 단박에 내가 새벽에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아침 9시 비행기? 그럼 공항에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거예요? 공항버스는 몇 시에 타야 해요?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나 걸려요?”
‘헉 새벽 3시에 나와야 하네…’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에 어버버 거리고 있는 나에게 A 씨는 진지한 말투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시간에 비행기를 예약했냐’라며 타박을 했다. A 씨와 나는 둘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지에서 새벽에 여자 혼자 다닌 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
A 씨는 이대로는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던지 휴대폰을 켜서 그나마 공항버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탈 수 있는 저렴한 숙소를 알아봐 주었다. 그의 따뜻한 오지랖 덕분에 여행 마지막 날,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숙소에서 잠을 자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걸로 계획이 수정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나와야 하는 시간이 새벽 3시에서 4시로 변경되고, 15분간 걸어야 해서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뭐가 됐든 새벽에 나와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기에 본질적인 위험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 씨는 종이 인형처럼 허술하고 힘없는 내 몸을 안타까운 눈으로 잠시 보더니 자신은 여행 일정이 달라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며 새벽에 나와 걷는 동안 별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그 얘기를 듣는데 슬픔과 두려움이 확 밀려들어왔다. 왜 이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하는 자책과 새벽에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일을 당할 거 같은 두려움이 파도처럼 나를 확 덮쳤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나 본 적도 없고, 내 몸을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간 위험한 상황이 생길 줄은 알았지만 여행을 떠나온 지 일주일도 채 안돼서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나 스스로 만든 상황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결전의 이스탄불 여행 마지막 날, A 씨가 예약을 도와준 새로운 숙소로 짐을 옮겼다. 내 옆에는 승민이라는 남자가 캐리어를 끌고 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승민이는 오늘 처음 만난 남자였다.
체코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여행 중이라던 승민이는 나와 동갑에 3주 뒤에 예정된 여행지까지 겹치는 친구였다. 카이막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처음 마주치게 된 우리는 웨이팅을 하는 동안 공통점이 많이 금세 친해지게 됐고, 내친김에 시내 구경도 같이 하게 되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해 영화의 명장면을 팔 한쪽에 검은색 타투로 새긴 승민이는 무언가 낭만과 감성을 즐길 줄 아는 친구처럼 보였다. 타투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승민이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다 해결될 일이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 그리고 나와 같은 휴대폰 기종으로 건물과 풍경 사진으로 열심히 찍는 모습에 특히 그래 보였다. 나는 같은 기종을 쓰면서도 ‘이걸로 사진 찍으면 진짜 이상하게 나온다’라고 친구들에게 휴대폰에 대한 험담을 시원하게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승민이는 사진이 이상하게 나오는 휴대폰이어도 사랑을 담아 찍으면 결과물이 썩 괜찮게 나온다는 걸 관광하는 동안 말없이 행동으로 알려줬다.
우리는 그날 저녁에 다시 만났다.
승민이가 새로운 숙소로 짐을 옮기는 걸 도와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낮에 관광을 하는 동안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승민이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숙소는 미친 변태 주인이 있다는 것, 그 아저씨가 첫날에 캐리어를 4층 계단까지 옮겨줬는데 이따 숙소를 옮길 때 나 혼자 어떻게 들고 내려와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 내일은 새벽에 나와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두렵다는 것 등을 말이다. 가족에게 말하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들을게 뻔해서 못했던 말들을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처음 본 타인이라는 이유로 승민이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승민이는 맑은 소 눈망울 같은 눈을 끔뻑거리며 듣더니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자신이 이따 숙소 옮기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다. 자신도 교환학생을 처음 갔을 때 이리저리 헤매면서 다녔다면서 말이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남일이 아니었던지 승민이는 자신이 유럽 교환학생을 갔을 때 겪었던 일화들을 말해주며 조심해야 할 상황을 거듭 강조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절대로 영어 하는 티를 내지 않기!’ 말이다. 자신이 친구와 유럽 여행 중에 밖에서 노숙할 일이 생겼는데 누군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왔고, 승민이는 무시하며 갔지만 친구는 영어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친구가 영어를 한덕에 그 사람은 친구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무언의 협박을 했고 결국 친구는 돈을 뜯겼다고 했다. 승민이는 자신이 영어로 대답하지 않은 덕에 돈을 뜯기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했고, 나는 당장 내일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침을 꼴깍 삼키며 조언을 새겨들을 수밖에 없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했던가?
승민이가 짐 옮기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날이 될 뻔했다.
밤이 되니 트램(전철)이 가다 말고 역행을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긴 덕에 버스를 타고 환승을 거쳐 숙소까지 빙빙 돌아가야 했다. 심지어 버스는 도착 예정시간조차 뜨지 않아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었다. 혼자였을 때 차가 쌩쌩 다니는 어두운 버스정류장에서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면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게 뻔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승민이도 당황해서 생각에 잠겼다. 이어 승민이는 구글맵에 타라고 나오지 않았지만, ‘탁심’이라는 곳에 간다는 글이 전광판에 써진 버스를 그냥 타자고 했다. 자신의 교환학생 경험을 근거를 들며 생각보다 구글맵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차분하게 설명도 해주었다. ‘탁심’이라는 곳 근처에 숙소가 있는 건 맞았기에 승민이의 말대로 더 늦기 전에 전광판에 ‘탁심’이라는 글이 써진 버스가 다가오자 냉큼 올라탔다. 하지만 타면서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구글맵에 타라고 나와있지 않던 버스였기에 갑자기 이상한 데로 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우리가 예상하는 탁심이 아니라 영 엉뚱한 탁심에 내려주면 어떡하지?”
라는 질문을 하니 승민이가 괜찮을 테니 자기를 한 번만 믿어보라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자기도 처음 온 여행지에 처음 타는 버스라 아무것도 모르는 데 말이다. 영 미심쩍으면서도 지금처럼 한 치 앞도 모를 때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승민이와 함께 어딘가로 덜컹 거리며 흘러갔다.
이 세상엔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이 진짜였다.
승민이가 유럽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여행의 지혜를 배운덕에 무사히 원하던 곳에 심지어 환승 없이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머리만 좋지 실속 없는 구글맵보다 직접 부딪히며 배운 사람의 경험이 더 빛나는 순간이었다. 승민이는 역시 한 번에 올 줄 알았다며 웃으며 말했지만, 자신도 내심 걱정이 됐는지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두고 있었다. 혹여나 이상한 곳으로 간다면 바로 내려서 택시를 탈 심산이었다고 한다. 그래봤자 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면서 말이다. 승민이는 내가 의심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어떻게든 날 안전하게 숙소까지 데려다줄 궁리만 하고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진심으로 호의를 베풀어 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의 계획적이고 정이 넘치는 성격 덕분에 안도의 한 숨을 푹 내쉰 채로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는데 아뿔싸..
가는 길이 음산하고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이상한 냄새도 났다. 무엇보다 노숙자들이 띄엄띄엄 길에 앉아서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탓에 빈민가에 위치한 숙소였던 것이다. 승민이가 없었다면 소매치기든 삥 뜯기 든 무슨 일을 당하기 딱 좋은 거리임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승민이는 “여길 정말 너 혼자 왔으면 큰 일 날뻔했네. 같이 와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며 나를 숙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줬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 살면서는 이런 호의를 받아본 적도, 그리고 베풀어 줄 생각도 못했기에 승민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충격을 받았다. 캐리어를 숙소 1층까지 내려다 준 것, 트램 같이 타준 것, 버스도 같이 타주고 심지어는 숙소 앞까지 데려다준 게 충격의 연속이었다. 처음 본 사이인데 자신의 돈과 시간을 기꺼이 써가며 호의를 베풀어 주는 동갑내기 남자를 인생 살면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 승민이가 고마우면서도 노숙자들을 지나 다시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게 걱정되어 숙소까지 혼자 잘 갈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승민이는 여전히 소 눈망울 같은 눈을 끔뻑 거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 잘 갈 수 있지”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고, 걱정되는 눈으로 지켜보는 나를 뒤로하고 다시 노숙자들 사이로 태연히 걸어갔다.
길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던 승민이는 그렇게 내가 이스탄불 여행 중에 만난 가장 착한 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