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해외여행 중 만난 이상한 놈
모두가 잠든 이스탄불의 야심한 새벽, 나는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30분, 공항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린다. 혼자 새벽에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죽겠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전 날 밤에 숙소를 옮기면서 이곳이 빈민가에 위치한 숙소라는 걸 그제야 알아챘기 때문이다. 길 곳곳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노숙자들, 바닥엔 이리저리 널브러진 쓰레기들, 거리를 가득 채운 음산한 공기까지 이보다 더 최악일 순 없었다. 혼자 여행을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맛 좀 보라는 듯이 하늘에 있는 이름 모를 신이 골탕 먹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과연 새벽에 저 거리를 무사히 통과하고, 버스정류장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숙소로 오는 길에 봤던 음산한 풍경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걱정이 돼서 밤엔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걸 나 혼자 오롯이 헤쳐나가야 한다니.. 혼자 떠난다는 건 엄청난 자유를 주기도 했지만, 그 자유뒤에는 끝없는 위험이 도사린다는 걸 그제야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명백한 현실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잠도 안 와 어떻게 하면 그나마 안전하게 갈 수 있을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걱정 때문에 잠을 겨우 한두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피곤에 절어 비몽사몽 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내 온 정신은 지금 어떻게 하면 15분 동안 무사히 갈지에 온통 쏠려 있어서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와 캐리어에서 삐쩍 마른 팔다리를 가릴 긴 점퍼와 긴바지로 갈아입었다. 긴 옷으로 팔다리를 가려서라도 내가 약하다는 걸 1mm의 틈이라도 보이지 않게 숨기고 싶었다. 점퍼는 한 여름이지만 목까지 지퍼를 채워 올렸다. 히잡을 쓸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을 정도로 내 모든 몸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꽁꽁 가리고 싶었다.
새벽 4시 30분.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숙소 밖을 나서기 전에 거울로 지금의 내 상태를 봤다.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라니.. 한숨밖에 안 나왔다. 공포스러우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비상경보 알람이 잔뜩 울리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부터 내 계획은 단 하나. 15분 동안 앞과 지도만 보고 걷는 것이다. 옆도 안 보고 뒤도 절대 안 돌아보기도 했다. 그저 앞만 보고 씩씩하고 빠르게 당당하게 걷기로 했다. 이런 일은 처음도 아니라는 듯이 익숙하게 걷기로 했다. 고양이가 하악질을 할 때처럼 몸 뚱아리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크게 만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숙소 밖을 나섰다. 모두가 곤히 잠든 고요한 적막 속에서 캐리어 바퀴와 돌바닥이 드르륵드르륵 거칠게 부딪히는 소리만이 거리에 울릴 뿐이었다.
집을 나선 지 1분이 지난 시점. 가장 두려운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어제 보았던 지저분한 행색의 노숙자들은 죄다 그 코너뒤에 있었다는 걸 알기에 심장도 점점 크게 뛰기 시작했다. 어제는 승민이가 도와준 덕분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지만 지금은 혼자이고, 야심한 새벽인 데다가 캐리어마저 큰 소리를 내는 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던 상황이었다. 꽹과리를 꽹 꽹 치며 호랑이굴로 제 발로 걸어가는 심정이랄까? 지금의 내 상황을 드라마의 대본으로써도 설정이 너무 과하다며 시청자들에게 항의전화가 빗발칠 정도로 진심으로 바보 같은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너를 돌자마자 동공이 풀린 채로 벽에 멍하니 기대앉아있는 노숙자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소름이 확 끼쳤다. 이대로 노숙자가 일어나서 쫓아올 거 같다는 두려움이 확 밀려들어와 속으로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겉으로는 더 빠르고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