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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보다 낭만적이었던 쥰(1)

열기구 천국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자

by 뭉지

지구 어딘가에서 가장 로맨틱한 일이 벌어 나는 시간 새벽 4시 30분. 화르륵하며 불이 하나 둘 켜지면 열기구가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 열기구 속에서 입을 맞추고, 누군가는 그 열기구를 배경 평생을 약속한 사람과 웨딩사진을 찍는다. 모두가 낭만 속에 취했을 때 나는 이곳에서 만난 '쥰'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쥰이 이 풍경보다 더 낭만적인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온 쥰은 나와 같은 도미토리에 머물던 여자였다. 첫 등장부터 밝은 햇살 같았던 쥰은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며 '어디서 왔어?' '이름이 뭐야?' '어쩌다 오게 됐어?' 등의 스몰토크를 자연스레 내게 걸어줬다. 여행 중에 같은 동양인 여자가 먼저 나서서 인사해 주는 건 처음이었기에 쥰의 스몰토크가 내심 반가워 나도 적극적으로 대답을 했다. 이어 쥰은 신기한 능력 하나를 내게 보여줬다. 바로 '개떡 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 영어를 아무렇게나 뱉어도 내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척척 알아들었던 쥰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단어로 계속해서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런 쥰의 능력에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채로 대화를 해나갔다.

쥰은 한 달간 튀르키예에 자유여행을 오게 됐다고 했다. 이곳 카파도키아에서 3일 정도 머무른 후, 렌터카를 빌려 다른 도시들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 쥰은 내 눈에 우리 엄마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였다. 50대의 여자가 혼자서 그것도 진취적으로 해외여행을 한 달간 한다는 생각에 나는 쥰이 꽤 멋진 커리어 우먼일 것만 같았다. 짧은 미니 스커트와 밝은 갈색으로 물든 긴 머리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쥰이 화려한 싱글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거 같아 나는 당연한 듯이 쥰에게 싱글이지? 하고 물어봤다. 쥰은 웃으며 "아니! 나 결혼했어. 남편이랑은 이 한 달간의 여행이 끝나면 프랑스 파리에서 만날 예정이야"라고 했다. 나는 쥰의 '홀로 한 달간 해외여행 후, 남편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남'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뭐..? 남편이 있는데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결혼한 사람이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 것도 본 적이 없고, 나조차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연인 이 있으면 혼자일 때 누렸던 자유는 포기하는 것‘ 이건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 절대불변의 법칙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홀로 여행을 떠났다니? 심지어 여행이 끝나면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다니? 나는 쥰의 말 하나하나가 우리가 너무도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거 같아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어 나는 쥰이 혼자 여행을 떠날 정도면 남편이 무시 못할 굉장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해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다.

쥰은 조금 민망한 듯이 웃으며 "직업? 음.. 없어. 나 가정주부야"라고 말했고,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가정주부면 남편이 번 돈으로 혼자 한 달간 여행을 왔다는 거잖아? 자기가 번 돈으로 와이프를 혼자 한 달간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했다고?'


아내가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보다 가정주부가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게 몇 배로 충격이었던 나는 쥰과 대화할수록 본능적으로 쥰이 가진 환경이 부러우면서도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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