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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정녕 늦은 나이일까?(1)

by 뭉지


한국 나이로 30살,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정녕 늦은 나이일까?

지중해 바다가 아름다운 안탈리아의 한 노천 식당. 영화 ‘맘마이가’ 떠오르는 분위기의 식당에서 한국인 여행자 세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풀어나갔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남자는 A.


“퇴사하고 친구랑 여행 왔어요” A는 한국나이로 30살이었다. 경상도에서 왔다는 그는 구수한 사투리로 지긋지긋한 직장을 탈출해 여행 중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 어떤 이유로 퇴사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대학 전공을 살려 건설 쪽으로 취업했는데.. 막상 취업해 보니 적성에도 안 맞고 업무 스트레스가 커서 퇴사했어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안 맞는 일을 하는 것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꾸역꾸역 다녔더니 몸에 이상신호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존버는 승리한다’라는 말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나 보다. 존버의 끝에 결국 머리에 오백 원 크기의 원형탈모가 생겨버린 그는 상사에게 코딩을 배우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가 더 이상 버티지 않고, 관심 있었던 직무를 배우겠다며 퇴사했다는 말에 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퇴사를 축하며 다 같이 축하의 짠-을 했다.


그가 시작할 새로운 미래가 같이 기대된 나는 “그럼 이제 한국 돌아가서 코딩 배우시겠네요?”라고 기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코딩 안 배울 거 같아요” “그럼 뭐 하시게요?” “하던 거 다시 해야죠. 다시 건설 쪽 가서 일할 거 같아요” “네?? 도대체 왜요??”

코딩을 안 배우고 다시 돌아간다고?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진심으로 왜 그가 다시 그 원형탈모의 소굴로 들어가려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퇴사하고, 코딩을 배우려고는 했어요. 그런데.. 생각 보니 제 나이가 30이라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거 같더라고요. 해온 게 이것뿐이라 이걸 제일 잘하기도 하고.. 그리고 30이면 너무 늦었어요. 언제 다시 자리를 잡아요…” 라며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용기 내서 빠져나온 지옥을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30살은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은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30살은 늦은 나이라고 자꾸만 대답했다.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몰라’라는 속마음도 그 확신 속에 담겨있어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다. 나는 그의 말처럼 갓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일 뿐이었다. 사회생활 따윈 몰랐다.

사회생활 따윈 몰라 자신과 안 맞는 길이 있는 게 알면서도 자포자기한 사람의 말을 묵묵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그의 친구는 30살이면 늦었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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