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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24. 2024

팀원에게 나갈 것을 통보하던 날


'후....' 한숨이 나왔다.

이 대리에게 다른 곳으로 갈 것을 통보해야 하는 날이다. 

노트를 펼쳤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적어나갔다.  묵근한 마음이 온 몸을 눌러댔다. 조직에서 결정한 사실을, 개인에게 청천벽력처럼 받아들여질 일을 내 입으로 전해야 한다. 이런 상황 내게도 처음이었다.






이 대리는 2년 전 우리 팀으로 왔다. 현장에만 있었으나, 교육을 하고 싶다며 내부 공모에 지원했었다. 두세 번의 면담과 주변의 평판을 들은 끝에, 나는 데려오지 않기로 했다. 5년 이상을 교육과는 너무 다른 영역에서 근무해온 이력과,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성향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나의 상사가 그와 식사를 하더니 이 대리를 받으라고 통보하셨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령화되어 가는 회사에서 흔치 않은 공채 대리이고, 고과까지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탐탁지 않았으나 받아들였다(받아들여야만 했다). 이후 이 대리가 잘 적응하도록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 현명한 길이니.

이 대리의 장점을 살펴보았다. 교육 업무를 하고 싶어 했으니 의지가 높을 거라는 예상, 그리고 이전 부서에서 들은 책임감이 높다는 사실, 두 가지였다.

서 자신감을 갖도와주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 방법 중 하나로 일을 가장 잘하차장님에게 교육의 기본지식과 자세를 가르치도록 요청드렸다.


일주일이 지났다. 두 분이 회의실에 두어 번 함께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문제없이 진행될 거라고 기대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2주째 되던 날 차장님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찾아와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팀장님, 이 대리에게 뭔가 더 가르칠 순 없을 것 같아요. 알려주려고 하면 잘 받아 들이지를 않아요. 지금 본인이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니래요..."


교육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으니, 더 실질적인 스킬을 알려달라는 요구가 많았단다. 차장님이 보시기에는 기초적인 것 조차 모르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게다가, 설명을 할 때 마다 비판적인 피드백을 하니 차장님의 기분까지 언짢아 진다고도 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 또한 이대리와 일을 할 때 벽에 가로막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세 달간은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6개월이, 1년이 지나도 일의 목적과 방향이 자주 어긋났다. 자세히 설명해도 그에 맞지 않는 기획안만 들고 왔다. 수정할 부분을 세세하게 이야기해도 도돌이표였다. 매주 마주 앉아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진도를 체크해도 일정이 늦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협업하는 팀에서의 컴플레인도 종종 들려왔다. 의견 조율이 어렵거나 통보식의 말투가 불편하다는 내용이었다. 팀 내에서도 불평불만을 자주 제기하며 분위기를 다운시키곤 했다. 또래 직원조차 이 대리를 조금 멀리하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잘하는 부분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먼저 인정하고 높여주려고 집중하였다. 면담할 때마다 코칭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며 시나리오도 미리 짜 보았다. 이 대리의 성장을 지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이 직무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또렷해졌다.

나의 객관적 시각도 점점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리에게 메일이 오면 마음부터 철렁했다. '또 무엇을 어디까지 봐줘야 하는 것인가, 반대되는 의견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이대리 앞에서 억지웃음을 짓기 일쑤였고 잘 한 점을 찾아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부문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곧 있을 연간 성과평가를 앞두고 팀원들에 대한 팀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미팅을 요청하신 것이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업무 성과와 역량,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점 등에 대해 자세히 나누었다. 그리고, 이대리 대한 평가를 시작하려는 찰나 부문장님이 먼저 입을 떼셨다.


"이 대리는 어때요? 일도 그렇고, 태도도 그렇고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던데요?"


어디서 들으신 걸까.

부문장님이 말씀하신 정보는 타 부서에서 들려온 평판이었다. 인사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 부정적인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을 근거로 말씀하셨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일개 사원일 뿐인데도 주변의 평가에 노출되어 있고 임원까지 전달된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며, 전무님의 말씀에 어렵사리 동의했다. 그리고 이 대리는 다른 팀으로 전배 보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대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내심 속으로 바라던 방향이기도 했.다.






이 대리에게 전배를 통보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면담 시간과 장소를 알렸다. 시간이 되자, 둘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팅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대리는 주 1회 면담을 해 왔기에 어쩌면 평소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표정과 말투에서 이상한 점을 인지한 것일까. 성과평가 시즌이어서였을까. 유독 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앉았다.


이번 면담에서는 연간 평가에 앞서, 올해 잘했던 점, 그리고 아쉬웠던 점에 대해 얘기해 보자고 했다. 이 대리는 자신이 잘했던 일을 말했고, 나는 기여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이어서 아쉬운 점으로 화제를 돌리려는 찰나, 이대리가 먼저 '저.. 팀장님.' 하고는, 입을 열었다. 시선을 책상에 고정시킨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타 부서, 그리고 팀원들과 협업할 때 소통이 부족한 점, 경직된 생각과 언어들, 목적과 방향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나에게 했던 무례한 언어와 행동들까지. 많이 후회가 된다고,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말들이었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 없이 개선이 필요함을 전하였고, 늘 제자리였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도 받을 만큼 받았었다.

게다가, 지금 이 대리가 지난 과거의 행동이 잘못 되었음을, 향후 노력해겠음을 전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부문 내에서 이미 결론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이 팀에서, 인사 부서에서 나갈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이 대리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감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으며 내가 전해야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면담 상황을 떠올리며 종이에 적고 연습까지 했던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표정관리도 잘 되지 않았다. 단호한 말투만 겨우 유지될 뿐이었다.


"대리님, 대리님 의견은 알겠습니다. 우선 아쉬웠던 업무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이 대리는 업무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점을 두 세가지 언급했다.

이어서 내가 판단한 아쉬운 점을 전했다. 그동안 기록해 왔던 내용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떠올릴 수 있도록 상세하게 전했다. 일의 과정과 결과에서 나왔던 자료도 보여줬다.


이 대리는 모든 것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이 대리의 거처에 대해 말할 차례였다.


"그리고, 업무와는 별개로 말할게 하나 있는데, 얘기해도 괜찮을까요?"

"... 네..."


"대리님은 갖고 있는 장점이 정말 많아요. 책임감도 높고, 정량적인 수치와 근거 기반의 자료 준비도 철저히 하고요. 맡은 바 일을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역량들은 교육보다는 다른 부서에서 더 크게 인정받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리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거나 그릇이 되지 않는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매주 업무리뷰도 하고 마인드나 태도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렸으나 개선되지 않은 점도 잘 알 거예요. 그래서 이곳이 아닌 다른 부서로 이동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



이대리는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을 것 같아 이를 꽉 물고 마지막 말을 하고 나왔다.


"내일 중 공석이 있는 부서를 알려드릴 테니 그중 희망하는 부서를 다음 주까지 제게 알려주세요."



 

2주 전의 일이다.

그 사이 이대리는 다른 사업장의 인사팀 근무를 희망했고 해당 팀에서도 받지 않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후 현장직으로 이동하느니 퇴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나는 팀원들과 임원들에게도 이 대리가 퇴직 예정임을 알렸다. 하지만 곧 퇴직을 취소해 달라는 요구를 했고 우리 팀에는 말 그대로 어둠이 드리웠었다.


이후 퇴직이 소문나면 자신을 붙잡는 곳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그동안 짠하고 안 됐다는 감정마저 사라져 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함을 알기에 거취에 대한 면담을 서 너번 할 때마다 최대한 감정을 싣지 않고 임했다.






이제 이대리는 우리 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의 후임을 찾고 있는 중이고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팀의 분위기를 올리는데 한창이다.


리더십 강의를 듣던 중 강사가 한 말이 있었다.

사람의 행동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아무리 저성과자 이더라도, 역량과 태도가 좋지 않은 직원이더라도, 상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성과자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치 쟁반을 훔쳐간 장발장이 은촛대를 쥐어주고 가라고 한 신부를 만나 시장이 된 것처럼.


이 대리와 근무한 2년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그릇이 좀 더 컸더라면 보다 영리하게 코칭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강한 자에게 약한 그의 심리와 태도를 미리 파악하고 강하게 대했더라면, 작은 부분이라도 칭찬하고 인정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도 모르게 감정에 앞서 잘못된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까.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나는 그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스킬과 인내심을 아직은 갖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 앞섰다.

지금은 솔직히 이대리가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내게 어려운 감정이 들게 한 것만, 우리 팀이 알게 모르게 어둡게 만든 것만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의 그 기억을 잊고 싶은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먼 훗날, 이 대리에게 더 적합한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다.

지금의 감정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때에, 지금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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