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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17. 2024

술 안 먹는 팀장의 치밀한 전략


"팀장들과도 저녁 식사 한 번 해야지. 다음 주 괜찮은 날짜 정해서 알려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새로 부임한 상무님의 첫 지시였다.

팀장 중 의전을 중요시하는  분이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말을 건넨다.

'언제로 할까요?'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이번 주 목요일 삼겹살 집.

상무님은 보통 금요일 회의가 없기에 목요일 음주를 즐기신단다. 그리고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신다니 맞추는 게 맞다. 직속 상사와의 첫 회식부터 날짜와 장소 때문에 약간의 신경이라도 쓰이게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이럴 때 팀장들의 취향을 주장해서는 절대 네버 안된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걱정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이 중요한 교육인데, 게다가 앞에 나가서 진행까지 해야 하는데, 술 한 잔만 마셔도 두통이 몰려오는데, 그럼 진통제 한 통을 다 퍼부어야 할 텐데, 술을 마시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술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분위기는 어찌 맞춘단 말인. 게다가 차를 놓고 오면 지하철만 세 번, 버스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장거리 퇴근길이 될 텐데 으 끔찍하다. 후아. '



상사가 새로 오셔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격하게 환영한다. 회사 일 외의 이야기를 좀 주고받아야 감정 계좌도 좀 쌓이면서 그만큼 일의 대화도 잘 통하게 된다. 그렇다고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아이가 몇 살이냐, 어디에 사냐,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와 같은 개인적인 내용을 묻고 답할 순 없을 노릇이다.


그래서 동의한다.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나의 상사는 술을, 그것도 같이 원샷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거다. 그리고 안타깝도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알코올이 함께하는 곳이라면 안마의자에 앉아 있다 해도 편안하지 않을 것이며, 인당 오십만 원 코스 요리가 나와도 까끌한 모래알이 씹히는 듯할 것이다.




 적당히 마시면서 유쾌하게 자리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식시키기 전략을 세워야 했다.


먼저, 조건을 따져 보았다. 차는 가져와야 한다. 다음 날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새벽 다섯 시 반에 집에서 나서야 한다. 차를 놓고 올 경우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 기껏해야 네 시간 겨우 자고 나오면 교육은 그야말로 폭망이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차를 가져왔다고 할 경우 째림을 당할 것이 분명다.

언젠가 '차들 갖고 다니나?'라는 는 상무님의 질문에 팀장 한 명이 '매일 갖고 다니긴 하는데 일이 있는 날에는 안 가져옵니다. 이번 주 회식하는 날에도 안 가져오려고요.'라고 흐흐 대며 답을 했고, '어~ 자세가 됐네, 허허.' 하며 얼굴 한가득  흡족한 미소를 눈앞에서 또렷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안 마실  없다. 아주 조금은 먹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일단 맥주  잔이라도 마시고 이후 주종(?)을 온 국민의 음료 사이다로 바꾸는 것이다.




대략적인 전략을 세우고 상황에 맞춰 변경하기로 했다.

전략은 이러하다.


일단, 차는 안 갖고 온 척한다. 상무님이 술은 어느 정도 하냐 물으면 매우 죄송스러운 말투로 대답한다.

'저는.... 맥주 두 잔 정도요. 하하. 그 이상 넘어가면 난리 납니다. 난리.'


삼겹살 집에 도착하면 빙 둘러앉아 소맥을 말라고 할 것이다. 제조 전문 팀장에게 미리 부탁다. 맥주를 99% 넣어달라고.

짠을 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외치고 꿀꺽꿀꺽 캬 를 유난스럽게 낸다. 입술은 종잇장만큼 벌리고 몸은 좀 움직이며 맥주를 마신다. 컵 안의 맥주가 출렁이며 먹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도록. 안주는 최대한 자주 먹는다. 그래야 술을 권하는 때를 한 두 번이라도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퇴근은 어찌할 것인가?

일단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맥주  모금 마시기로 성공했을 경우, 밤 10시 즈음 회사로 돌아가 야근 좀 하다가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면 된다. 그 이상의 알코올이 들어갔을 경우 안타깝지만 차는 그대로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음 날 첫 차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전략이 빈틈없이 완벽하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




드디어, 목요일. 회식의 날이 되었다.


퇴근 시간 무렵, 팀장 한 명이 물어본다. '차 갖고 오셨어요?' 뭔 말이냐는 표정과 함께  '아~니요~~!!'라고 말했다. 다 같이 상무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예상된 질문이 나왔다. 얼마나 들 마시냐는 물음에 계획된 답변을 했다. 꽤나 많이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함께.


"아~ 예전에는 꽤 많이 마셨는데 40대 넘어가고 나서부터 술만 마시면 속이며 머리며 난리가 나더라고요. 술 좋아하는데...."


그러자 상무님이 물으신다.

"그래? 얼마나 마셨는데?"


쾌활하게 답했다.

"한, 소주 한 병 반 정도요?" (사실이었다. 예전엔 꽤 마셨다)


"어? 진짜?, 오.."라는 반응과 함께 주량에 대한 주제가 마쳐졌다.

나이스. 역시 위기대응력이 뛰어난 나란 사람. 잘했어.



석식 자리에 들어가니 불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초록 갈색병들로 채워진 테이블이 눈앞에 펼쳐졌다. 각자 가방을 내려놓고 앉자마자 상무님이 말씀하셨다.


"하나씩 말지~?"


두려움이 엄습하던 순간, 말을 이으셨다.


"아, 김팀장은 맥주? 술 못 먹는다며~ 내일 교육도 있고."

"아, 예."


"맥주 한 잔만 먹고, 사이다 마셔 사이다~."

"아, 옙. 감사합니다.!!" (나이쑤....)



게다가 상무님은 맥주가 서빙되자마자 나에게 소주잔에 맥주를 따라주셨고, 이후 사이다가 오지 않자 몇 번이나 사이다 왔냐고 물으셨다.


아, 이리도 감사할 수가. 내가 부담 갖지 않게 하시려는 모습에 상무님을 향한 충성심이 삼겹살 연기처럼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이 팀장에게 비밀리에 부탁한 맥소 비율, 입술을 개미만큼 벌리고 몸을 흔들며 맥주 넘기기도, 목젖의 오버액션도 필요 없었다.


따르는 타이밍에 맞춰 안주를 먹어대느라 배는 불렀다. 혼자 소주잔에 사이다 채워 마셔대느라 말 그대로의  단내가 났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매우 양호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들었던 소문보다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는 분이었다. 술 좋아하는 상사 앞에서 사이다만 먹어대는 팀장을 속으로는 어생각하실지 모르. 여전히 술 많이 마시는 팀장들과 더 가깝게 친분을 쌓아갈 거라 예상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았.





어쩌면 전략을 철저하게 세웠기에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일이란 그런 것 같다.

미리 예상을 하 전략은 철저히 세워야 한다. 일도, 술자리도. 그래야 어떠한 황이 벌어졌을 때 적절히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예상보다 좋을 때는 그 좋음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그 상태를 만끽할 수 다. 반대의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않고 어려움을 대처할 수 있다


한 가지. 이번에 중요하게 깨달은 게 있다.

지레 겁먹거나 과하게 걱정지 말자.

괜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다는 . 

그 에너지는 미리 준비하가나 그때 대처할 때 쓰자.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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