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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Oct 28. 2024

걱정 디톡스는 오디오북과 함께

출근길.

어스름한 새벽에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켠다. 부르릉.

차의 진동과 함께 내 생각의 파장이 커지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잡생각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가만히 있을 때면 뇌에 저장된 상념들이 무작위로 튀어 오른다고. 멀리서 보고 스쳐 지나간 모습, 누군가 스치듯 말했던 내용들까지도 말이다. 운전을 할 때면 증상의 그 정도가 심해진다. 수십, 수백 가지의 장면들이 하나의 필름 안에 마구잡이로 뒤섞여 상영되는 듯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이 잡념들이 대부분 그리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가 휘몰아치듯 걱정들을 내보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할까.


잡념들이 사방팔방에서 마음껏 튀어 오르게 두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펑하고 터질 것 같은 갑갑함이 밀려온다. 그럼 강아지가 물기를 털어내듯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다시 운전에만 집중해 본다. 그래봤자 1초도 되지 않아 또 하나의 후회의 파편이 콕콕 고개를 쳐들지만.




그렇게 몇 개월 동안 걱정의 소나기에 흠뻑 젖어 출근을 반복하던 중, 안 되겠다 싶었다. 아침마다 심난한 기분으로 시작하기가 싫었다. 상념들을 차단해 버리기로 했다.


차의 시동을 걸면서 아침확언을 튼다. 워밍업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함 음악을 듣다 보면 출근 준비를 하느라 다급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용기 있다.' 등과 같은 말들을 따라 하다 보면 문장들과 같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십 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 정도...? 확언은 진심으로 그렇게 됐다고 느끼고 되뇌어야 효과가 있다 하지만 출근길에는 영혼을 갈아 끼우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테다. 몇 개월 매일 아침마다 반복하는대도 그냥, 귀에 울리는 걸 입으로 뱉어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도, 하지 않을 때 보다 뭔지 모르게 기분이 나아진다.


약 5분가량의 아침확언 따라 하기를 마치고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오디오북 듣기. 가능하면 자기 계발서들로 선택한다.

'신경 끄기 연습'이라는 책에서는 '친 사회적인 가사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남을 돕는 마음이 강해진다'라고 했다. 따뜻한 말을 들으면 친절과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 된다라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맞는 것 같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도전, 발전, 성공과 같이 발전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근길 한 시간 동안 이러한 문장들이 내 귀에 들려오면 괜스레 뭔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예전에는 걱정과 후회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긍정의 회로로 방향을 바꾼다.


솔직히 멍 한 아침부터 다소 딱딱한 내용 머리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차선을 바꾸거나 한 동안 비슷한 속도로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오디오북의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 있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계발서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이 없다는 것, 내용이 길지 않다는 것 아니던가. 중간에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책장을 넘겨도 괜찮다. 놓치고 들어도, 끊어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덧붙이면 어차피 멍 때리는 거, 걱정의 파편들이 튀어 오르도록 두기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발전적인 정보들을 입력시키는 게 확실히 낫다. 어제의 내 모습에 후회만 하는 게 아니라 건설적으로 되돌아보고 반성까지 하게 된다. 괜시리 기분도 좋아진다.



어쩌다 한 번씩 오디오북의 성우가 나를 가르치려 드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터지기 일보직전일 때다. 그럴 땐 소설이나 에세이를 선택한다. 불편한 편의점, 이토록 사소한 것들과 같은 책들이다. 실감 나는 연기력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다양한 BGM까지 곁들여져 있기에 눈앞에 장면 장면이 그려진다. 스토리를 따라 듣다 보면 어느새 잔뜩 부풀어 있던 세포들이 말랑말랑 해진다. 시간은 또 어찌나 잘 가는지. 어떨 땐 주차장에 도착해서 한참을 듣다 사무실로 올라간 적도 있다. 오디오북은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 확실하다.





나이의 숫자만큼 걱정도 곱절씩 늘어난다.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일까. 아이들, 남편, 부모님, 그리고 나 자신까지. 나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뜻하지 않은 상념들이 좁은 틈 사이를 쉴 새 없이 비집고 들어앉는다. 머릿속은 그 어떤 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혼탁함만 짙어진다.


그런 나에게 확언과 오디오북은 일종의 디톡스 시간이 되었다.

하루 중 유일한 나만의 시간인 출근길에 하는 걱정디톡스.



혹시, 출퇴근길 불안이가 머릿속을 마구 괴롭힌다면, 시간을 조금 더 '잘' 쓰고 싶다면 오디오북을 들어 보시길 권해본다. (일단 해보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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