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에 관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친한 친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들려왔다.
암이셔서 아프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우리곁을 떠나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시간만이 흘렸다. 친한 친구라서 집안 대소사 행사를 치를때 얼굴을 뵈여와서 친숙했다.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셔서 나 조차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 친구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려서 어느덧 일년이 지나갔다. 일년이 지난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상의 대화를 나누던 중에 친구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불쑥 불쑥 아빠가 생각나는데 이 감정들이 엄마와 동생 말고는 함께 공유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도 이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 친한 친구이지만 그 감정을 전부 이해한다고는 말을 못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부재를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내면서 떠난 사람의 부재를 느끼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친구는 인생이 허무하다며 본인은 이제부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살거라고 말했다.
"다른사람 신경쓰느랴 정작 내 감정은 후순위였어"
"아빠의 죽음을 보니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택하고 살아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도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리 아둥바둥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생의 허무함이 몰아치듯이 친구의 머리속을 가득 채워 버렸다.
영화를 보다가 결말이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우리는 허무한 결말이라고 말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허무함이 존재한다.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을 때, 아이가 커가며 내 손길이 점점 필요없어질 때,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 당했을 때 등의 상황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허무함의 감정이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겠지만 잘 받아들이고, 잘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날에 할머니의 나지막한 흥얼거림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늦은 시간 술에 취에 들어오시며 부르는 노래가 생각난다.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나름의 감정해소 방식이 흥얼거림과 넉두리가 아닌가 싶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인생이 허무할때는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