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탕 드셔보셨나요?
예전에 마라탕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때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처음 먹어보았는데 매우면서 향신료 냄새가 코끝에 머물렀다. 하지만 어느새 젓가락이 다시금 마라탕에서 뒤적거리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매워서 못 먹어서 우리 부부만의 외식 포장 메뉴였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함께 먹고 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마라탕을 먹어본 친구들이 마라탕을 먹어 봤다는 경험담을 듣고 ,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하는 궁금증은 시도로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마라탕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행보 중에 하나라고 한다.
저학년인 둘째 아이도 반 친구가 마라탕을 먹어 봤다는 말에 먹어 보겠다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너무 맛있다며 자주 먹는 외식 메뉴 중에 하나가 되었다.
외식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다. 짜장면을 먹을 때도 한집에서만 먹고 , 마라탕집도 가는 집만 간다.
새로운 곳도 시도를 해보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다며 원래 먹었던 곳만 간다. 먹는 중국집도 배달이 되지 않아서 꼭 방문해서 먹거나 포장해서 먹어야 한다.
새로운 메뉴를 먹을 때 빼고는 피자, 짜장면, 치킨은 주로 먹는 피자집, 중국집, 치킨집에서만 먹고 , 이제는 마라탕도 먹어본 정해진 마라탕집에서만 먹으려고 한다.
익숙해진 맛,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알고 있어 편안함과 시간의 효율을 줄어주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익숙해지는 것은 라면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라면이 따로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라면은 각 집마다 선호하는 라면이 있어 각 집집마다 익숙한 라면이 존재한다.
각 라면회사마다 라면의 맛이 달라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것이 각각 따로 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것이 주는 설렘이 있지만 매번 선택해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한다. 처음 해보는 것이 아니기에 선택 후의 두려움이 들기보다는 안도감이 생기고 , 내가 원하는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마다 각자의 취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해 낼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보다 아이가 커가며 엄마로서 연차가 쌓이고 일상생활에 익숙하게 되므로써 현재의 생활에 익숙하게 된다. 이런 생활도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 시간 흐름에 따라서 이렇게 다시 적응하게 되는 것 같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들도 몇년에서부터 몇십년까지 같은 일을 해오면서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 손놀림과 익숙한 패턴으로 자유자재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달인까지는 못하더라도 점점 밥을 차려내는 시간이 단축되고 , 아이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파악하게 된다. 일에 있어서도 능숙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간혹 감정적인 면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면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비일비재 존재한다. 거리두기가 공간의 분리뿐 아니라 감정의 거리두기도 필요하게 된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어느 순간에는 답답함과 변화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때 까지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마라탕을 처음 먹었을때 맛이 뭐 이래 라고 하였지만 자꾸 먹다보니 마라의 맛을 느끼며 맛있게 먹게 되지 않은가?
마라탕이 맛이 없다고 안먹으면 또 새로운 유행하는 음식을 도전하고 시도하게 되면서 이런 맛도 있구나 알게 된다. 우리 입맛에 익숙한 된장찌개도 먹고 ,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음식도 먹으면서 세상을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익숙함의 고마움과 더불어 새로움도 함께 공존하게 된다.
오늘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향하여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