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상어? 등에?

아찔했던 상어와의 조우, 모기보다 더한 등에

by 노마드

22. 12. 22: Day 7,


배낭여행자의 지갑을 거덜내기라도 하려는 심산인 듯 갈라파고스의 투어 비용은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저렴한 투어가 50 달러 선에서 제공되며,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4시에 끝나는 All Day Tour의 경우 180 달러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껏 왔는데 투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스노클링 장비가 있음을 어필하며 180 달러를 부르는 투어를 155 달러에 예약했다.


투어가 예정된 둘째 날의 아침 날씨는 흐렸다. 걱정이 돼 물어보니 가이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팔을 휘저으며,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거칠게 요동치는 배에 질린 듯 안에서 머리를 서로에게 혹은 뒤로 기대며 멀미로 고생하고 있었고 (여행 내공이 상당하신 듯한 혼자 여행하시는 할머니도 한 분 계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별달리 멀미를 하지 않는 나는 선미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땅 끝에서 바다로 폭포가 떨어졌고, 섬을 끝내 덮어버리고야 말겠다는 맹렬한 기세로 하얀 파도가 검은 바위에 달려들어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초반에는 날씨가 흐렸다. 시야가 좋지 않았던 첫 번째 스노클링 포인트로 가는 길, 황량하다.>


섬 주위를 2시간가량 돈 배는 이름 모를 모래사장에 정박했다. 첫 번째 스노클링 포인트였다. 물이 연녹색으로 꽤나 특이했다.


갈라파고스의 자연은 결핍 속의 풍요다. 기대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척박한 장소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험지에서 피어나는 경이로운 자연의 위대함을 그 어느 곳보다 더 확실히 각인시켜 주기에, 그 빈곤 속에서 자연의 선물을 하나둘씩 풀어헤치는 기쁨이 있다.


다만, 첫 스노클링 포인트는 결핍, 빈곤 그 자체였다.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분명 사진을 여러 장 찍었음에도 남아있는 사진이 딱히 없다. 다 지워버렸나 보다.) 수심 4~5m 정도의 탁한 바다를 축구장 두 개 크기의 만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는데, 입수 전 오리발 사이 튀어나온 뒤꿈치를 바위에 찍어 피가 철철 흘렀던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시야 확보 및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포인트였다.


도착하자마자 거북이가 고개를 뻐끔 내미는 모습을 확인했기에 기대가 상당했으나 막상 들어가 보니 수심 2m 아래까지는 전방으로 3m가량 시야가 확보되었고, 그 아래는 옆이나 뒤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물이 탁했다. 생물종 역시 작은 물고기들과 형광빛 파란 줄무늬를 두른 팔뚝만 한 물고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다.


유일한 소득이라고는 화이트팁 상어를 여러 마리 봤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시야 확보가 안돼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가만히 자고 있는 상어들을 발로 걷어찰 뻔한 아찔한 상황 속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돌 치곤 너무 길쭉하긴 했다.)


바닥에 붙어있는 돌인 줄 알고 딛고 서려다 그 정체가 상어임을 깨달았을 때의 공포란...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지만 그래도 신경을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심지어 총 7, 8 마리 상어 중 2마리는 내가 떠나려고 하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10살, 인생 첫 스노클링을 경험했던 뉴칼레도니아에서는 호기심에 동생 녀석과 해변 옆 바위의 뱀굴을 나무 작대기로 들쑤셨고 (나중에 독사들이 사는 굴이니 건드리면 안 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동생과 눈빛을 잽싸게 교환한 후 태연자약하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던 기억이 난다.),


11살,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님을 따라간 타히티 여행에서는 겁도 없이 상어 지느러미를 건드리고 가오리 등에 올라타려 애쓰며 놀았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나이를 거꾸로 먹어 겁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위험에 대한 감각이 제대로 서게 된 것인지, 12년 만에 바닷속에서 마주하는 상어는 공포 그 자체였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발뒤꿈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위험천만했다.


최대한 상어를 자극하지 않으려 5m 정도를 천천히 돌아 나왔고 (언제라도 코를 때릴 수 있게 앞으로 주먹을 내지른 채 후진했다.) 어느 정도 안전반경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서자 몸을 돌려 죽어라 오리발과 팔을 저어댔다. 이후에도 두어 번 정도 더 입수를 하기는 했으나 포인트 근처에서 작은 물고기들에 만족하며 얌전히 지냈다.


1시간 정도를 보냈을까, 가이드가 모두를 불렀고 다시 배에 얹혀 다음 장소로 향했다.


< 11시 정도가 되니 가이드의 말대로 날씨가 맑아졌다. >


등에(말파리)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파리 3마리와 파리 떼를 쫓아대고 잡아대는 언짢은 여정이었다.


파리는 사실 괜찮았다.


갈라파고스의 파리는 산업화된 도시에서 봐왔던 도주의 달인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분명 그 수가 많아서 귀찮긴 한데 너무 느려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느린 속도를 물량 공세로 보완하는 모양새가 우스웠고, 한여름 군대에서 모기를 잡으며 단련한 내 매서운 손바닥을 십분 활용해 10분 만에 선상의 파리들을 여유롭게 박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등에였다. 자연친화적인 나라는 인간에게는 사람들과 같이 있더라도 유독 모기가 자주 찾아주는 괴이한 피가 흐르는데, 이 피가 등에에게도 꽤나 유혹적인 모양이었다.


모기보다 싫어하게 될 벌레가 생기리라고는, 아니 존재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내 기대를 늘 아득히 넘어서 또 배반해버리고 마는 대자연의 신비였다. 모기와는 차원이 다른 저작력을 지닌 이 등에라는 악랄한 녀석은 물리면 아프기도 무척 아플뿐더러, 앉은 딱지를 떼어보면 흉이 남는 끔찍한 종이었다. 가렵기는 또 어찌나 가렵던지...


<같은 곳을 세네 번 물어뜯어 흉이 크게 졌다. 썩을…>


이미 배에 타기 5분 전부터 물에 들어갔다 나오며 팔을 휘저어대기를 반복했고, 결국 한 방 물렸기에 각오를 나름 단단히 다지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선상의 불청객은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다.


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경로 자체도 무작위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내 다리만을 노려대는 흡혈 파리에게 그렇게 여러 번 피를 빨렸다. 체액에 지연성 마취제라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왼쪽 다리에 통증이 느껴져 왼다리를 확인하면 그새 오른 다리에서 식사를 해치우고 있었는데 그 작태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 기본 제공 식사, 시장이 반찬이다. 새들이 쉬어가는 바위 >


가이드와 선원 루이즈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잡기는 했지만, 많이도 물렸다. 다리를 벅벅 긁어대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조류 군락지도 돌았다. 망망대해에 푸른 발부비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간혹 군함조와 갈매기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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