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360
22. 12. 22: Day 7,
천천히 걷다 잠시 멈춰 서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습지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스노클링 중이었고 나 또한 물에 몸을 묻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배는 다시 출발했고 마지막 목적지인 Kicker Rock으로 향했다. 망치상어를 볼 수도 있다고 들었기에 기대감에 부풀어 주변의 생태에 대해 질문하며 여정을 즐겼다. 삼십여분을 달려 배는 깎아지른 듯한 경사를 드러내는 바위 주변에 멈춰 섰다.
스노클링 마스크가 불편해 수경만 끼고, 샵에서 렌트해 줬던 다이빙용 슈트를 내팽개친 채 물 안을 돌아다니던 내게 (머지않아 후회할 그리고 여행 내내 후회했던 멍청한 결정이었다.) 파보는 이례적으로 슈트 착용을 권했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가끔 있는 일인 듯 파보는 선장을 올려다봤고, 의미심장한 시선이 잠시 오갔다. 무슨 모의작당이라도 하는 것인지,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며, 파보는 배 옆으로 향했고, 씨익 웃은 후 내 몸에 물을 끼얹었다.
훅 들어온 공격에 선미에 걸터앉아 있던 나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고, 그 모양새가 여간 우스웠는지 다른 사람들도 잠시 다이빙 슈트 착용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목욕탕 냉탕 물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차가운 수온에 자존심을 바로 내려놓고 "Hmm... Yeah. It is cold."라고 말한 후 멋쩍게 웃음 지으며, 물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물에 들어가 잠시간은 허우적댔다.
촬영용 휴대폰을 목에 맨 채로 입수한 까닭에 파도에 기기가 휩쓸려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자세가 불안정해지다 보니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스노클링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고 수경만을 착용했기에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처지도 어려움을 더했다.
괌과 사이판에서 체험 다이빙을 해보기는 했으나 말 그대로 잔잔한 바다에서 "체험"한 것뿐이었고, 그마저도 햇수로 10년이 다 되어 갔기에 바다 수영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수영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 듯, 휴대폰을 목과 왼 손목에 단단히 고정하니 균형을 잡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금세 파보를 뒤따라 갈 수 있었다. 유일하게 불편했던 점이라고는 단단히 감긴 줄로 인해 왼팔의 사용이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다리 근육 경련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팔의 힘에 의존해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나 파도가 거세 바위와의 간격 유지가 쉽지 않았고 당연히 관찰도 어려웠다.
파보만이 여유롭게 바다를 유영해나가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처져 있었다. 빨리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앞쪽에 무엇이라도 있는지 파보는 속도를 높였고, 가끔 가이드의 본분이 기억나기라도 한 듯 고개를 들고 팔을 들어 올려 손짓하며 빨리 올 것을 주문했다. 스노클링 전반부는 가이드 따라잡기라고 지칭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바닷속에 볼 것도 달리 없었기에 나 역시 물살에 몸을 적응시키는데 집중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차례, 다시 한번 파보가 사람들을 불렀고, 손짓에서 급박함과 흥분을 읽은 나는 세차게 물을 헤쳐 나아갔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니 가오리 한 마리가 바위를 타며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뉴칼레도니아에서 봤던 사람보다 큰 만타 가오리와 달리 앙증맞은 사이즈에 하얀 점까지 두르고 있어 무척이나 귀여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수심 4~5m까지 내려가니 바다거북도 관찰할 수 있었다. 다만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히 아래로 뻗어나가 있는 바위를 보니 금세 아찔해져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가오리도, 거북이도 보았건만 도무지 망치상어는 보이지를 않았고, 실망감이 조금씩 커져갔다. 스노클링 경험이 전무했다면 모를까, 이미 타히티와 뉴칼레도니아에서 상어 떼 및 만타 가오리들과 수영하고, 현지인이 손으로 문어를 낚아채 머리에 올려 쓰는 믿지 못할 장면도 봤던 나였기에, 바위에 덕지덕지 붙은 자라다 만 것 같은 산호들, 조그마한 물고기들, 그리고 가오리와 바다거북만으로는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조바심을 이기지 못해 파보에게 다가가 "No sharks?"라고 물어봤다. 파보는 어깨를 으쓱하며 "Weather. Not good."라는 답했고, 실망한 내게 다음번에 올 때 다이빙 자격증을 따서 오면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2/3 정도 왔을까.
숨을 쉬려 물 위로 올라온 찰나, 뒤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사자 두 마리가 벽을 타고 헤엄치고 있었다.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잠수하고, 벽을 타다가도 박차고 나와 빙글빙글 돌며 자유롭게 물을 가르는 모습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간 해변가나 얕은 바다에서 봐왔던 백수 녀석들과 달리 무척 활동적이고 장난기가 많은 녀석들이었다.
몇 분 정도 근처를 맴돌던 바다사자들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갑자기 방향을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렇게 몇 초 같았던 환희의 시간이 지나가는 듯했다.
바다사자마저 가버리자 스노클링 경험이 전무했던 에콰도르인 가족과 커플 두 쌍은 의욕을 잃은 듯 저만치 뒤처졌고, 파보와 영국 커플 한 쌍, 베테랑 할머니 한 분, 그리고 내가 선두 그룹을 유지하며 배로 돌아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영국 커플과 할머니가 수영하기를 멈춘 채 내 쪽으로 몸을 돌렸고, 앞쪽에서 이전의 바다사자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아까의 아쉬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그 즉시 수면 위로 부상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다시 잠수해 바다사자를 흉내 내며 물을 탔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지 이내 바다사자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왔고, 그렇게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같이 물을 헤쳐나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생 간직할 특별하고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여운 속에 투어를 마쳤다. 혹시 영상 건진 게 있냐고 묻던 에콰도르 가족에게 사진 및 영상을 건네주고,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후 간만에 긴 낮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동네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거센 파도로 인해 체력 소모가 예상보다 컸고,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근처 식당에서 파스타 하나, 미소 국수, 그리고 감자말이 새우를 맥주와 함께 먹어치웠다.
등과 어깨의 근육이 계속 당기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추가적인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벌어질 일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