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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y 21. 2024

여행의 종장

트빌리시, 쿠타이시, 밀라노

모든 여행에는 떠남을 인지하고 끝을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본디 여행자라는 족속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 만족지 못해 떠나고, 드물게 만족한들 새로운 자극을 찾아 하염없이 방황하며 방랑하는 존재이기에,


마음 줄 곳을, 고향을 찾지 못해 떠나고, 떠나 도착한 곳에 정착지 못해 다시금 운명적으로 떠나가고야 마는 떠남의 족쇄에 메인 시지프적 존재이기에,


그 떠남의 끊긴 프레임 속에서 불가피하게 우두커니 멈춰 서 떠남을 인지하고 끝을 자각하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맞이한다.


< 웃어라 스탈린 >

무딘 사람이 아니라, 벼려진 사람이다.



이를테면 먼바다 같아,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고서는 넘실대는 자유로의 폭풍을, 정주치 못하는 격랑을 가늠할 수 없는, 수없이 둔감해졌지만 그래도 다시금 물결치는 사람이다.


사소하게는 센 강변에 앉아 바게트에 크림치즈를 발라 한 입 베어무는 일부터, 중대하게는 덴마크의 친지를 찾아, 지금은 어눌도 한 이 조카들의 영어 실력이 다음 볼 때면 훌쩍 늘어, 그새의 시간에 그 모든 과정이 만년설 녹듯 사라져, 다음의 다음은 멀고도 없겠구나 실감하는 순간이 이번에도 기어코 찾아왔다.


십 수 번도 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자위하며 떠나왔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는. 적어도 끝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함으로써, 나는 그간의 여행을 겨우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나를  집어삼켰던 것은 짙은 아쉬움도, 귀향의 환희도 아닌, 파란 밤 - 옅은 음울이 곁든 - 희미한 달빛에 기대 수풀을 헤치며 진창을 걸어 나가는 것만 같은, 숫모기 같아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 믿고프면서도 정작 거슬리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마슈룻카에 몸을 싣고, 트빌리시로 떠나간다. 한 달 전 예약한 호스텔에는 직원의 실수로 방이 없고, 다시 찾은 호스텔의 방세는 박에 5,000원으로 저렴하나, 천장 위에 무너질 듯 매트리스가 늘어선 모양새가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만 같고, 쿠타이시로 떠나가는 버스는 어지러이 흔들리며, 공항의

새하얀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아, 다시 밀라노에 도착해 쳐다본 일출을 핏빛이다.



이 기묘한 감정을 나는 불안이라 단정 짓고, 불필요한 과민 반응이라, 다시 한번 끝을 자각했을 따름이라 넘겨짚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이러한 류의 생각, 예언적 불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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