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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ug 28. 2024

노숙, 맥도날드에서

2023. 11. 03: 강도와 운명

돌이켜 보면, 돈이었다. 굳이 꼽자면이 아니라 명명백백하게, 명약관화하게 돈이었다. 


돈이 없어 맥도날드에서 잤고, 돈이 없어 우버를 잡지 못했으며, 그에 따라 강도를 만났다.


짤막한 귀결로 요약되는 밀라노에서의 그 밤에 나는 여태껏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려 애써왔다.


일이 잘못되었음을 넌지시 암시한 징조가 혹 있었는지, 없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일견 평범한 선택들을 필연으로 이어 붙여 종국에는 연쇄적인 - 저항할 수 없는 - 파국으로 몰고 갔는지, 단순 충동적인 결정의 대가를 치르고 만 것인지 혹은 삶에 한 번쯤은 온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순간을 하필 맞이해버리고 만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럼에도 일어난 일을 뒤집을 수는 없고, 결국 돌고 돌아 돈이었다.




하나의 명분을 그럴듯한 변명 여럿 앞에 두는 습관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자유’라는 거창한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그간 나는 떠나왔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순간은 가끔은 ‘명분’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포장하기에는 하잘 것 없고, 사소한 선택 하나는 명분에서 변명으로, 변명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날 밤의 밀라노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둘투둘한 돌길을 달리는 트램의 창이 흐려 밤거리의 조명을 번지듯 반사해 냈고, 미처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한 세찬 빗물은 고여 그 돌길의 틈새를 온 거리가 찰박 일 때까지 메워나갔다. 첫걸음에 우산이 뒤집혔고, 두 번째 발걸음을 디디니 흙탕물의 꺼슬꺼슬한 입자가 발을 긁어댔으며, 반 각도 채 걷지 않아 신발 속이 찰박였다. 


짙은 대마향을 풍기며 언어의 범주에서 벗어난 말을 뇌까리던 하얀 곱슬머리의 흑인 하나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지나쳐갔을 때. 그때 잠시 멈춰 뒷걸음질을 쳤더라면. 하다 못해 내리는 비를 피하려 번화가의 포르티고 밑으로 기어 들어가 스크롤이라도 몇 번 내렸더라면, 강도를 마주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얄궂은 운명은 다시금 나를 달음박질해 그 시간 그곳에 당도하게 충동질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여하튼 누군가 내게 왜 맥도날드에서 잤냐 물어온다면 내 답은 아무래도 하나다.


"돈이 없어서."


그 이후 닥칠 일을 알았느냐 묻는다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저 "비가 너무 내렸다."라 답하겠다. 


사치의 여유, 혹은 변명에는 십수 개의 이유를 - 왜 호텔에서 잤냐 물어본다면 가령, 편안한 침대, 친절한 응대, 카지노의 유흥, 수영장의 베드, 뷔페에서의 식사를 - 들 수 있겠지만, 가난에는 여유가 없고, 변명보다는 궁색함만 있어 나는 맥도날드에서 노숙으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 그날 밤의 밀라노에는 비가 세차게도 내렸었다.





- 극복은 했지만, 트라우마로 남은 경험을 쓰다 보니 글이 잘 안 나오던 것도 있고, 그간 여행을 다니며 바빠 글에 소홀했습니다. 글 기다려주신 분,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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