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03: 트빌리시, 쿠타이시, 밀라노
모든 여행에는 떠남을 인지하고 끝을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본디 여행자라는 족속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 만족지 못해 떠나고, 드물게 만족한들 새로운 자극을 찾아 하염없이 방황하며 방랑하는 존재이기에,
마음 줄 곳을, 고향을 찾지 못해 떠나고, 떠나 도착한 곳에 정착지 못해 다시금 운명적으로 떠나가고야 마는 떠남의 족쇄에 메인 시지프적 존재이기에,
그 떠남의 끊긴 프레임 속에서 불가피하게 우두커니 멈춰 서 떠남을 인지하고 끝을 자각하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맞이한다.
무딘 사람이 아니라, 벼려진 사람이다.
이를테면 먼바다 같아,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고서는 넘실대는 자유로의 폭풍을, 정주치 못하는 격랑을 가늠할 수 없는, 수없이 둔감해졌지만 그래도 다시금 물결치는 사람이다.
사소하게는 센 강변에 앉아 바게트에 크림치즈를 발라 한 입 베어무는 일부터, 중대하게는 덴마크의 친지를 찾아, 지금은 어눌도 한 이 조카들의 영어 실력이 다음 볼 때면 훌쩍 늘어, 그새의 시간에 그 모든 과정이 만년설 녹듯 사라져, 다음의 다음은 멀고도 없겠구나 실감하는 순간이 이번에도 기어코 찾아왔다.
십 수 번도 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자위하며 떠나왔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는. 적어도 끝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함으로써, 나는 그간의 여행을 겨우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나를 집어삼켰던 것은 짙은 아쉬움도, 귀향의 환희도 아닌, 파란 밤 - 옅은 음울이 곁든 - 희미한 달빛에 기대 수풀을 헤치며 진창을 걸어 나가는 것만 같은, 숫모기 같아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 믿고프면서도 정작 거슬리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마슈룻카에 몸을 싣고, 트빌리시로 떠나간다. 한 달 전 예약한 호스텔에는 직원의 실수로 방이 없고, 다시 찾은 호스텔의 방세는 박에 5,000원으로 저렴하나, 천장 위에 무너질 듯 매트리스가 늘어선 모양새가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만 같고, 쿠타이시로 떠나가는 버스는 어지러이 흔들리며, 공항의 새하얀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아, 다시 밀라노에 도착해 쳐다본 일출을 핏빛, 아 그래 따뜻하게 새애빨간 핏빛이다.
이 기묘한 감정을 나는 불안이라 단정 짓고, 불필요한 과민 반응이라, 다시 한번 끝을 자각했을 따름이라 넘겨짚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이러한 류의 생각, 예언적 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