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그리고 존
우리는 왜 떠나가는가. 엘살바도르에서 내가 묵은 호스텔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둘 있었다.
호스텔의 존은 자칭 '친구'를 기다렸다. 기억하기로, 그는 엘 존테에서 네 밤을 보내고 엘 팔마르시토로 넘어왔다.
존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일전 일종의 '운명적인 만남'을 겪었다. 바에서 만난 여자가 전화번호를 건네며, 산살바도르로 떠나는 날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고 자랑했다. 엘 팔마르시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으면 그 다음날 찾아오겠다며. 같이 넘어가자며. 샤넷과 내가 이야기의 진위를 따질 동안, 호스텔의 주인인 도냐 로사는, 잠시 스쳐 갈 이방인들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환상을 품고 사는 건 축하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한들 환상 속에 사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존이 몇 번의 운명을 마주 했느냐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그가 그녀의 말을 정말 믿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믿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건 이를테면, 내게 풀 수는 있지만 풀고 싶지는 않은 미제로 남아있다. 슬프게도 또 다행히도, 나는 여행지에서의 낯섦을 더 이상 설렘으로 착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라, 나이를 40이나 먹고도 유아적 기대를 간직한 그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고백하건대, 바에 가 고독을 즐긴다며 한 잔, 두 잔, 여러 잔을 넘기는 자위에는 도가 튼 만큼 이미 신물이 난 인간이 바로 나였으니까.
불쌍한 우리 존. 존은 그녀의 말만 철썩 같이 믿고 하룻밤을 꼬박 보냈다. 우리가 만난 날의 저녁에도, 다음 날의 저녁에도, 그 다다음 날의 아침에도 하염없이 그녀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나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왔으려면 진작에 왔겠다." 옆에 있던 샤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이 그토록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날 밤 거사를 치러도 단단히 치렀을 터였다. 나 역시 혼자 다니는 사람이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약속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 존은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며 호스텔 공용공간을 방방거리며 돌아다녔다. 말인즉슨, 그녀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왓츠앱 문자에 답장할 수 없었다는 것. 그렇다면 전날 밤, "활동 중인데 왜 문자를 안 보지."라고 중얼거렸던 건 도대체 누구였을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의심했던 걸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계면쩍었는지 그는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과시하듯 휴대폰 화면을 코 앞에 들이댔다. 우리가 무슨 편지로 연정을 나누는 시대의 사람들도 아니고, 바에서 처음 보는 40대 이성에게 전화번호를 건넬 정도로 열린 사람이 휴대폰을 잃어버릴 수는 있지만, 왓츠앱 문자에 답장하지 못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않을 수는 있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짧은 인연이 으레 그렇듯, 그건 거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벌써 1년 6개월째 방랑 중인 존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책상에 앉아 침을 튀겨가며 한참을 "다른 이유가 없다면 나를 놔두고 갈 리가 없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뇌까렸다.
이어, 그는 선언했다. "미안하다고 엘 팔마르시토까지 태워주러 온데." 그렇다면 정말 잘 된 일이었다. 그러나, 떠나는 날, 도냐 로사는 내게 슬쩍 귀띔 했다. 전날 독일인 남자도 같은 버스 정보를 물어보았다고. 나는 일의 내막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존의 기다림은 무의미했고, 그녀의 떠나감은 무책임했다.
그러한 기다림과 떠나감에 나는 마냥 조소할 수는 없었다. 배가 고프면 길에 떨어진 감이라도 주워 먹어야겠지만 그 감은 십중팔구 떫지 않겠는가. 그나 나 같은 여행자들은 혼자 이 넓은 세상의 이곳저곳을 찌르며 다니는 게 팔자라면 팔자고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 였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여행이고, 돌아갈 곳이 없으면 조난이라던데, 존에게 그녀의 거절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혀가 아려오는 떫은 감 같은 수난이었을 테 였다.
삐딱한 심보 뒤의 아련한 동질감. 타인을 까내리며 높이 서려하는 못된 심보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던 걸까. 존처럼 모르는 여자에게 바에서 말을 걸었던 게 언제의 일이었던가. 거짓말을 일삼던 존은 적어도 자신의 욕망에는 솔직했고,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나는 진실되었으니 떠나감과 떠나버림을 결정함에 있어 믿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분명했다. 존은 환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현실을 직시하며 고독을 견뎌낼 뿐이었다.
존과 내가 떠나가는 입장이라면, 호스텔 주인아주머니 도냐 로사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습한 하루의 낮이었다. 불 켜기도 그대로 있기에도 애매한 부엌의 어둠 속에 물이 거의 다 떨어진 정수기를 흔들고 있던 내게 로사는 와서 말했다.
"물이 귀하긴 귀해도 이럴 때는 새 통으로 갈아줘야지."
어떠한 맥락 아래 대화의 주제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로 흘러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측컨대 나는 아마 살인율 1위에서 미주에서 2번째로 안전해진 고국으로 사람들이 귀향하지 않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지막이 답했다. "전쟁. 그리고 살인"
엘살바도르는 1979년부터 1992년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전에 시달렸다. 엘살바도르 진실위원회의 보고서는 해당 기간 동안 최소 7만 5천 명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로사 역시 전쟁의 복판에서 엘살바도르를 탈출해 네덜란드로 도망쳤고, 현재 대통령인 나이브 부켈레가 산살바도르 시장으로 재직 중이었을 때 다시 귀국했다.
"크게 두 번, 길게는 30년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은 도망쳤지. 축구 전쟁과 내전 때, 그리고 갱들이 판을 쳐 밤길조차 다닐 수 없게 되자 또다시."
"저로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네요. 물론 한국은 분단되어 있지만, 저는 그 세대가 아닐뿐더러, 밤에 편의점에 가볍게 맥주 한 잔 사러 가는 게 낙인데..."
"그래. 그래서야. 아무리 돌아온 사람들이 안전하다 말한들, 떠나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엘살바도르는 최악의 엘살바도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떠나지 않았겠지. 나 역시 저 사람이 설득하지 않았으면 돌아오지 않았을 거고."
"만족하세요?"
"좋아. 다만 평생 고국을 다시 밟지 않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끔..."
"마지막으로 남은 인상이 그래서 그래." 그녀는 이어 말했다.
"참 불행한 일이네요. 떠나간 사람에게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는 사람에게도. 그건" 나는 답했다.
도냐 로사는 말이 없었다. 새 물통을 가져와 텅 비어 가는 오래된 물통을 들어냈다. 각기 다른 여행자들의 컵으로 흘러 들어갔을 물. 두 차례의 거대한 파고 속에 고국을 등져야 했던 사람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오래된 통을 기울여 남은 물을 새 통에 조르륵 붓고 섞었다. 어쩌면 그녀와 같이 돌아온 이들은, 저 남은 물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대와 기꺼이 섞여 전혀 다른 엘살바도르를 살아가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떠나간 이들에게 엘살바도르라는 이름은, 머리채를 잡는 것도 모자라 경찰서까지 가서야 겨우 이별을 고한 끔찍한 연인처럼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자신의 떠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떠나온 곳은 여전히 지옥이어야 하지 않을까. 존의 무의미한 기다림과 도냐 로사의 끝없는 기다림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무엇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때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 것일까. 떠나감의 공백은 왜 그리도 아픈 것일까.
산살바도르행 버스에 탄 나는 습관적으로 동전을 세고 건네는 기사를 바라보며, 조지아에서 끼니를 같이 했던 이탈리아인 남자의 무심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는 여자친구를 고국에 남겨두고, 2년 간의 세계일주 길에 올랐다.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서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무심하게 착 가라앉은 그의 눈빛이 나는 두려웠다. 그건 '너도 떠나는 사람이라 알면서 왜 그래'라는 무언의 합의를 종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설산을 멍하니 바라보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노트에 문장들을 끄적였다.
잠시라 포장했던 방랑의 삶에 정착한 사람들의 최후는 들려오지 않는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며, 온전히 떠나지 못한 사람만이 돌아온다.
진정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떠나감 뒤에는 기다림만이 남는다.
이틀 후면 다시 삶으로, 일상으로 떠나가야 한다. 어김없이 질문만 남는다.
우리는 왜 떠나가는가. 그 무엇보다도. 나는 왜 떠나왔는가.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답을 요하지 않기에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존은 친구를 기다리고, 도냐 로사는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떠나는 날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해변가에 떠밀려와 썩어가고 있는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노래를 틀고, 그리움과 추락을 노래하는 곡의 마지막 가사를 낮게 따라 읊조렸다.
Will you please take me home...
답 대신 파도만이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