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공학도가
"비행기 타는 게 무서워요."라는 사람을 보면 도대체 무얼 바라는지 모르겠다. 위로를 건네야 할지, "그렇군요. 저는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는데, 사실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안전하답니다."라고 답해야 할지, 답답함을 넘어 막막한 문제라고나 할까.
항공우주공학도로서 너무 냉정하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비행기를 200번 넘게 탔으니 이제는 공감도 불가능해진 걸까.
"그래서 한 번 탄 이후로 타지 않았답니다."라고 한다면 이해야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 부산에 놀러 와서 내게 "국밥이 뜨거워요."라고 한다면, "후 불어 식혀 드세요."라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건네줄 수 있으나, "비행기 타는 게 무서워요."라는 비이성적인 공포에는 "타지 마세요." 외에는 논리적인 해결책이 없다.
이번 학기, 나는 항공, 교통, 광산 등, 산업계의 사고 전반에 대한 '사고 원인과 분석'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대략 40명의 항공우주공학도가 수업을 듣고 있는데, 개중에는 진심으로 '자율주행차'의 운전이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위험하다 생각하는 동기들이 존재한다. '한 번' 치일 뻔했다 거나 위험해 '보였다'는 게 이유다. 불확실성에 대한 원초적 공포와 경험에 기반한 선험적 공포는 배움의 고하 및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결론만 얻었다.
그런 나도, 비행기만 200번 넘게 탄 여행자에게도, 비행기 타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바로 미국으로 돌아갈 때.
기본적인 두려움은 물론 입국 거부의 가능성이다.
2013년, 존스홉킨스 대학의 영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두 번째로 미국을 찾았을 때, 나는 잘못된 비자를 지참한 채 입국 심사대로 걸어갔다. 당시 내 영어 말하기는 화장실만 겨우 찾을 정도라, 이민국 직원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만 겨우 자각했다. 얼떨결에 떠밀려, 심사대를 지나치니, 입국심사관은 "아이니까 봐준다"하는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라고 손을 저었다.
그때의 일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학 입학 후 남미에서 돌아와, 여행한 돈의 출처를 계속 물어대던 - 마약 수입이라도 했다고 밝히기를 원했던 걸까 - 입국심사관으로 인해 비행기를 놓쳤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일까. 정확히 밝히자면, 비행기는 이미 놓친 상황이었고, 입국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심사대까지 장장 4시간이 걸린 걸 제외하면… 이후로도 미국에 대략 10번 정도 더 입국했으니, 트라우마는 있더라도 옅어졌어야 정상이다.
그러니 나는 그보다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고 해야겠다. 유학 생활을 미국에서 하고 있기에 그저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는 게 두려운 거다. 하루에 하늘 한 번 올려보자 다짐한들, 옆에서 변하는 계절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땅에 한숨만 푹푹 박아대며 살아가는 그 멈춰버린 잿빛 시간 속으로.
여행은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조망할 기회를 준다. 일상 속에서 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행이 필요치 않겠지만, 어제가 내일인 나날들 속에서는 자기 마음 하나 돌아볼 기회조차 적다.
그래서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일탈이다. 그래서 나는 그 끝이 비록 방랑과 도피일지라도 여행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낯선 곳에 떨어져 낯설게 행동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산살바도르 공항에 착륙해 마신 공기는 후텁지근했고, 나는 아스팔트 도로가 깔라지 않아 창밖 바람에 실려오는 건조한 흙먼지를 들이켜며 내가 중미에 다다랐음을 실감했다. 저녁노을 진 해변에 앉아 은하수를 봤고,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었으며, 구름이 걷힐 때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루는 붉은 달이 떴고, 하루는 별이 하늘을 수놓았으며, 새벽에는 자색 안개가 마을을 뒤덮었다.
사실 이제 나는 내게 "비행기가 무섭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조소하기보다는 이적이 쓴 책에서 읽은 일화를 주로 떠올린다.
'비행기에서 죽을 확률이 화장실에서 죽을 확률보다 낮다 하니 화장실 가는 것마저 그만 두려워졌다는 일화.'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 나는 매번 고민한다. 비행기를 두려워하고 화장실마저 두려워진 승무원은 어디 없을까. 화장실에라도 숨어, 다시 어딘가로 도망가버릴까, 아니면 기내수하물 보관공간에 눕기라도 해 볼까. 그러나, 내게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작은 용기만 있을 뿐, 일상을 버리고 완전히 떠날 만용은 없다.
정신이 없을 때면 더더욱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한다.
이곳 애틀랜타의 하늘. 아직도 아메리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존과, 며칠 후 급성 장염에 귀국했다 근황을 전해왔으나 이후 코르시카를 여행한 후 연락이 뜸해진 샤넷과, 여전히 엘살바도르에서 호스텔은 운영하고 있을 도나 로사의 하늘. 그래 결국 하늘은 다 같은 하늘이다. 여기서 보나 저기서 보나 하늘은 하늘이고 맞닿아 있다. 우리의 하늘. 모두의 하늘.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여행의 마무리가 늦었다. 그 사이 나는 남미를 한 번 돌았고, 카리브해를 여행했으며, 그 외에 캐나다, 한국, 일본, 필리핀을 여행했다. 북극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여정은 짧았지만 이별은 지지리도 궁상맞았던 나의 엘살바도르 여행을 정리한다.
고도 12800미터에서 시속 816킬로미터로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는 3시간 38분 후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다. 잠시 펜을 좌석의 테이블에 내려놓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욕이 절로 입에서 춤을 춘다.
2024년 8월 24일, 프론티어 항공의 F9 218편은 예정대로 오후 16시 20분에 애틀랜타에 착륙했다. 나는 세컨더리 룸으로 끌려갔으나 다행히도, 그리고 불행히도 풀려나 학교로 돌아갔다.
가끔 미국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비행기에 타는 게 두렵다. 품어서는 안 될 설렘을 안고, 입국하지 않겠노라 선언할 자신이, 일말이라도 분명 존재하는 그 가능성이 두렵다. 입국 거부당한 후 “오호 통제로다” 외치며, 어디 마다가스카르로 떠날 내가 뻔히 그려진다.
다시 펜을 잡고 글을 마무리한다. 다시 일상이다. 정신이 없을 때면 더더욱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노력한다. 하루 종일 하늘만 보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아득함에 현기증이 나를 찾아온다. 다시 떠날 때까지 나를 적시는 지독한 두통이다.
부족한 글에도 그동안 엘살바도르 여행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 북극 여행기는 다음 주 초 중간고사가 두 개나 있어 쉬어갑니다. 모쪼록 연휴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