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계절
시간은 흐른다.
아이슬란드에서 돌아와 나는 때로는 혼자, 또 때로는 여럿이서 낭만이 서린 이 대륙을 돌아다녔다. 아홉 시간 기차를 타고 베를린과 슈베린을 찾았다. 베를린은 잿빛이었고, 슈베린에서는 비가 내렸다. 포르투의 주홍 지붕 아래를 거닐었고, 어떤 날은 오후에 브뤼셀에 가 밤새 술을 진탕 마시고 아침이 되어서야 메츠로 돌아왔다.
떠나고 또 떠났다. 때때로는 다른 대륙으로. 홀로 이집트에 가 피라미드의 건조한 모래먼지와 카이로의 매캐한 매연을 들이마셨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영원한 관계 역시 신기루만 같았다. A와 S와 함께 모로코의 영화 속 파란 마을을, 한때는 여덟이서, 또 한때는 둘이서. 그리고 가끔은 홀로. 동유럽을, 체르마트와 외시넨 호수를, 포스토이나 동굴을… 한때는. 한때는...
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건너편 방에 사는 S는 내게 물었다. “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답했다. “들어봐 (Listen).” “루마니아에서 만난 여자와는 대화가 정말 잘 통했어. 그녀는 호주에 정착할 생각이 없냐고. 기다릴 수 있으니, 호주에서 언젠가 나를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지. 또 파리에서 만난 여자는 담배를 끊겠다고 말만 하고, 내 얼굴에 연기를 쉴 새 없이 뿜어댔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녀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싫지만은 않았어. 심지어 독일에서 만난 여자는 약쟁이였는데도, 사상적으로도 삶을 대하는 자세로도 모든 게 나와 닮아 있어 마음이 갔지.”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외피만 다른 어떠한 이상향에 끌렸다는 걸 S는 알까. 그는 내가 내뱉는 단어들을 허공에서 그러모으는 듯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S는 되물었다.
“다 그런 거라고.” 나는 더 이상 낯섦을 설렘으로 혼동하는 대가를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 유럽이라는 빌어먹을 대륙에는 그래. 이를테면, 마법이 서려 있어.”
나는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남녀도 손 잡게 하고, 연인은 밤을 불태우며, 오래된 부부는 꺼진 짚더미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불꽃 하나를 찾게 해주는 그런 마법이.”
“또 그 얘기야?” “넌 몰라.” 나는 그에게 차마 너는 P를 좋아해 분명 너의 어떠한 한 부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한 관계 따위는 바랄 수 없어. 못 하거나. 안 하거나. 어찌 되든 결괏값은 같아. 그보다 더 궁금한 건…” “그래. P”
“남자들은 잘 웃는 여자에 너무 약해.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 없던 호감도 생길 지경이란 말이지.” “넌 P에 대해서는 마음이 없어?” S는 재차 확인했다. “오로라를 보지 못했어. 그뿐이야. 그리고 이 인간아. 네가 좋아한다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나는 이어 말했다. “시도해 봐. 이러나저러나 후회할 운명이라면 뭐라도 해보는 게 후회가 덜하겠지. (Give it a try. You’ll regret anyway).”
일전 A는 내게 S가 P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여자의 촉이란 건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후 A는 다시 나를 불러내, S가 천천히 다가왔으면 한다는 P의 의사를 전했다. 천천히 다가와 달라는 건 그만큼 좋지는 않다는 것일까. 어쩌면 P 역시 나처럼 이 모든 순간이 한 때의 추억으로 남으리라는 점을 직감하고 있던 걸까. P는 내게 연하는 싫다고 여러 번 강조했고, 불행히도 S는 P보다 어렸다.
나는 S에게 말했다. “결국 우리는 북극만큼 멀어지게 될 거야.”
S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툭 치고 되물었다. “너와 난?” “아닐지도 모르지. 아닐 것 같고.” 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흐렸다.
유럽이라는 연결고리가 과연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남아있게 될까. 나는 부정적이었다. 유럽에서 두 학기를 보낸 나와 다르게 첫 학기가 마지막 학기였던 그에게는 P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고, 마지막 학기인 것만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모든 만남은 결국 하나의 계절에 불과했다.
한 달 뒤, 우리는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누구도 감히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차창에 스치는 모든 풍경이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겨울을 지나, 봄을 너머, 여름의 초입에서. 파리에서 시작한 우리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