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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Sep 05. 2024

눈으로 읽었어요, “우리 엄마는 말이 안 통해”

사춘기를 받아들이는 엄마의 자세.

두 아이의 대화가 내 귀에 맴돈다.

“단풍아, 너는 엄마가 좋아? 친구가 좋아?”

“나는 엄마.” 

“방금 내가 한 질문 반대로 나한테 물어봐.” 

“형은 엄마가 좋아? 친구가 좋아?” 

“나는 요즘 친구가 조금 더 좋은 거 같아.”  


5학년이 되면서 가을이 친구 중에 사춘기가 왔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툴툴대고 엄마가 참견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 모습이 당황스럽고 서운하다고. 나에게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와 대화를 해보면 아직 어린애 같았다. 사춘기가 늦게 올 거라고 예상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카톡 프로필 사진 왜 매일 우리 사진으로만 설정해?”라고 묻는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건 왜 물어? 네 사진 해 놓는 거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엄마 카톡 프로필이니까 우리 말고 엄마 걸로 설정해 놓으면 좋겠어.”


생각해 보면 가을이는 나에게 계속 힌트를 주고 있었다. 내가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엄마 한 번 안아줘.”하면서 안기는 아들을 보며 아직은 아니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낯선 아들의 정체를 인정하면 거리를 둬야 할 거 같아서.


며칠 전, 가을이와 대화를 나누다 답답함이 일었다. 상대방의 말은 생각지 않고 서로 각자의 얘기만 하는 느낌. 

“엄마 나 휴대폰으로 스트레스 지수 검사해 봤거든, 40점 만점인데 40점 나왔어.”

“뭐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아?” 

“내가 생각했을 땐 공부인 거 같아.”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잖아, 엄마가 항상 얘기하듯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생각회로를 바꿔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스트레스를 풀 취미를 해보거나.” 

“나는 게임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던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은 공부는 하기 싫고 게임하고 싶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다고 너 게임 안 하는 거 아니잖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시간씩, 거기에 닌텐도도 하고, 게임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 순간 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또 잔소리 시작이네.’라는 표정. 


최근 들어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잔소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대화가 겉돌았다. 그럴 때는 거기에 멈추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가을이의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며 언성이 높아진다. 널 위한 일이니 내 말 좀 들으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말이 안 통해’란 생경한 눈빛, 그 눈빛에 쿵하고 바윗돌이 내려앉는다. 며칠을 앓는다.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다들 비슷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위로가 되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타이밍에 가을이가 수련회를 갔다. 1박 2일간 집 떠나는 가을이는 너무나 해맑아 보였다. 그날 나는 나만의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고비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해결의 열쇠는 항상 나에게 존재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릴수록 문제는 더욱 쉬이 해결됐다. 바꾸려 하지 말고 인정하며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나아가는 것. 몇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육아도 실패와 좌절, 성공의 경험을 겪으면서 담대함이 생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지.” 항상 아이들에게 했던 말. 이제는 나에게 적용해야 할 타이밍이다. 가을이가 스트레스받는 문제에 대해 기본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욕심으로 밀어붙이는 게 있었는지. 하루 이틀 해야 할 공부를 못했다고 폭풍 같은 잔소리를 토해내진 않았는지.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진 않았는지. 


내가 밀어붙여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시기는 지났다. 먼저 엄마에게서 멀어져 감을 인정한다. 가을이의 생각을 존중하되 고쳐야 할 부분은 단호하고 짧게 일러준다. 기회의 경험을 제시하고 선택은 가을이에게 맡긴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럼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막 발걸음을 뗀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할까. 


너의 하루를 잘 살아내서 애썼다고, 실망감이 있는 하루였어도 고생 많았다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아이의 수고스러운 하루를 지켜봐 주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묵언수행을 해야겠다. 사춘기의 엄마에게 좋은 엄마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기다려주는 것이 좋은 엄마가 아닐까.


수련회에 간 가을이에게 자기 전 전화가 왔다. “이제 씻고 자려고 잘 자, 엄마.”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주는 가을이가 고마웠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당연한 것들이 고마운 것이 된다. “응, 잘 자 내일 보자, 아들.”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는 하루가 저물어간다. 



사진출처: 내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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