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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Feb 17. 2023

손가락이 부러지니 쓰고 싶어졌다.


허둥지둥의 끝은 무엇일까.

내 경우엔  '철퍼덕'이다.






하필 생일날 아침이었다. 간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참이다.

"엥? 벌써 왔어?"


나를 픽업해 주기로 한 고마운 친구는 예정보다 일찍 집 앞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나의 허둥지둥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욕실로 순간이동을 하다 드디어 아파트 정문 앞. 결승점을 코 앞에 두고 방심했던 걸까.


어이없게도 난 자빠지고 말았다. 아주 철퍼덕.




거침없이 하이킥 '꽈당 민정'



당황스러운 순간은 왜 꼭 슬로우 모션으로 흐를까.

몸이 기우뚱하는 순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스크롤 자막처럼 바쁘게 지나갔다.


뭐야 나 또 스텝 꼬인 거야?  괜찮아 괜찮아. 아마추어 아니잖아. 엉덩방아만 살짝 찧고 일어나면 그럼 되지. 가만 이게 아닌데.. 뭐지. 이 불길한 손가락 착지는?


벌떡 일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걸어갈 계획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겨우 겨우 정신을 주워 담고 엉거주춤 걸어 친구 차에 올랐다. 거침없이 하이킥 '꽈당 민정'은 아무리 넘어져도 늘 해맑은 미소를 유지하며 일어나지만 내 얼굴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워낙 잘 넘어져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길바닥과의 스킨십은 매번 적응이 안 된다.

 



아주 잠깐, 약속을 미루고 병원을 가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당직병원을 찾기도 난감했다. 핸드폰에선 빨리  날아오라는 카톡이 아까부터 울려대고 있었다. 무려 세종시에서 1시간 넘게 달려온 또 다른 친구였다. 간밤에 설레서 잠도 설쳤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40대 초반이 아닌가. 손가락이 유난히 땡겨왔지만 자빠졌다고 뼈 부러질 나이는.. 아닐 거야 했다. 눈길도 아니고 메마른 아스팔트 바닥에서 넘어졌는데 에이 설마.


설마는 항상 뒤통수를 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손가락 통증과는 별개로 1년 만에 모인 친구들은 격하게 반가웠다.


손으로는 오른손 놀란 근육들을 얼음컵으로 진정시키며 쉬지 않고 수다를 떨어댔다.

그렇게 '나는 괜찮다 나는 멀쩡하다' 최면 걸며  수다 떨기를 서너 시간. 친구들과 헤어지고 오는 길 망설이다 병원검색을 해 봤다. 마침 당직병원이 가까웠기에 망정이지 멀면 그냥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 골절이네요


의사 선생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알려줬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했지만 어느 정도 예하고 있었던 걸까. 엑스레이 사진 속에서 홀로 시무룩하게 떨어져 있는 손가락 뼈를 보며 나 역시 덤덤했다.

새끼라 다행이다. 그저 이 생각뿐이었다.

 

새끼손가락 하나가 파업했을 때, 못 할 일은 뭐가 있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뇌를 풀가동해서 시뮬레이션해 봤다. 아무래도 불편은 하겠지만 못할 일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손가락 걸고 약속? 뭐 그 정도였다.


예상대로 새끼 없이도 웬만한 일들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기쁠 때 박수치기도 가능했다. 새끼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없었다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얕본 걸까. 그렇게 아홉 손가락으로 생활하길 삼일째. 엄지와 검지 쪽 움직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새끼 쪽으로 힘을 싣지 않으려다 보니 반대편으로 힘이 과하게 몰렸나 보다. 뻐근하고 땡기고. 업무 과다로 이대로는 못 해 먹겠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 같았다.  


뭐든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 어떻게든 탈이 나나 보다. 그제야 미련한 주인은 오른손을 좀 쉬어주기로 했다. 새끼 업무 복귀할 때까지 잘 좀 부탁한다고 현미팩으로 찜질도 해 주고 천천히 주물러도 주었다. 조금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악덕고용주였다. 그렇게 살살 어르고 달래서는 이렇게 느닷없이 노트북 전원을 켜고 있다.  열손가락 멀쩡할 땐 손 놓고 있더니 별안간 키보드를 두드리라 한다. 뭐든 써보라고 재촉한다.


열정이라는 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결핍이 충만할 때 불붙는 법인가. 청개구리 같은 이 심보는 뭐란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쓰고 싶다. 아 쓰고 싶다.


어이없어하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소심하게 둘러대본다.


부상투혼이라는 거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나 봐.





 

                                                                                     이미지 :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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