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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Aug 17. 2024

모두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이곳은 전쟁터니까 

오후 1시, 오늘도 오후근무자들은 병동으로 출근을 하지 못한 채 다들 엘리베이터 앞에 가만히 서 있다. 

점심 이후부터 시작된 김@@어르신의 귀가요구로 출입구가 점령당한 상태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뛰쳐나갈 것을 알고 있기에 오후근무번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어르신 양손 가득 들려 있는 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가 한마디 했다. 

" 어무이 근데 이 기저귀는 누구꺼예요? 어무이 기저귀 안 하시잖아요. 어~ 이거 장@@어르신꺼 아니에요? "

그러나 내쪽으로 휙 몸을 돌리며 어르신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신다. 

" 아~ 뭐라하노 이거 울 며느리가 어제 사다 주고 간 건데~ 이거 내 꺼다~" 

" 어? 그래요? 어제 며느님이 오셨었나? 제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며느님한테 전화 한번 해볼까요? " 

"그래 전화해 보자, 아니 날 왜 여기서 못 나가게 하는지도 직접 물어봐야겠으니 어여 전화해 봐~" 그렇게 어르신을 간호사실에 있는 전화기 쪽으로 유인하는데 성공~ 그렇게 오후근무번들은 출입구를 통과해서 출근했다. 이런 소소한 이벤트는 치매병동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흔하고도, 제일 가벼운 케이스다. 


치매안심병동 시범사업을 하면서 전국 각지의 요양병원에서 행동심리증상(BPSD) 때문에 감당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우리 병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으로 병동 공사를 진행하며 로비가 좀 더 넓어지고, 환해졌고, 어르신들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 온갖 화려한 보이기 식의 장식품들이 가득 전시되었다. 하지만 정작 간호팀도 그대로, 의사도 그대로, 간병사도 그대로 인 이곳에, 단지 치매안심병동이란 타이틀 하나로  몰려드는 환자분들을 우린 온몸으로 지켜 내는 중이었다. 

행동심리증상으로 다른 병원에서 거부했던 이유는 유난히 케어 거부가 심하고 폭력적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조절을 위해선 적절한 약물이 투약되어야 하는데, 약을 먹이는 것부터 어려운 그런 어르신들이 많아진 셈이다. 식사를 거부하고, 약도 거부하고, 우리의 모든 케어를 거부하며 침을 뱉고,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 질부터 하는 어르신들에게 우린 속수무책으로 맞아 가며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다. 


또 다른 김@@ 어르신도 네곳의 요양병원을 전전하다가, 보호자분들이 마지막이라는 희망으로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고 한다. 입원하신 첫날 탈의부터 거부하시고 휠체어 보호대 줄을 이로,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으셨다. 자가배뇨가 어려워 소변줄을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소변 백을 세로로 이로 물어뜯고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만 계속 지르셨다.  침상으로 올라가는 것조차 거부하고, 휠체어에 반쯤 걸터앉은 자세로 발로 병동 안을 돌아다니던 어르신, 그렇게 담당의는 어르신에게 진정제 투약을 지시했다. 문제는 주사를 놓기 위해선 어르신의 협조가 되어야 하는데 , 이런 어르신들의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막강한 힘이  쏟아 난다. 간병사 3명 간호팀 3명이 잡는데도 팔 하나를 지지하기 조차 힘들었다. 어렵고 힘들게 주사를 놓고 30분쯤 지났을까 이내 축 늘어진 어르신을 침상으로 올렸다. 어르신이 입원한 며칠동안 어르신과 대화는커녕 어르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어르신은 진정제에 취해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부르는 소리에도 쳐다보려 하지 않고 창밖만 응시하고 있던 어르신, 난 창문 쪽으로 몸을 옮겨 어르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 김@@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고 늘 하던 인사를 건넸다.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던 어르신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셨다. 순간 나도 움찔... 혹시나 또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르니 내 몸을 뒤로 뺐다. 그 순간 어르신의 한마디 " 나 너무 어지러워 왜 이리 자꾸 잠만 와? " 그 순간 어르신이 짠해진 나는 어르신에게 되어 있던 흉부보호대를 풀었다. 그러곤 " 어르신 저랑 휠체어 타고 나가실래요? " 하며 어르신을 일으켜 휠체어로 옮기는데도 어르신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당신 몸을 내게 맡기셨다. 그러곤 휠체어 보호대를 하려는 찰나 갑자기 어르신이 흥분하기 시작하며, 보호대를 거부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발까지 바둥거리며 어르신이 몸을 들썩이자 간병사, 간호팀에서 어르신을 잡으려 하기에 모두 스탑 시키고, 난 어르신을 향해 보호대를 들어 보이며 " 이거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하곤 보호대를 빼버렸다. 그러자 다시 얌전해진 어르신, 그렇게 그날은 진정제 투약도 없이 어르신의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약을 투약할 때나, 밤에 자기 직전까지 어르신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질을 하긴 했으나 잠시 그러다 스스로 그만두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나고, 어르신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인사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먼저 휠체어 타고 나가고 싶다고도 하셨다. 휠체어로 옮기는데 어르신 다리를 지지하는데 왠지 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어르신 한번 서보실래요? "하는 내 말에 " " 다리에 힘이 없어" 하면서도 날 잡고 서던 어르신, 그렇게 매일 어르신의 보행연습을 도맡았다. 틈날때마다 어르신 손을 잡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어르신 자녀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김@@어르신은  입원 3주가 지난 어느 날 잡아 주지 않아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폭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항상 먼저 환하게 웃어 주시는 스마일 어르신으로 변해있었다. 


또 다른, 폭력문제로 입원하신 이 @@ 어르신, 이 분또 한 입원 하면서부터 일주일에 2~3번은 진정제를 맞아야 할 만큼 침대 사이드레일, 휠체어 바퀴 고정장치, 간호사실 전화기 등을 파손하시는 등의 폭력성이 심한 분이셨다. 이@@님은 언어기능이 손상되어 원활한 대화가 어려워서 어르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왜 화가 나셨는지 알아차리는 게 힘든 상태였다. 분명 어르신이 화가 나는 포인트가 있을 것 같은데 내 손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산책을 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폭력적으로 변하시니 도저히 감을 잠을 수가 없었다. 

담당의는 약을 계속 추가했다. 어느 순간 어르신은 스스로 씹고 삼키는 기능도 잊으셨고, 그렇게 사래로 인해 흡입성 폐렴을 반복하다가 콧줄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르신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어르신의 거부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침상에서 어르신을 일으켜 보행운동을 했다.  문제는 어르신이 다른 사람의 손길은 거부한다는 것, 침상에서 일으켜야 하는데, 어르신 몸에 손만 대어도 울부짖듯 소리를 지르며 거부를 하셔서 기저귀 케어 하면서도 간병사님들이 많이 맞았다. 그렇다 보니 그 누구도 어르신을 침상에서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어르신은 내가 근무하는 날이 아니면 하루종일 침상에만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내 목소리가 들리면 두리번거리며 날 보고 환하게 웃어 주시던 어르신, 다른 사람은 본인 몸에 손도 못 대게 하면서도 내가 얼굴을 들이밀고 웃으며 말시키면 나에겐 팔을 내어 주시 던 분이었다.  내가 병원을 그만두고 3개월쯤 지났을 때 이제 더 이상 어르신은 걷지 못하고, 잘 웃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퇴사할 때 직원들에게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어르신 보행 운동을 부탁했었기에...ㅠㅠ ) 


치매병동을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내가 남아 있었더라면 좀 더 어르신이 웃으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보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을 가져 보지만, 이미 난 더 이상 그곳의 수간호사가 아님을... 어르신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래서 늘 아픔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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