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민이 깊어질때즘, Y시설의 원장장님의 끈질긴 스카웃 제의에 난 회사를 그만두고 Y요양센터의 간호부장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요양원은, 요양병원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일단 병원이 아니기에, 의사가 상주해 있지 않다 보니, 모든 어르신들의 건강은 내 책임이었다. 어르신들의 상태를 알아야 했기에 처음 한 달은 내내 어르신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분들의 약물을 공부했다. 그리곤 장기요양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내가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원장님은 유치원을 운영하시다 친정어머님을 모실 곳이 필요해 사회복지사를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런 원장님은 어르신들을 많이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제대로 된 전문 지식 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매를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을 유치원 아이처럼 대하고 있었다. 수집증이 있고, 타 환우랑 다툼을 자주 하는 어르신들은 파국 반응이라고 칭하며 이럴 경우엔 반복적으로 알려주고 가르쳐야 한다며, 어르신들을 앉혀놓고 잔소리 같은 교육을 진행하거나, 협상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였다.
어느 날, 어르신 한분이 밤새 잠도 안 주무신 채로 돌아다니고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요양보호사선생님들을 때리고 꼬집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이미 이분은 제법 많은 양의 정신행동조절약들을 드시고 있는 중이었는데도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투약이 제대로 됐었는지, 진료받았던 병원에 다시 가셔야 할 상황인지 알아보고 있는 내게 원장님께서는 이런 일쯤은 자신이 컨트롤 가능 하다 하시며 요양원 내에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타 환자가 먹던 약을 빼서 먹이라고 하셨다. (물론 난 원장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병원에 전화해서 닥터에게 알리고, 오히려 드시던 약 중 한 가지를 빼고 투약했다, 약물 부작용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장님이 치매어르신을 대하는 이런 방식들 덕분에 , 오히려 나는 치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단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곳의 다양한 치매전문교육에 다 참여했다.
내가 교육을 듣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원장님과의 어르신 케어에 대한 마찰은 계속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 생신 파티가 진행되었다. 모두 흥이 오른 채 요양보호사선생님들 및 어르신들의 노래가 이어지고, 마지막 마이크가 내게 전달되었다. " 어르신들 제가 누군지 아시죠? "라는 내 질문에... 어르신들은 하나둘 대답을 하시기 시작했다.
"간호부장" " 우리 요양원에서 제일 바쁜 사람" "서부장" "간호대빵" 등등 그러다 내 귀에 그대로 꽂히던 어르신 한 분의 대답
" 언제나 휙~휙~ 지나가 버리는 선생님" 순간 멈칫... 그렇게 행사가 끝이 나고 어르신께 물었다. 그게 어떤 의미냐고... " 매번 뭔 얘기를 좀 하려고 하면 맨날 휙~ 하고 지나가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라는 어르신...
그랬다. 난 이곳에 와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수많은 서류들과, 직원관리, 보호자 상담 등에 파 묻혀 정작 어르신들하고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씩 꼬박꼬박 라운딩을 하긴 했으나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냥 어르신들을 살펴보기만 할 뿐 어르신들과 일상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어르신들이 그리워 돌아온 곳에서 난 다른 일들만 잔뜩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요양원을 나와 예전에 근무했던 노인전문병원으로 돌아갔다.
이곳도 마침 내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부로부터 치매안심병동시범사업 지정을 받아, 이일을 도맡아 할 사람이 필요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