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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Jul 27. 2024

어르신들이 좋은 걸 어떡하냐고요

나는 기저귀간호사입니다. 

병원을 그만두기 며칠 전부터 나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는 모두 떡볶이였다. 

내가 떡볶이 좋아하는 걸 아는 간병사님들, 보호자, 멤버들이 며칠 연속 떡볶이를 직접 해오기도 했고, 유명 맛집에서 포장해서 가져온 분들도 있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신@@ 어르신이 우시면서 당신 죽기 전에 꼭 한번 왔다 가라며 당부를 하시며 내게 쥐어 주신 초콜릿 한 박스 (1개가 아니고 가나초콜릿 10개 들어 있는)... 이분 역시 내가 3년 뒤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이름을 기억하시던 분 중에 한 분이었다. 


병원을 떠난 나는 어느 외국계 회사의 교육간호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타이틀은 분명 교육간호사였으나 실상은 세일즈였다. D, C 지역의 요양병원, 요양원, 요양시설을 대상으로 T 기저귀를 판매하고, 거래처를 관리하고, 기저귀 교육을 하는 게 나의 주된 업무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기저귀를 판다는 것,  내가 세일즈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낯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이 너무 재밌었다. 문제는 내가 일을 너무 과하게 즐겼다는 것이다. 거래처가 요구하거나 필요시 기저귀 관련 교육만 진행하면 되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교육을 진행했다. 치매, 낙상, 욕창 심지어 CPR교육까지.. 그러다 보니 케어에 관심 많은 거래처 대표님, 원장님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보통 기저귀 교육도 간병사, 요양보호사님들 대상으로 이론 및 술기 정도만 진행하면 되는데, 굳이 난 현장에 들어가 어르신들을 만나 직접 기저귀케어를 진행했다. 그렇게 자주 가던 시설의 어르신들을 한분 한분 알아 갔다. 


그중 유독 내 기억에 남는 어르신들이 있다. H요양원에서 기저귀교육을 할 때마다 요양보호사님들로부터  " 아이고~ 최@@어르신은 소변량이 많아서 그렇게 하나만 채웠다가는 다 새지" " 최@@ 어르신은 그렇게 기저귀를 채울 수가 없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던 터라 어르신을 꼭 만나 뵙고 싶었다. 그렇게 최@@ 어르신을 만났다. 분명 팀장님으로부터  " 그냥 반 몸무림 엄청 심하니까 조심해야 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난 너무나 의기양양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고 " 어르신 안~ " 하고 인사도 하기 전에 순간 뭔가가 내 얼굴을 스치면서 내 안경이 날아가버렸다. 하! 그랬다. 최@@어르신은 전직 태권도 사범님이셨다. 당신 몸에 낯선 이의 손만 닿이면 이렇게 누워 계시다가도 발차기를.... 그때부터 난 어르신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르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를 다 획득한 다음, 그다음 기저귀 케어 시간엔 일부러 다리 쪽이 아닌 귀 쪽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 최@@사범님~ 저는 서은경간호사라고 해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내쪽으로 몸을 획 돌리시며 이번엔 주먹을 날리셨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주먹이라 이번엔 가볍게 피하며 어르신눈을 보며 다시 인사를 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더 이상 어르신의 공격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조심스레 어르신께 " 기저귀를 봐드리려고요. 어르신 아까도 기저귀 교환 안 하셨다면서요. 그럼 엉덩이가 다 물러요~ " 하며 바지를 내리려고 하는데, 이런, 어르신이 입고 계신 건 우주복이라 열쇠로 윗 자크를 열어야만 내릴 수 있는 옷이었다. 내 방어하느라 어르신이 우주복을 입고 계신 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같이 있던 요양보호사님이 자크를 열기 위해 몸을 숙이자마자 어르신이 몸부림치시며 다리차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차도 실패. 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요양보호사 3명이 달려들어 강제로 어르신 옷을 탈의하고 기저귀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어르신은 안간힘을 쓰며 빠져나오려 애쓰시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기저귀 교환이 이렇게 까지 힘든 일이었던가... 난 그날 어르신 몸에 손 한번 대보지 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며칠이 지났지만 어르신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퇴근길 어느 날 저녁 H시설 요양팀장님께 전화를 했다. 저녁 타임에는 주로 몇 시에 기저귀 교환 하시는지 확인하고, 시간 맞춰 그곳을 향했다. 간식을 드시고 계신 최@@어르신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어르신은 이미 내 얼굴은 잊으신 듯 경계태새로 날 노려 보신다. 다른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며, 같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르신의 한마디 " 몇 살이야?" "몇 살로 보여요?"라는 내 질문에 " 어른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말대꾸를 해"라는 말에 순간 아차 싶었다. 얼른 환하게 웃어 보이며 "39이요~" 했더니 나보고 한 번서 보라신다. 얼른 간식을 옆에 내려놓고 서자 " 태권도해 봤어?"라고 물으셨다 " 그럼요, 삼촌이 태권도 사범이었어요. 전 검은띠요~ " 하며 내가 선채로 발차기를 선 보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이렇게 태권도로 나는 최@@어르신의 마음을 열었다. 그날, 저녁 최@@어르신은 기저귀 교채 하는 내내 발버둥은커녕 요동도 없이 얌전히 내가 어르신 몸을 돌리고 기저귀를 빼고, 엉덩이를 닦아 내고, 새 기저귀를 채우는 동안 내게 몸을 맡기셨다.  그 뒤 H시설은 추가 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내가 교육한 대로 기저귀를  사용하고, T회사기저귀의 열렬한 팬이 되어  1년 뒤 시설 대표가 바뀌면서 기저귀가 비싸다고 다른 기저귀로 교체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요양보호사님들이 앞장서서 T회사 기저귀를 반드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덕분에 나는 계속 거래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내게 늘 호의적이고 직원들이 항상 반겨 주던 C 센터에 기억나는 어르신도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언제나 휠체어에 앉아 묵주 기도를 하시던 분. 갈 때마다 내 세례명을 물어보시던 장@@어르신.(내 얼굴은 기억하셨으나, 내 묵주 반지를 볼 때마다 언제나 처음 본 것처럼 " 어머 선생님도 신자셨군요, 본명이 뭐예요? "라고 매번 물으셨다 ), 초창기 내 거래처가 얼마 안 될 때는 모든 거래처를 최소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방문을 했었다. 하지만 거래처가 늘어날수록 유지가 잘 되고 있는 시설은 방문하기가 버거워지면서 신규 거래처 중심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에도, 난 C센터는  꼭 시간 내서 들렸었다. 장@@어르신을 뵙기 위해서 말이다. 

이분도 사연이 있었다. 장 @@ 어르신은 드시는 약들이 워낙 많았고, 당뇨로 인한 피부질환들이 진행 중이었고, 특히 엉덩이에 기저귀 곰팡이가 계속 재발해서 간호팀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또 드시는 약들 때문에 소변에서 심한 악취까지 발생하다 보니 요양보호사님들도 기저귀 교환 할 때마다  그 냄새들 때문에 힘들어했었는데,  내가 어르신 엉덩이를 확인하고, 기저귀를 교환하면서 웃고 있던 내 표정 때문에 어르신이 나한테 반했다고 한다. (그때는  무슨 소린가 했다. 그러다 내가 그만두기 며칠 전 한 달 가까이 나와 함께 같이 다니던 내 후임이  " 서 대리님  어르신들 기저귀 교환 할 때 본인 표정 어떤지 모르시죠?  엄마가 아기들 기저귀 보면서 아휴~ 똥이 참 이쁘네~ 하는 딱 그 표정이에요 "라고...) 또  몇 달 동안 고생했던 어르신 엉덩이 피부가 내가 조재한 연고 도포 후에 호전되어 한 달 만에 피부가 깨끗해졌으니  어르신에게 나는 그저 고마운 존재로 각인되었고 나는 < 기저귀간호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난 회사에서도 영업사원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나의 허기였다. 내 매출은 늘어가고 있지만, 정작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서 기저귀 교환하면서 만나는 어르신들이 자꾸 떠오르고, 그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날 알아보기라도 한 듯, 거래처 몇몇 대표님들로부터 러브 콜이 오기 시작했다. " 서대리님 ~ 이제 기저귀 그만 팔고  그만 우리 시설에 와서 나랑 일하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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