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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Dec 04. 2024

 피로 물든 침상  

몸이 아픈것 보다 어쩌면 혼자라는 고독이 더 지치셨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바쁜 인계 시간 외래에서 환자 한분이 입원한다는 전화가 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익숙한 얼굴의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내리셨다. 

당뇨를 포함한 여러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던  할머니는 우리 병원 단골이었다.

잊을만 할때면 어김없이 자주 입원을 하셨던 분이라 나는 인계 하다 말고 일어나 어르신께 인사를 건냈다.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면회객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할머니는 인기가 많으신 분이었다. 

원래는 제법 퉁퉁 하셨었는데, 이번엔 눈에띄게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많이 아프셨냐는 내 질문에 " 나이 들어 좀 이뻐 보이려고 다이어트를 좀 했어~ "하며 농담을 하시는   할머니는 내가 입원 기록을 작성하는 내내 기침을 하셨다.


x-ray상에 폐렴 소견이 보여 입원을 하신

 할머니에게 가래통을 드리며,

내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래 뱉어서 간호사실로 가져다 달라 설명하자

"나 가래는 안 나와~" 하면서도 연거푸 기침을 하셨다.


보통 호흡기 환자들은 정규적으로 가래 검사를 시행한다.

항생제를 쓰기 위한 배양검사이기도 하고, 혹시나 다른 전염성 호흡기 질환을 가려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가래 검사를 위해서는 아침에 공복 시에 가래통에 가래를 뱉어내야 하는데,  할머님은 가래가 안 나온다며 차일필 계속 미루고 계셨다.

억지로 흡입기를 이용해서 튜브로 가래를 뽑기도 하지만, 할머님은 그것마저도 거부하셨다.


하지만, 해열제를 쓰는데도 할머님의 열은 지속되고 있었고 기침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강제성을 동원해 입원 4일 차에 가래 검사를 시행했다.


그러고 1주일 뒤,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할머니가 활동성 결핵으로 진단이 된 것이다.

대학병원도 아니고 일반 종합병원이었기에 격리자체가 불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압병실? 그 당시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를 때다.

다행히 할머니는 2인실을 사용 중이었다. (그때 분명 옆자리에 환자가 있긴 했는데, 며칠 있다가 퇴원을 한 상태였다. )

활동성 폐결핵은 법적 감염병 2급이며 신고대상이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조사가 나오고 병동 안은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할머님을 처치했던 우리 층 간호사들 모두는 검사를 했고, 추적 감시 대상이 되었다.

입원시 보호자로 함께 있던  따님은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면회를 금지했다.


할머님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누군가는 할머님을 계속 처치를 해야 했다.

문제는 아무도 할머님 방엔 들어가려고 하질 않았다.

결핵은 주로 기침, 재채기, 대화 등을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공기 감염병이라 수시로 기침을 하는 할머님과 가까이하면 결핵이 옮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할머님의 처치는 내가 전담 마크 하기로 결정 했다.

지원자가 나뿐이었기에 내 근무 외에 시간이 문제였다.

결국 나머지는  가위바위보로 지는 사람이 들어가는 걸로 합의를 했다.


결핵을 진단받고 나서 할머님의 기침은 점점 심해지셨고, 이제는 객혈(피가래)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내게 병원에서 지급된 건... 달랑 수술용 덴탈 마스크 한통이었다.

내 얼굴이 작아서 끼나 마나 한 그 헐렁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는 수시로 할머님 방에서 가래를 뽑고,

약을 투약하고, 할머님을 돌봤다.

하지만 할머님은 내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나한테 옮으면 어쩌려고 자꾸 내 방을 와... 아직 한창 젊은 아가씨가 겁도 없이" 하는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내가 처치를 끝내고 나가려고 하면

" 내가 콜벨 누르면 나 보러 와 줄 거지? "하고 내심 내가 방에서 나가는 걸 서운해 하시곤 했다.


그렇게 내가 할머님을 돌본 지 3일째 되던 보건소에서 검사해 갔던 우리 층 간호사들의 결과가 나왔다.


할머니전염력은 엄청났다.

나를 제외한 우리 층 모든 간호사들의 기본 결핵 검사에서 다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환자분들은 다 음성이었다.


병원은 비상이 걸렸다.

그제야 병원 측에서 나의 할머님 방 출입을 금지했다.

할머니가 약을 투약한 지 이제 겨우 4일 차였기에 여전히 전염성이 남아 있었고,

나만 결핵에 음성 반응이 나온 터라, 나까지 감염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난 4일 동안 난 할머니가 뱉어낸 피 가래애 노출된 상태고 이미 내 옷에,얼굴에 다 튀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또한 병동 간호사들이 다 결핵 양성이 나오면서 추가 배양 검사들이 들어가면서 다른 병동에서 우리 병동으로 헬퍼들을 왔는데 여전히 할머님 방은 들어가길 꺼려해서 결국은 박 할머니는 내가 전담할 수 밖에 없었다.


결핵진단을 받고 나서 약물 투약을 시작하면 보통은 2주 후부터 전염성이 없다고 본다.


약을 투약 한지 10일쯤 지나고 있을 때, 할머님의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셨다.

원래도 위장탈이 잘 나던 할머니는 독한 결핵약 투약에 매일 토하시며 힘들어하셨고,

입맛이 없어 식사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간호사실에 있던 두유나 주스등을 가져다 드려도 빨대를 빠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셨다.

그러면서 " 나 이러다 죽으면 어떡해? 내 새끼들 얼굴도 못 보고 나 죽으면 어떡하지? 우리 애들 언제 볼 수 있어? " 하며 혼자 있다는 외로움에 더 힘들어하셨다.

" 할머니, 이제 4일 정도만 있으면 보호자 면회도 가능하데요. 2주 후부터는 전염성도 없어지니까.. 며칠만 더 참아 보세요~"라는 말 밖에는 내가 해드릴 말이 없었다.


그러곤 이틀 뒤 내가 밤 근무 날이었다.

할머님 방에서 호출벨이 울렸다.

그때 응급실에서 환자가 올라온다는 전화를 받고 있던 중이었기에 다른 간호사에게 무슨 일인지만 확인하라고 하곤 환자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할머님 방에 갔던 간호사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난 할머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머니는 엄청난 피를 토하고 계셨다.

입에서, 코에서 계속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다른 간호사에게 빨리 응급실 당직의에게 보고하라고 하곤

할머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었다.  

내가 닦아 내는 속도 보다 할머님이 뿜어 내는 피가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날 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없이 피를 닦아내고,

계속해서 CPR을 했던 기억 밖에.....

하지만,

할머님은 끝내 돌아가셨다.

그 방은 온통 피 비린내와 시트며, 내 옷 또한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할머님이 돌아가신건, 어쩌면 병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치매 병동에서 코로나때 보호자 면회가 단절되고, 병실에 혼자 남겨 지자 많은 어르신들이 갑작스레 컨디션들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우울증이 생기신 분들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나이들수록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내지 못하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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