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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Mar 01. 2024

루이 14세가 ESFP였을까?

보르비콩트에서

  혼자서 여행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그저 상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더 신나게 상상을 이어가기도 한다. 너무 강렬한 N이어서 가끔 생사람을 잡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뭔가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고흐의 영혼을 특별한 방식으로 만났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도 내가 N이기 때문이고, 퐁네프다리를 건너다가 셰익스피어가 내 쉰 숨을 마시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N이기 때문일 거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어쩌면 우디앨런도 파리에서 나 같은 생각을 하다 그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라고는 하지만 확신했다.


  보르비콩트 성에서도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보르비콩트 성(Château Vaux-le-Vicomte)은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한 원인이 된 성으로 유명하다. 이 성은 루이 14세 당시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가 지었다. 푸케는 막강한 권력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물려받은, 소위 금수저다.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화가 샤를 르 브룅(Charles Lebrun), 조경사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otre)에게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각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던 이들은 3년에 걸쳐 이 성을 완성했다.   


  460만 평의 대지 위에 천 개의 분수가 있는 옥외 극장, 금실로 짠 태피스트리와 촛대, 그리고 벽화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어마어마한 작품들은 마치 모두 정확한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분명하고 정확하다. 어느 것도 어지럽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그저 과시를 하기 위한 용도로 늘어놓은 느낌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그것은 그 성을 지은 이들의 안목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것을 승인한 이가 부케라고 한다면 푸케의 예술적 감수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원도 각을 재고 선을 잰 듯 반듯반듯하고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성을 돌아보면서 푸케는 SJ에 가까운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짙어져 확신하게 된다.  

성에 바라본 정원 / 성 반대편에서 바라본 정원 / 왕관 분수대 (이미지 퍼옴)

  정원 가운데에 성과 평행한 방식으로 대운하가 있는데, 성과 가까운 앞 쪽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먼 쪽은 언덕으로 감싸져 있다. 운하를 지나 반대쪽은 낮은 언덕에 감싸져 있다. 분수대에서 왕관 모양으로 물이 솟아오르면 정말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성 내부에는 푸케의 갤러리, 건축가들의 갤러리,  뮤즈의 방, 게임의 방, 헤라클레스의 방, 그랑살롱, 도서관 등 콘셉트가 있는 온갖 방들이 있다. 루이 14세의 방과 서재, 왕의 아들, 손자의 방까지 꾸미고, 왕의 동상이나 초상화도 잊지 않았다. 푸케는 완공을 끝내고 왕과 귀족들을 초대했다. 멋진 음식, 화려한 불꽃놀이, 음악, 미술, 연극 등 온갖 예술의 향연의 자리를 열어 과시했다.


푸케 자신의 방과 갤러리 (이미지 퍼옴)
루이 14세를 위한 방 (이미지 퍼옴)

  모두가 얼마나 감탄에 감탄을 하며 그 자리를 즐겼을까? 모두는 아니겠지? 게 중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돈지랄 오지게 한다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루이 14세는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위한 이 멋지고 화려한 연회를 즐기며 좋아했을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을 사랑했던 푸케는 아마 루이 14세를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춘다는 느낌으로 왕의 동상을 세우고 초상화도 그리고, 왕과 왕족을 위한 방 하나하나를 더할 수 없이 화려하게 만들어 꾸몄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 성은 왕궁이 아니라 신하인 자신의 거처가 아닌가.


  진정 왕을 존경했다면 그런 성을 자신의 거처로 지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로 생각해도 왕보다 돈 많고, 예술적 감성이 높은 신하가 왕의 거처보다 더 화려하고 큰 집을 짓고, 최고의 예술을 한데 모아 왕을 초대한다면, 최고로 멋진 방에 왕의 명패를 붙이고 언제든 와도 좋다고 방 하나를 내준다면 그 신하는 어떻게 될까? 왕의 입장에서 모욕적인 일일수도 있다. 실로 루이 14세는 그날 연회를 끝까지 즐기지 않고 가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푸케는 공금횡령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누명을 벗으려는 푸케의 노력은 통하지 않았다. 왠지 루이 14세는 F, 푸케는 T가 아닐까 싶다.


 이후 루이 14세는 그 성을 지은 사람들을 다시 다 불러 모아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보르비콩트를 3년 만에 지었는데, 베르사유 궁전은 50년 걸려 완공한다.  베르사유는 정말 어디에 뭐가 있는지 보느라 정신이 없다. 하루 온종일 돌아다녀도 뭔가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루이 14세는 자기가 보기에 좋았던 모든 것을 다 모아서 세상 하나를 새로 만들어 놓은 느낌이다. 성을 돌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둘러보다 보면 루이 14세는 FP일 것만 같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어딘가 보르비콩트랑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질서 정연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수집한 느낌이 더 든다.   


베르사유 궁전의 극히 일부 이미지 (이미지 퍼옴)

 



  푸케와 루이 14세 사이에는 왠지 엄청난 신경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푸케는 스스로 왕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루이 14세와 푸케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 어떻게 절대왕이 되는지에 대한 비하인드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푸케가 루이 14세를 자극하고 신경 쓰이게 하는 인물로 설정해서 말이다. 서로 격이 비슷한 가문이니 어릴 때부터 가까운 거리에 두고 멀어지는 과정과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까지, 아주 드라마틱하게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푸케는 ENTJ, 루이 14세는 ESFP로 씌우면 재밌지 않을까?


  근거 없이 생사람 잡는 N의 상상력으로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씌우면서 보르비콩트를 거닐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상상하면서도 보르비콩트는 너무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베르사유보다 보르비콩트가 더 맘에 들었다. 베르사유는 없는 게 없고, 정신없이 크고 화려하려고 애쓰는 느낌이고, 보르비콩트는 크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면서도 우아하고 품격이 있어 더 고급스럽다. 가능하다면 베르사유는 가끔 놀러 가서 구경하는 곳으로 삼고, 보르비콩트에서는 살고 싶다. 이건 정말 그냥 보르비콩트가 마냥 더 좋다고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감상이다.


  보르비콩트를 돌아보고 나서 문득 하회마을이 생각났다. 하회마을을 여행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만약 옛날에, 나에게 터를 잡아 살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어디든 찜하라고 한다면 분명 이곳을 골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풍수지리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왠지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폭 싸고도는 물과 든든히 받치고 있는 느낌의 낮은 언덕 때문인지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졌다. 보르비콩트에서 느낀 감정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치 나를 폭 안아주는 그런 느낌? 파리를 다시 가게 된다면 보르비콩트는 꼭 다시 가고 싶다. 갈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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