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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Mar 08. 2024

26년동안 꾸민 집, 라 메종 피카시에트

  샤르트르를 가면 일단은 샤르트르 대성당을 먼저 찾게된다. 이곳은 1126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1194년에 화재로 크게 소실되고, 거의 60년에 다다르는 기간 동안 재건하여 1952년에 완공한다. 그리고 1979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데 그 이유가 '고딕양식의 결정체'라는 거다. 그래서 지금은 샤르트르 대성당이 고딕 양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순 없지만 예술이나 종교, 그리고 인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날은 흐렸지만 마을은 참 예뻤다. 여기서 며칠 지내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나지막하고 고요해서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신비롭다는 생각도 했다. 마을을 돌아보며 조용한 산책을 즐기고 있었는데 공놀이를 하던 남자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그러다 남자아이 하나가 벤치에 앉아있던 여자 아이를 데리고 나에게 와서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명확하게 의사소통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자기를 찍어가라는 느낌이었다. 대체 왜? 이러다 삥 뜯기는 건 아닌가 싶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이미 포즈를 잡고 있어 안 찍기도 민망했다.



  여행을 오기 전에 나는 아주 계획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했다.  B5사이즈 노트에 하루하루 일정을 한 장씩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이동경로, 경비 빠짐없이 메모해 두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휴무도 체크하고 오픈 시간도 확인했다. 지하철 노선, 버스 번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정리했다. 샤르트르도 마찬가지였다. 성당 버스정류장에서 4번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La maison picassiette'(피카시에뜨 집)에 갈 수 있다. 헉! 그런데 멘붕이 왔다. 바로 전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 정보만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기에서 흠집이 나다니.


  성격 좋아 보이는 한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다. "Excuse moi, Bonjour" 거기다 "Il fait beau" 어설픈 프랑스어로 흐린 하늘에 대고 날씨가 좋다는 스몰토크까지 던졌다. 아주머니는 활짝 웃더니 "C'set jolie" 귀엽게 봐주었다. 그리곤 손짓을 더해 길을 건너라고 일러주었다.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와서는 내 손목을 잡아끌며 무단횡단을 했다. 길을 건너고서야 손목을 풀며 발로 땅을 쾅쾅 구르며 힘주어 말했다 "이씨"(ici 여기)


  피카시에트의 집에 가려고 버스를 내렸는데 꼬마 4명이 나를 힐끔 보길래 외국인 버프를 받아 괜히 말을 건넸다. "Bonjour~" 했더니 까르르 웃으며 받아줬다. "라메종 피카시에뜨?"라고 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갑자기 승부욕이 절대음감 게임이라도 하는 듯 이렇게 저렇게 억양도 바꿔보고 발음도 조금씩 다르게 말했다. 어느 순간 한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눈을 반짝이며 자기들끼리 대화하더니 길 건너를 향해 손가락을 세워 팔을 뻗었다. "Merci."


  길을 건너 오르막을 향하는 나를 꼬마들은 자꾸 따라왔다. 자기들끼리는 무슨 재밌는 놀이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웃음기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한 아이가 힐끔 눈치를 보더니 내 한쪽 팔을 잡고 반응을 채 하기도 전에 또 한 명이 다른 팔을 잡았다. 그리곤 나를 잡아끌며 뛰듯이 걸었다. 그러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또 한 명이 등을 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렸다. 한 명이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난 이들에게 체포된 채로 목적지에 닿았다. "같이 갈래?" 묻기도 전에 사라졌다.  


  피카시에트는 사람 이름 같지만 그렇지 않다. 프랑스에서 식사 때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 사람을 '피카시에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집은  '레이몽 이지도르'가 살던 집인데, 그렇다면 그는 밥을 얻어먹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는 묘지관리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묘소에 다녀가면서 두고 간 화병이나 깨진 접시들을 모아 그 조각들로 이 집을 모자이크 하듯이 한 땀 한 땀 꾸며왔다.  이 조각이 4백만 개, 무게로는 15톤에 달한다고 하는데, 아마 그 부분을 강조하려고 피카시에트의 집이라 부르는 것 같다.


  물론 그 사실만으로도 이 집은 정말 대단하게 여겨진다. 하나씩 하나씩 모아 26년에 걸쳐 꾸민 것이라 하니 그 집념과 노력이 어찌 쉽겠는가. 게다가 거기엔 파리의 유명한 예술작품들을 모방한 흔적이 여기저기 구석구석 수줍게 숨어 있다. 어떻게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수준에 피식피식 웃음이 터진다. 이게 모나리자라고?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렇게 웃다가 나중엔 어딘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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