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e Dec 15. 2023

프롤로그

1

   여중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서 식당에서 친구들이랑 밥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학교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교육대학원을 갔다. 졸업하면 기간제교사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원서를 내도 면접 보러 오라고 하는 곳이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을 선택할 때 주변에선 정신 차리라고 했다.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뚝심이 있었다고 나답지 않게 과감했다. 학교에서 원생조교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생활은 고달팠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증명사진을 찍어 16장을 뽑았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다시 그만큼 추가로 뽑았다. 괜한 자격지심에 사진을 잃어버렸다는 쓸데없는 거짓말을 덧붙였다. 채용공고가 나는 족족 원서를 써서 갖다 냈는데 불러주는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괜히 다른 일을 시작하면 아예 멀어져 버릴까 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 학교에서 면접에 불렀는데 가보니 한 명 뽑는데 13명이나 와있었다. 응시한 모든 사람들을 불렀던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라야 면접 기회도 얻는 건가 싶은 생각에 처참했지만 그래도 소중한 기회였다. 사립학교였는데 이사장님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 건 너무나도 잘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나를 돌려보냈다. 


  너무도 막막하고 막연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한 10년은 늦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조급했다. 하지만 좁고 꼬불꼬불한 고난한 시간이 지나면 그 끄트머리 환한 빛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카드빚으로 생활비를 쓰고 다른 카드에서 돌려 막으면서 과외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과외를 시작하면서 대학원을 말린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틀린 시간을 살아온 건가 싶었다. 살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품을 산 것도 아니고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생활비로 카드빚이라니. 


  생일이며 뭐며 친구들의 전화는 모조리 거절했다. 조용히 과외 세 개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교육청에서 올라오는 채용공고를 매일 확인했다. 시간강사든 뭐든 무조건 원서를 썼지만 면접조차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도 간간히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파리에서 죽는 상상을 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그곳에서, 나를 아는 이가 단 하나도 없는 그곳에서 내가 죽어버리면 그냥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엄마가 던진 빈 말이 생각이 났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 유럽 어디 가서 큰 세상을 좀 봐. 500 정도는 해 줄게.


  비행기를 뒤졌다. 진짜 갈 생각은 아니었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다 베트남을 경유하는 파리행 왕복 비행기가 80만 원에 올라온 게 보였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삥 뜯듯이 돈을 받아냈다. 엄마한테는 한 달짜리라고 하고서는 3주짜리 여행을 준비했다. 


  파리에 가고 싶어, 프랑스!라고 했을 때, 엄마는 말을 더듬으면서 테러 얘기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해 본 말이야~ 하고 집어넣었겠지만, 결제일이 다가오는 카드대금 150만 원이 막막했다. 카드빚이 없었다면 아마 실행하지 못했을 여행인지도 모른다. 통장에 꽂힌 500만 원 중에 150만 원은 스쳐 지나갔다.


  교육대학원에 가서 영문으로 교원자격증을 뽑아달라고 했다. 국어과라 영문으로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필요하니 뽑아달라고 떼를 썼다. 나 때문에 양식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어강사 자리라도 알아보고, 없으면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눗방울처럼 얇고도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그땐 처절했다.

  

  그렇게 준비된 여행이었다. 난 정말 우물 안 개구리여서 여행에 대한 요령도 없었다. 파리여행에 관한 책을 한 권 사고, 회화 책 한 권을 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파리에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서 여행 준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청 꼼꼼하게 준비했지만 무모했고 엉망진창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