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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Mar 30. 2024

[어나더 라운드] 비틀거리거나 춤추거나

1-1. [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그

 비틀거리고 춤을 추며 살아보자.



영화 속 네 명의 주인공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삶이 더 풍족해질 거라는 한 심리학자의 주장을 실험해 보기 위해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 근무 중에도 술을 마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할 것이고, 상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해직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당연히 몰래 마신다. 예상되는 결말처럼 아주 조금의 적정한 술은 삶에 만족도를 높여준다. 학교 선생님인 넷은 학생들과 더 활발히 소통하며 만족스러운 수업을 진행하며 자신감이 생기고, 가족들과도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과하게 마시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끝내 넷 중 한 명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이른 나이에 죽음에 이른다.


이러한 스토리야 어쩌면 뻔하게 예상되는 결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다른 데 있다.

움직임.

삶을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그 몸짓은 적당한 음주가무로 후끈해진 분위기에 취해 흔들거리는 가벼운 춤이며,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부어 넘어지고 피가 나며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비틀거림이고, 어느 순간 내 안 깊숙이 숨겨져 있던 에너지를 뿜어내는 춤이다.


영화 초반에 우울하던 주인공에게 움직임은 거의 없다. 얼굴의 근육들이 움직이지 않아 표정이 없고, 교탁에 앉아 조용히 입만 움직이며, 당연히 춤은 추지 않는다. 그러던 그가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고 술을 마시며 움직인다. 살아 움직인다. 교실을 누비며 큰 목소리를 내고,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춤을 추지 않는다. 과한 음주로 가족과 관계가 틀어지고, 친구를 잃는다. 현실에 부딪힌다. 그는 다시 고치로 들어간다. 움직임은 둔해지고 무표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노력한다. 별거하게 된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돌아와 달라 말한다. 죽은 친구의 관을 들어 옮긴다. 친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멀어진 아내의 마음을 가까이 당긴다. 그리고 그는 자신 안에 갇혀있던, 아주 깊은 곳에 있어 끌어내기까지 너무나도 오래 걸린 에너지를 쏟아낸다. 춤을 춘다.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몸을 던진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움직임이 적어진다. 신체적으로 아플 때야 덜 움직이고 편안히 누워 쉬는 편이 좋겠지만, 정신적으로 아플 때는 움직여야 한다. 유난히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빨리 아무도 없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 진다. 웃을 일이 없어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피곤하다. 그저 내 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돌처럼 굳어간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올려다보이는 천장이, 나를 덮고 있는 이불이, 우울감과 실패감, 온갖 과거의 실수들과 미래에 대한 조바심이 나를 짓누른다. 그럴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인다. 그게 무엇이든 움직여본다. 괜히 서랍을 정리하고, 미뤄두었던 화장실 청소를 하고, 갑자기 먹고 싶은 초콜릿을 사러 나간다. 나간 김에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본다. 그렇게 팔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내 머릿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던 것들이 잠잠해진다. 그렇게 다시 고요한 집으로 돌아와 누웠을 때 내가 힘을 내서 움직였음을 그래서 이렇게 편히 쉬어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쉬고 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아 움직이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움직임이다. 우리는 걷고, 뛰고, 밥을 먹으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물며 식물도 햇빛을 따라 몸의 방향을 바꾸고 물을 따라 움직이며 성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 나간다.

때론 열심히 뛰어 나가고, 때론 고통에 몸부림치며, 행복에 겨워 몸을 들썩이고, 힘이 빠져 비틀거리며, 부딪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다.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도 우린 미세하게 움직인다. 들숨과 날숨에 가슴이 부풀고 가라앉으며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나가는가.

비틀거리거나 춤추거나,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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