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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Apr 06. 2024

[한나] 백합과 고래, 그리고 계단

1-2. [한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나는 괴롭다.

너무 괴로워서 심장이 쿵쿵거리고, 숨이 벅찰 만큼 괴롭다.

나는 한나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에 휩싸인 그녀의 삶에서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절규를 들었다. 외치고 싶은 무언가를 집어삼키고 침묵을 지키며 오늘도 깨끗이 몸을 씻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는 우리 내면에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보았다.

그 소란스러운 고요함을 지속해 가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태로운 것인지 안다.





#1. 영화의 정서


어떤 순간에는 사건보다 그 사건을 통과하는 인물의 내면을 더 유심히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나는 <한나>를 보며 지금이 그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숨 죽이며 오를 때 침울해진 기분과 함께 의문만 잔뜩 남아 이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사실 고민했다. 남편의 상황, 아들과의 관계, 장롱 뒤에서 발견한 사진 뭉치 등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만 자세한 정황을 알 수는 없다. 마치 CCTV에 찍힌 한나의 모습들이 조각조각 이어 붙여진 것 같다. 그냥 그런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궁금했다. 남편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감옥에 가게 된 것인지, 더 나아가 진짜 죄를 지은 것인지 아니면 본인 말대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들과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냉정하게 엄마를 내쫓는 건지. 윗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이들이 주황색 물에 들어가서 그녀의 집 천장에 물이 새게 되었는지, 그래서 천장의 얼룩을 해결하기 위해 장롱을 앞으로 당겼다가 발견한 사진은 어떤 사진이길래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명확한 설명 없이 끝나버린 영화가 황당무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재차 생각해 보면 그런 명징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사건들의 전말과 결말을 일일이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한나의 표정과 몸짓, 행동들을 통해 그녀의 내면세계에 눈길을 주는 것이 보다 의미 있지 않을까.


오프닝 씬에서 감독은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한나’라는 인물의 감정에 주목하여 영화를 감상할 것을 가이드해 주었다. 연기 수업에서 목을 풀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한나가 등장한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소리를 낸다. 이 소리에는 어떤 맥락이나 의미가 없다. 설명할 수 없다. 오롯이 느낌만이 존재한다. 그저 그 소리를 듣고 어떤 감정에 휩싸인다. 이 영화도 그렇게 느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 죽은 고래와 죽어가는 개


죽은 고래는 해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커다랗게 누워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너무나도 거대해서 외면할 수 없이.

고래가 어쩌다 해변까지 와 죽게 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어쨌든 고래는 지금 여기에 누워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고, 다시 바다로 보내지도 태워버리지도 못해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고래가 있다. 어디서 태어나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는 불안, 고통, 외로움들이 밀려와 고이고 고여 썩어간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방치하고, 외면하고 싶지만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건 너무나도 거대해져 뚜렷이 보이고, 냄새를 풍기며 명백히 맡아진다.


그녀는 남편이 숨겨두었던 사진을 발견한 뒤 죽은 고래를 보러 간다. 사진이 담긴 봉투는 남편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흔드는 무언가이다. 그 사진은 그녀에게 고래를 직면하게 한다. 어쩌면 죽은 고래는 남편, 혹은 그의 어두운 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제 죽었고, 악취가 난다. 냄새는 감춰지지 않듯이 그의 죄는 수감되었지만 여전히 주황빛으로 아이들을 물들이고 한나의 천장을 적신다. 주황빛 물에서 아이들을 건져 올린 그녀의 팔뚝을 물들인다. 아무리 닦아내도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하늘에 자국을 남기고 그녀의 가슴에 자국을 남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음식도 먹지 않고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를 떠나보낸다. 그녀는 개를 씻기고, 밥을 주며 정성껏 돌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놓는다. 내 손으로 먹이고 씻기던, 돌보던 이들을 모두 보내고 온전히 혼자가 된다.




#3. 가방 속에 없는 것 


그녀는 갑자기 가방 속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무언가를 찾는다. 불현듯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절박하게 뒤져 보지만 그녀가 찾는 그것은 없는 듯하다.  

한나가 급히, 간절히 찾던 그것은 그녀의 자아인가. 혹은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믿음, 어쩌면 엄마로서 아들과 손자의 사랑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리고 여린 순수함인가.


그녀는 어린 존재를 돌본다. 그것을 사랑하고 그리워함과 동시에 그 앞에서 초라해지고 작아진다. 그녀의 몸은 메마르고, 탄력을 잃어 쳐졌다. 그녀는 그렇게 되기까지 아내로서,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해내는 연기자처럼 자신을 지우고 살아온 듯하다. 그런 그녀 곁을 모두 떠난 뒤 한나는 자신을 매만지며 삶을 이어나간다. 단정히 씻고, 단정히 옷을 입으며 가방 안에는 없는 그것을 찾기 위해 고요히 몸부림친다.




#4. 백합과 계단


한나의 감정은 그녀가 타는 지하철만큼 아래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그녀의 남편은 감옥에 있고, 아들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며, 보고 싶은 손주는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 백합을 사며 기분 전환을 해보기도 한다. 정성스레 화병에 꽂아 이쪽 탁자에 아니 저쪽 탁자에 놓아본다. 수술을 따주며 이 희망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길 바라본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아들은 엄마를 매몰차게 쫓아내고 그녀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숨죽여 운다. 메마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가린 채 속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운다. 그리고 백합은 아직 시들기도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활짝 피었다가도 금방 꺾이고 시들고 밟힌다. 그저 견뎌나가야 한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고된 일인지 매 순간 다시 깨닫는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지하철을 타고 떠나버린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알 길이 없다. 위태로운 그녀의 뒷모습, 당장 쓰러질 듯 부스러진 표정을 보니 당분간 그 우울함 속을 나아갈 듯하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남의눈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연인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 소리칠 수도, 구슬픈 선율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출 수도 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계단을 딛고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위를 바라보았을 때 천장에 얼룩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러다 우연히도 알고 싶지 않은,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 지하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항상 우리의 편을 들어주진 않는다. 예고도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빠뜨리고 울린다. 눈물을 흘릴 때 삶이 냉정하게 말한다. 나는 멈추지 않으니 알아서 그치고 나아가라고.






@cinematic.mm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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