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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May 20. 2024

어바웃 바쁨과 회피와 추

어바웃 시리즈

 지난 주 주말에는 아주 바빴다. 금요일 저녁, 내가 해야 할 일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적다는 걸 제대로 깨닫게 되고 나서는 토요일 아침 6시 좀 넘게 일어나서 과제를 하고, 과외를 하고, 또 처리해야 할 문서 작업을 하다가 밴드 엠티를 하러 서둘러 대성리로 향했다. 얼떨결에 밤샘 엠티를 하고 나서는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제출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 합정으로 가서 과밴드 공연을 마무리한 뒤 다시 돌아와 과제를 좀 준비하다가 잠을 청했다.




(1) 바쁨

 이번 주말이 유독 여러 일정이 많이 몰아치는 기간이기는 했지만, 이번 1학기에는 내가 이전에 지냈던 것보다 훨씬 바쁘게 살고 있다! 무언가 바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개강 전 이것저것 신청하기도 했던 만큼 내 예상보다 더 바쁘게 ㅎ_ㅎ 지내고 있어서 때로는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어찌저찌 잘 지내고 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는 공연을 마무리하고 오는데 갑자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뒷풀이를 하러 갔는데, 나는 할 일도 많이 남아 있고 도저히 뒷풀이에 갈 체력은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나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 그만큼 하나하나의 요소에 대해서 온전히 체험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씩은 겪는 '현타'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몸은 피곤하고, 능률은 안 나는 상황에서 찾아든 현타였다.

 그럼 나는 왜 바쁘게 살려고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왜 바쁘게 살고자 하는가? 내가 가장 즐겨보는 유튜브 컨텐츠는 '갓생 브이로그'다.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많은 일들을 해내며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으로 정말 많은 것을 성취해 내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게 어떤 자극제가 된다. 이런 브이로그들이 나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컨텐츠인 만큼, 갓생에 대한 욕구는 전반적인 사람들이 많이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바쁨을 생각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나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고자 하는가?

(2) 바쁨 + 회피




 어쩌면 완성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회피하고자 나를 바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 과밴드 공연을 도와주러 갔을 때는 친구들이 모두들 피곤해 보인다고 해 주었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바쁘게 산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어제 공연을 가기 전에 별다른 드럼 연습도 하지 않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대부분의 과제나 할 일들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핑곗거리를 야금야금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완벽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핑계가 필요해 바쁨이라는 생활의 모습으로 회피한 것은 아닐까?

 나는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아니다. 이건 대학에 오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된 사실이다. 논문을 읽기도 그냥 귀찮고, 교수님들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모든 과제를 처리한다는 생각이 드는 막막함도 여럿 경험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결과는 중요시하게 된다.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상황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장면들 (ex. 만족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울거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장면) 에서는 내가 더 답답했다. 울 시간에 차라리 울면서 할 일을 하는 게 좀 더 낫지 않을까? 본인의 사정은 개인의 과정이지만 결국에 남는 건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혹은 굳이 비교해 보지 않더라도 나 자신의 절대적 준거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에는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몰려들곤 한다. 사실 오늘 주식심리학 발표에서 그랬다... 이건 여담

그러다 보니, 너무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은 학기를 보내면서 내가 만족할 만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까? 막상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목표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바쁘다는 미명 하에 불완전함을 내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이렇게 바쁜 일정을 만들어 낸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CSI의 스파이인지 뭔지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직을 무너뜨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업무를 위한 업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에서 단지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는 다 사용하기 위해' 일을 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바쁨의 방향성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방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단지 '바쁨을 위한 바쁨'은 경계해야 한다고 느꼈다. 지금 나는 왜 바쁘기로 택했으며, 그게 내가 현실과 기준에서 지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려고 했던 것이었는지 때로는 잠깐 멈춤으로 전환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3) 바쁨 + 무게 + 추



 작년 겨울 즈음에 선배들의 실험의 일환으로 참여했던 활동이 하나 떠오른다. 눈을 감고 한 손에 특정한 무게의 물체를 올려놓고, 나머지 한 손에 다양한 종류의 추를 올려놓으면서 두 손에 올려져 있는 물체들의 무게가 같도록 추정하는 실험이었다. 바쁨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일정 정도까지 본인의 '감당 가능한 영역'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 영역의 적정선이 어느 정도인지 처음부터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 손에 감당 가능한 영역의 무게를 올려놓고 다른 한 손에다가는 여러 추를 올려놓으며 점점 무게를 맞추어 나간다. 때로 너무 가벼운 추만 올려놓게 되면 그것대로 균형이 맞지 않고, 무턱대로 무거운 추만 올려놓아도 균형은 이내 깨지고 만다. 적절한 오차범위 내에서 추를 올려놓고 맞출 수 있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바쁨의 균형점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추들을 많이 올려놓은 것 같다. 지금 내가 오차 안에 있는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턱대로 추를 올리거나 빼는 것보다는 잠깐 멈춤 타임을 가지고 균형을 음미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날이었다.

 여러분들의 바쁨과 회피와 추는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바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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