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힘

단어 속에 갇히는 사람들

by 민기

우리는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생각에도 근육이 있다.


그 근육은 훈련 없이는 쉽게 퇴화하고, 세상의 잣대에 기대어 사는 법만 익숙해진다.


요즘 사회 속 다름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들이미는 잣대는 특히나 예리하고, 냉소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큰 에너지와 용기를 요구한다. 이 문제는 결국, 서로 간의 양보와 이해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하나의 단어나 표현들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다”는 표현 하나로, 한 사람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그려낸다. ‘진지충’, ‘국뽕’ 이란 단어로 조롱할 뿐 아니라, 심지어 MBTI마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데에 사용된다.


모든 상황과 사람의 개성을 단어 하나로 규정지으려는 것은, 사람을 선동하고 판단하기에 아주 쉬운 방법이다.


그리고 이 편리함은, 더 깊이 사유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물론, MBTI나 라벨링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좋은 툴이 아닌, 사람들을 옭아매는 밧줄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자유롭게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Labeling, 즉 딱지 붙이기라는 사회적 현상도 이와 맞닿아 있다. 사회는 개인에게 ‘눈치 없다’, ‘문제아’ 같은 라벨을 붙인다. 이 딱지는 결국 그 사람의 행동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은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 자신의 특수성을 지운다.

진지충이라 불리고 싶지 않아 진지함을 피하고, 찌질해 보일까 두려워 쿨한 척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생각하는 근육을 단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근육의 성장을 막는 사회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


다름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들이미는 잣대가 이토록 날카로운 사회에서는, 깊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의 솔직함과 자존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을 인식하고, 조금씩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나는 그런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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