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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Jan 12. 2023

오늘부터 playlist에 추가되었습니다.

행복하다(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

햇빛에 반사된 검은 피부는 매력적인 빛이 난다. 간간이 보이는 흰머리카락과 주름은 우리의 시간을 말해준다. 쌍꺼풀 없이 진한 검은 눈동자 속에 그의 마음이 보인다. 지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연애 때도 결혼식 때도 단 한번 기타를 치지 않았던 그가 요즘 기타를 자주 친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의 시야가 자꾸 흐려지고 마음이 아려온다. 20대, 30대, 40대 그리고 지금 이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재작년 그가 갑자기 아팠다. 위염이겠지 생각하고 동네 병원에서 몇 주 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얼굴색과 눈동자색이 점점 변해갔다. 아무래도 단순한 위염은 아닌 것 같았다. 피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참담했다. 간수치가 정상이 40 IU/L 정도면 그는 2000 IU/L에 황달수치는 20이었다. 그와 통화를 하는 동안 심장은 요동치고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은 떨렸다. 치료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우선은 푹 쉬는 게 중요하다는 의사 선생님 말을 믿고 병원에 입원했다.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면 좀 더 맘이 편했을 텐데 그는 한사코 가족과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라 보호자 1명 이외에는 면회도 제한되었었던 시기여서 나만 집과 병원을 오가며 그를 볼 수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그를 볼 때마다 애달프고 집에 오면 그가 그리워 매일밤 눈물 마른날이 없었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그랬나. 감기가 자주 걸려 먹었던 약이 문제인가. 밤에 한잔씩 마셨던 맥주가 문제인가. 7개월 만에 정상이던 간수치가 이럴 수가 있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 의미 없고 소용없는 원인을 찾아 원망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원인 모르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괜찮을 거다. 금방 좋아질 거라는 위로에 말이 더 힘이 된다는 걸.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무례한 질문도 난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야 했고 그 말은 지금도 내 마음에 생채기로 남아있다. 2주를 입원했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담당 주치의는 자가면역질환 검사를 추가적으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대학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원하자마자 우리가 향한 곳은 대학병원이 아닌 집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잠깐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도 난 두려웠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봐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아이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그를 재촉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이것저것 검사가 진행되었고 기다림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걱정되고 힘들었던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2주 넘게 꺾이지 않던 수치들도 조금씩 호전됐다.  그렇게 1주일 후 그는 퇴원을 했다. 그해는 오로지 건강만 생각했다. 식이요법부터 바꾸고 운동도 병행하며 그는 건강을 되찾았고 그의 건강한 삶을 위한 노력들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요즘 나의 최애 드라마는 'JTBC 사랑의 이해'이다. 유연석 배우의 넓은 어깨와 흰색 와이셔츠에 반해 보기 시작했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리숙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표정 연기는 하상수 그 자체였다. 

강남 8 학군에 명문대 출신의 남자 하상수.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고졸 출신 안수영.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는 잠깐의 망설임으로 사랑의 타이밍은 어긋나고 사소한 오해가 쌓여 각자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 그때 그와 내가 떠올라서 더 감정이입이 된다.

고졸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와 안수영은 닮아 있었다. 상자에 힘든 가정 형편과 고졸이라는 자격지심을 담아 도도함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포장했던 나. 그런 나를 변화시켜 준 건 바로 그다.

그와 나도 사내 커플이었다. 그가 시험을 준비한다고 사직서를 제출했고 난 그런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을 받아 주었다. 인생에 타이밍이 중요하듯 사랑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우린 서로 타이밍이 맞아 지금 한 가정을 이루고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하상수와 안수영 둘의 사랑도 언제 가는 타이밍이 맞아 안수영의 상처들과 자격지심을 하상수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길 바라며 둘의 사랑을 응원 중이다.








 바위섬(김원중)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정 없던 이곳에

세상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아는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그가 기타 치며 부르는 노래가 오늘은 유난히 구슬퍼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했다. 


"여보.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어? 여보 노래 듣고 있으니 눈물 났어."

"그래. 대학 때부터 애들이 구슬프게 부른다고 했어." 그는 머쓱하게 웃는다.

"여보. 20대 때 그때가 행복해? 지금이 행복해?" 내가 듣고 싶은 정해진 답을 그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음... 당연히 지금이 행복하지.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그런데 아버지가 내 옆에 없네."

그의 말에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누구에게나 힘들 때 힘이 되는 playlist가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에 언제 들어봤나 기억도 안 나는 이 곡이 그가 불러준 그날부터 나의 playlist에 추가되었다.  

 


* 대문사진 : 아빠 기타 치는 모습이 멋있었는지 둘째가 10분만에 뚝딱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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