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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중년이지만 계속 신입입니다.

마지막 신입이길

by 유니스

오늘 계란 하나를 가지는 것보다 내일 암탉 한 마리를 가지는 쪽이 낫다


정말 올 한 해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

오랜 전업주부 경단녀에서 작은 아이까지 기숙사로 떠난 작년 3월부터 마치 높은 성벽으로 단절되었던 세상에 아무도 들어오라고 손짓한 적 없는 곳에 두려움 가득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린다.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 보지만 쉽사리 응답을 해주는 곳은 많지가 않았다. 아니 그들에게도 나름의 조건들이 있다.

우선은 나이가 어려야 한다. 그때까지 내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보질 못했다. 이제 일하기 좋은 나이일 텐데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그저 나이 든 아줌마일 뿐이다.

아이들로 인해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아침 7시 전에 알람 없이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니 출근이 빨라도 전혀 상관없고 일이 생겨 퇴근이 늦어줘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을 상황이 되었는데도 지원서에 대한 응답은 감감무소식이다.


어리석게도 학생 때 다양한 알바를 하지 않았다. 고작 몇 번의 서빙 알바 그리고 졸업 후 3년의 사회생활 그리고 육아 중 이러다가 미칠까 봐 뒤쳐질까 봐 뛰쳐나가서 일을 한 3년의 사회생활.

이것이 나의 사회경험의 전부다. 알바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게 큰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은 그때는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사회에 나가려고 보니 후회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이것저것 많은 것을 경험해 보았더라면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실수를 덜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사회생활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치열하게 보내지 못한 나의 20대 초반이 뒤돌아보니 안타까웠다.

나이 40 후반 50 문턱에 들어서며 이제야 깨닫는다.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그럼 이제라도 알바를 경험을 다양하게 해 볼까? 그러나 대체 누가 가진 거라곤 성실함 뿐이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날 그렇게 써주기나 하겠냐 말이다.

서글프게도 내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선택권은 나에겐 없다. 늘 을의 입장이며 그런 자리마저도 쉽지가 않다. 세상에 나오고 보니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아이들 대학 가고 나서 일을 하러 나왔더니 일할 자리는 몇 개 없어 서로들 그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해야만 했다.

다들 세상에 나오고 보니 남편에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한다. 세상이 이렇게 치열한 곳인지 모르고 살았다고 말이다.

돈이 아쉬워서 나온 사람도 있고 자기 용돈 벌이로 나온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루해서 나온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간이 너무 길어졌으니 말이다. 나는 늘 내손으로 용돈을 벌려고 나왔다고는 말을 하지만 속마음은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남은 시간은 또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이제야 다양한 알바들을 경험했다. 일을 시작하며 처음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지만 하면 할수록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걸까? 근데 마음이 왜 더 초라해지지'

'매달 금융 치료는 될 수 있다지만 일하는 소가 되어 버린 이 느낌은 뭘까?'

'매일매일 조마조마한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맞나?'

'도대체 나에게 맞는 일은 이 세상에 있을까? 아니 싫지 않은 일은 있을까? 아니야 견디고 참을 수 있는 일은 있기나 할까?'

'이 일은 나의 미래 가치를 키워줄까?'로 이어졌다.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계속 신입이었다. 늘 새로웠고 배워야 했고 서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생 뒤늦게서야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작업 중이다.

진작에 찾아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웠어야 하는데 남들은 무르익어 열매를 열심히 따고 있거나 퇴직을 준비할 나이에 나는 이제야 나와서 뿌리내릴 장소를 찾는다고 두리번거리는 꼴이다.

이런 내 모습에 초라함도 느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게 어디야. 앞으로 많은 시간을 잘 보내려면 이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냐'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제 내가 목표로 삼았던 일에 살포시 발을 담갔다. 이 세계에 직접 들어와 봐야 맛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직은 이 일도 나에게 맞는 일인지, 참고 견딜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앞으로 알아가봐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바로 오지는 못하고 둘러둘러 왔다.

선뜻 용기가 생기지 않았는데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주변인들의 이야기나 경험담 등을 듣고서 용기가 생겨났고 응원을 받았기에 결심을 할 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두려워 집에 숨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가려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그리고 길게 할 수 있는지 나는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 돌아보면 세상에 괜한 짓은 없는 듯하다. 다 의미가 있는 일들이었고 지금 하는 것조차도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의미로 어딘가에 닿을 것이 분명하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모든 경험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이제 조금만 나아져도 감사할 줄 알게 되고 견딜 힘을 주었으며 욕심은 개나 줘버렸고 적당함만을 바라게 되었다.


재앙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지금 행동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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