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요!(5)-5회차와 없었던 이야기

by 향다월


이번이 마지막이군요! 당신과 저의 동행도 곧 끝납니다. 숭고한 일을 초 치는 것 같아 좀 죄송하지만 타이밍이 지금밖에 없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을 멋대로 재단하고 주재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당신은 제게 단 한 마디도 말 걸지 않았잖아요? 당신이 저의 관찰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느꼈고, 어떠한 표현을 했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을 막무가내로 말상대 삼았습니다. 당신을 제 일갈의 수단으로 삼아 멋대로 떠들었죠. 당신을 의인으로 간주했고, 우자로 판단했고, 범인으로 취급하다가도 소수의 영웅처럼 멋대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충분히 불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을 외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번에서야 평범한 인물상을 만났습니다! 친구들과 방과 후에 카페를 들른 여학생입니다. 그녀의 고등학교 성적, 또 다른 재능의 유무, 집안의 형편 같은 자잘한 사실들은 관심 가지지 마십시오. 지금 중요한 건 그녀가 친구들과 한날한시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지금까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평범하다고 한 이유도 그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 고등학생! 덜 영근 정신을 이끌고 덜 정리된 세상에 막 발을 내딛는 시기이죠! 그녀는 비극과 회한, 고통과 파멸을 겪기에는 일반적으로 젊습니다. 아직 인생의 더러운 아름다움을 깨우치기 전이란 소리죠. 그들이 지금까지 즐긴 카페에서의 순간도 어느 날부터는 지독한 천칭 위에 올라갈 겁니다! 변하는 친구 관계, 커피값의 기회비용, 타자와의 대화에 내재하는 냉전까지! 무게 추는 징그럽도록 많으니까요! 어쨌든 오늘의 그들은 카페에 있을 만큼 있었으니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패스트푸드네요. 그 나이대에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비굴함도 저들에게는 일종의 유희라고 봐야죠.


제가 앞서 말했죠. 여학생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맞습니다. 정말 평범한 여학생입니다. 그리고 어떤 트럭도 평범합니다. 어떤 트럭이 지나는 길도 평범하고, 여학생이 건너는 횡단보도도 평범합니다. 그녀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평범하게 발을 뻗은 순간! 트럭도 평범하게 빨간불 앞에서 정차합니다. 그리고 여기 다소 난폭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오토바이 운전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트럭의 평범한 정차를 급박하지만 평범한 차선변경으로 피하는 오토바이는 평범하게 빨간불에도 멈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오토바이가 평범한 여학생을 강타합니다. 여학생의 발랄한 평범함 때문이었을까요? 친구들은 먼저 뛰어가는 그녀에게 지쳐 따라잡기를 평범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은 평범하게 오토바이에 치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 이후도 평범합니다. 여학생의 머리에서 평범하게 붉은 액체가 평범하게 시커먼 아스팔트를 평범하게 적십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평범하게 다리가 부러졌지만, 그 아픔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평범하게 짓뭉갠 어느 누구의 두개골을 보고 평범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여학생의 친구들도 평범한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한 친구는 평범하게 비명을 질렀고, 한 친구는 평범하게 눈물을 훌쩍이며 경직돼 있었고, 다른 친구는 꽤 침착해서 평범하게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평범한 구급차가 익숙하지만 오늘만큼은 소름 돋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착했고, 여학생은 평범하게 차가워져서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 무거운 포대처럼 들것에 들렸습니다. 응급대원들은 평범하게 여학생의 몸과 모니터에서 빗발치는 수치들을 번갈아 째려봤고, 평범하게 응급처치를 시도했습니다. 3분쯤 지났을까요? 평범하게 헐떡이던 여학생의 몸에서 모든 활동이 정지됐습니다. 그러자 응급대원들의 평범한 분주함도 잦아들었습니다. 평범하게 시간을 기록하는 대원과 전쟁터에서 일개 차량 내부로 평범하게 돌아온 구급차, 응급처치로 교복 와이셔츠가 풀어헤쳐진 여학생의 평범한 속살이, 무의미한 시간의 정지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끊어 가기 싫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모종의 예의입니다. 여학생이 정신을 차립니다. 여학생은 신체가 없습니다. 사실 정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있을까요? 그것도 확답 못합니다. 아니 확답을 바라지 마세요. 그녀는 맑은 정신도, 사물을 직시할 눈도, 선택을 주재할 뇌도, 그렇다고 무작정 걸을 다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슬픔에 젖습니다. 아니 슬픔에 젖었다고 추측합니다. 그녀가 이번에는 분노에 빠집니다. 아니 분노에 빠졌다고 추론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친 오토바이 운전자의 두 눈동자를 상기합니다. 아니 상기했다고 칩시다. 이윽고 그녀의 감정은 차분해집니다. 아니 그녀에게 감정은 없습니다. 이제 없습니다. 그래도 있다고 믿읍시다. 그녀는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느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느낄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녀는 사라집니다. 아니, 그녀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구급차에서 맥박이 희미해졌을 때, 시야가 완전한 어둠으로 채워졌을 때, 손발의 감각이 말끔히 자신의 소유에서 벗어났을 때, 평범하게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떠한 철학적인 사색과 이론으로 그녀의 영혼을 추궁한들, 그녀는 이제 없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저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에 대해 막연한 단상만 있었을 뿐입니다. 결국 그녀는 처음으로 저를 마주한 꼴입니다. 그녀는 마침내 제가 되었습니다. 저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과 맞먹는 하나의 이치인 저를 겪었습니다.


저는 죽음입니다.




당신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아가 없습니다. 저는 일과가 없습니다. 저는 당신도, 당신의 친구도,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내면도 관찰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무엇도 관찰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규칙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기준이 없습니다. 저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간을 이동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저는 당연히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당연히 이성을 논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연히 유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압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당신과 모두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과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가르침을 선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저와 대화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저를 의인화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실패해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넘긴 페이지로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자연현상이지, 형이상학적인 대상이 아닙니다. 당신은 저를 가지고 망상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착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죽은 직후에도 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들의 소멸로 존재할 뿐입니다. 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될 뿐입니다.


저는 무지막지하지만 그럼에도 잊히고, 괄시받고, 등한시당하고, 후순위에 배치됩니다. 당신은 언젠가 저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수고했고, 다음 순간부터 다시 저를 무시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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