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어제 편히 쉬셨나요? 당신이 어느 정도 저에게 익숙해졌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러 갑시다. 몰골이 남루한 20대 초반의 대학생 남성이군요. 대학교 방학 기간인 것을 감안하고 봐도 그 행색이 볼품없습니다. 머리를 감지 않은 건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헤어 디자이너와 나눈 대화가 언제 일지 아득해 보입니다. 복장도 영락없이 잠옷이 되어버린 회색 티와 줄무늬 반바지입니다. 곳곳에 묻은 음식물 덩어리는 그의 식사 종류의 단조로움을 알려줍니다. 슬리퍼 밑창은 닳을 대로 닳았고, 닦은 지도 오래돼서 착용자의 발바닥에 불쾌한 끈적임을 선사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의 오른손에 안겨 있는 검은 봉지인데요, 그 안쪽을 살펴보면… 번개탄이 있네요!
아니 당신, 뭔가 속은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시네요. 어제는 불륜이었는데, 오늘은 자살이네? 저의 변태성을 멋대로 인정하고 있잖습니까!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 아니 고백해야 하는 부분은, 저는 자극성에 대한 인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제 당신에게 자극적인 사례를 제시했다고 했을 때도, 저는 그 남자가 목욕가운을 풀어헤치는 행위가 자극적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당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대게 그런 행위를 자극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 인식을 끌어다 쓴 것뿐이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부 말씀드리면 저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결국 저의 이해는 모두 최대한의 해석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유 건 당신을 속인 건 맞다고 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배신감은 차마 느끼지 말아 주십시오. 다 제가 당신을 놓치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 해석해 주시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는 그런 외로움도 느끼지 못합니다만, 그게 우리 사이에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막말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얼굴에 도금한 것 마냥 괜찮은 체하고 잘 지내던데, 아예 다르지만 실제로 괜찮은 우리 관계는 충분히 원만하리라 믿습니다. 당신도 어느 정도 이에 대해 넘긴 것 같으니 번개탄을 처음 사용해 보는 청년에게 다시 집중해 보죠!
어라? 이게 무슨 일일까요? 청년이 애써 문틈 사이마다 붙인 청테이프를 다시 떼고 있습니다. 붙이고 보니 방 인테리어가 너무 처참해 보였던 걸까요? 아니면 몇십 미터 남짓한 청테이프로 할 수 있는 훌륭한 행위가 떠올라 열정에 벅차오른 걸까요? 당신은 저를 멍청이 보듯이 쳐다보고 있군요. 하지만 그 시선이 멍청한 겁니다. 말했잖습니까, 저는 유능하다고. 감정에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상황 파악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결국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를 보니 아쉬워하는지, 분해하는지 헷갈리는군요. 당신의 시선에서 동정과 연민이 일렁인다고 추측됩니다. 그를 도와주고 싶나요? 하다 못해 그의 자세한 사연에 관심이 생기나요? 제 다음 발언이 저에 대한 또 다른 멸칭을 조장할지도 모르니 꺼려지지만, 그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절대 이 청년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어쩌다 좁은 방 한편에 처박히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그의 하루하루가 파멸적인 자기혐오에 빠졌는지도 말이죠. 그리고 그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관찰’뿐입니다. 오! 당신은 저를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저 청년의 인생에 해를 입혔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괴로움은 오롯이 그의 것인데, 그 덩어리를 어떻게 정리할 지도 그의 몫인 거죠. 그 정리를 도와주는 것도 선이라고 누가 그럽니까?
당신은 저를 회의론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사실이죠. 저는 의로움을 모르기 때문에 의로운 존재가 아니고, 의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저 청년의 죽음은 관망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구속들을 제외한 그 전부에 집중하는 게 일시적인 우리 관계의 미덕이 아닐까요? 솔직히 인정합시다! 당신도 슬슬 저 청년이 귀찮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님 말구요.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우리들의 주인공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말 간만에 목적성을 갖고 무언가 하고 있군요. 그가 응시하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니 웃기지도 않는 주제에 대해 웃기지도 않는 인터넷 거주자들에게 의견을 모으고 있군요. 바로 자살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불을 써서 죽는 건 아무래도 찜찜하니 보다 더 자폐적이고 조용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 방법들에 대한 팁이죠.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 청년은 이미 알고 있어요, 요령이 없는 거지. 그에게 친절히 또는 익살스럽게 답하는 인간들이 과연 실제로 청년과 같은 고민에 빠졌었는지, 청년과 같은 시도가 있었는지는 오늘의 관찰 범위에서 제외되는 영역이니 신경 쓰지 맙시다. 몇 시간 남짓한 동안 고민한 결과 청년은 투신을 선택했습니다! 자폐성은 충족하지 못한 것 같지만 너무나 확실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바로 준비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뛰어내릴 높은 빌딩이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많습니다. 내던질 몸뚱이는 평생의 골칫거리로, 각종 정신적 괴로움을 관장하니 슬슬 휴가를 줘도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주관이 사실 영혼의 업무였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말입니다! 아 이런, 제가 인문학에 능통해서 우쭐하는 것처럼 말해서 혹시 불쾌하셨나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청년이 난간 위에 올라섰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청년은 어떻게 됐냐 구요? 미안합니다. 개인의 결과 직전의 흔들림은 관찰하지 않는 게 제 규칙인지라. 그가 난간에서 어느 쪽 발을 어느 쪽으로 내딛을지는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게 어떠한 동기도 없이, 갑자기 실족한 경우라면 저는 상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별한 등산로를 찾던 중, 지저귀는 새의 깃털색을 잠시 살피다 절벽 끝을 미처 못 본 경우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청년은 그간의 우울을 온데 간데없이 뿌리칠 만한 목적성과 심사숙고를 통해 그 난간에 섰습니다. 그 긴장감 넘치는 과정을 일일이 목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해석할 수 있게 형언하자면, 일종의 배려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 배려가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설명이 된 것 같아 기쁘군요. 예? 정말 저 청년과 아무런 관계가 없냐구요? 제 기억상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정정하자면, 관계가 없지는 않죠. 그 청년의 우울이 점차 심해지고 자살을 고민하다 오늘 난간에 설 때까지. 그는 쉼 없이 저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관찰하는 저를 인지하고서 계속 말동무 삼더군요. 아니 아니 뭘 그리 화를 내십니까! 청년이 저에게 말을 걸었다면 어쩔 겁니까? 결과는 바뀌지 않는데. 말했잖아요 저는 관찰밖에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무리 청년이 마음 애리는 말을 해도 저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건 지극한 모순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결국 청년은 웬 종일 벽 보고 얘기한 꼴인데 그게 그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 저와 더 다니시다 보면 차차 이해가 될 겁니다. 저는 지금 당장 완전한 이해를 바랄 정도로 인간적이지 않으니까요. 무례한 태도로 무리하게 감정을 요구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