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자기가 엄청 따뜻한 휴머니즘이라도 구축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형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 있어? 학기 초에 애들 학과랑 이름 여러 번 헷갈린 거는 그럼 인성 문제야, 지능 문제야? 형이 그거 그냥 가볍게 넘겨버릴 때 진짜 속 상한 애들도 많아. 그럴 때마다 형은 최근에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머리가 깨질 것 같다면서, 미안해하는 척하면서 자기 잘 살고 있는 거 자랑하고, 그걸 알아채주지 않으면 멍청한 사람 취급했잖아! 그리고, 내가 감독 필모그래피를 완주하는 거는 한 감독의 작품관을 최대한 이해하고, 다른 감독과 비교하며 그들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야. 형은 취향이 안 맞으면 아무 의미 없다면서 보고 싶은 거만 보잖아!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질 낮은 콩트만 보는 사람이랑 대체 뭐가 다른 건데? 내가 스노비면 형은 무지성주의자야. "
두 청년은 그렇게 몇 합이고 대화 비슷한 싸움, 아니 싸움 비슷한 대화를 이어갔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의도는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관객의 벽을 넘어선 수용자 혹은 예술가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이해자 지망생으로 갈라졌다. 사람의 첫인상은 얼마나 중대한가, 비겁한 편견쟁이와 지극한 경험론자로 갈라졌다. 영화 애호가가 너무 질 낮은 대중문화를 좋아해도 되는가, 있어 보이려 안간힘 쓰는 미련한 인간과 문화를 가장 문화답게 다루는 사람으로 갈라졌다. 그 외로 패션에서 개성의 비율, 인간관계의 크기, 음침함의 기준, 사진학 등 모두 갈라졌다. 그 모든 각축전을 비유한 담론은 중략한다. 시간은 그들의 대화와 전혀 무관했다. 둘은 지치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끊지도 않고 진심을 다해 들으니, 하고 싶은 말이 부족해질 일도,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색해질 일도 없었다. 둘은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했고, 심판 없이 그 과업이 가능했다는 점은 실로 놀라웠다. 둘은 그러다 동아리 부원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안 건너고 뭐 해?"
두 청년은 어느새 익숙한 인도로 돌아와 있었고, 동아리 방을 향하는 횡단보도 신호등은 무언가를 부추기듯이 초록불을 껐다 켰다 했다. 두 청년은 동시에 느꼈다. 어쩌다 그런 이상한 곳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은 자신들의 감정을 끝없이 과잉시키는 법칙이 있었음을. 사실이 아니다. 하얀 평면 같던 직선은 두 청년의 감정에 어떠한 손길도 내어주지 않았다. 감정은 오롯이 그들의 것이었고, 언어도 분명히 자신들의 관할이었다. 둘은 파란불이 끝나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 일행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동아리방에 가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다음 날, 다음 달도 두 청년은 동아리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신입 부원들과도 금세 친해졌다. 그러나 두 청년은 다시는 서로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단 둘이 대화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충분히 대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