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요!(3)-3일차

by 향다월

안녕하세요. 오늘도 할 일을 열심히 해봅시다! 어제 제가 좀 냉정하게 단언했지만, 그렇다고 당신 눈치를 안 본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어제 느낀 불편한 감정들도 전부 저를 불편하게 하려 했거든요. 아 긴장 혹은 혐오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불만을 표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당신에 대해 생각했다고, 알아주십사 말을 꺼낸 거였으니까요. 물론 제가 헤아리고 판단한 당신의 불쾌함을 경감시키기 위해 관찰 대상을 바꿀 수도, 관찰의 깊이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찰 대상을 바꾸지도, 관찰의 깊이를 확대하지도 않을 거고, 않았습니다. 오늘은 도박 중독에 빠진 30대 남성에 대해 알아보죠.


그는 좁은 방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게 될 자신의 승패를 타성 젖은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이지요. 제가 살펴본 바 그는 이분법적인 게임을 좋아합니다. 홀짝 맞추기, 축구 경기 예측하기 같은 희비가 깔끔하게 교차되는 것들 말이죠. 카드게임으로 하는 도박도 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무책임함은 똑같지만 행위자의 행동성은 크게 다릅니다. 수 싸움이 있고, 전략이 있으며, 우습지만 실력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주인공은 그런 머리 쓰기에 어떠한 말초적인 쾌락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축구 경기를 예측하며 이름만 아는 선수의 뜀박질을 욕하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그는 축구에 대해 일반적인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그의 패배주의는 의외로 학습성이 좋았습니다. 그가 불쾌해 한 선수의 실수로 남자가 베팅한 팀이 실점했습니다. 그는 아주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소질이 있군요! 우와! 방금 그의 짜증 섞인 욕설을 당신도 들으셨습니까? 우리가 매체에서 보는 것처럼 우렁차지는 않았군요. 왜냐하면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원룸 고시텔이기 때문입니다. 밀린 집세 때문에 주인집 어른에게 눈치를 보는 것보다 옆방에 사는 덩치 큰 남성이 그의 분노 표출을 더 억제해 줬다는 사실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물론 저는 눈물을 흘려본 적도, 애초에 슬퍼본 적도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 중 하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의 한숨 같은 고함도 몇 번 만에 힘을 잃었습니다. 그의 에너지와 열정이 그만큼 바닥났기 때문일까요? 그는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정기적인 행위인 흡연을 하기 위해 하나뿐인 창문을 엽니다. 잠깐 실례.




왜 관찰을 잠깐 멈춘 거냐구요? 왜냐하면 그가 제게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아 또! 당신은 또 불쾌하다는 표정을 질리지도 않고 짓는군요. 그러면 저도 질리지도 않고 제 규칙을 당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관찰대상이 제게 말을 거는 장면까지 당신과 함께 나눌 수는 없어요. 물론 잘 압니다. 제가 저의 신념을 당신께 충분하리만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유와 논리 없이, 이성과 판단 없이, 감정과 충동 없이 이행되어야 하는 규칙들이 있습니다. 자연현상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죠. 제가 지키는 신조들은 전부 그런 식입니다. 그러니 타협은 없고, 이해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 설명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는 담배를 피우며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도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개의치 않고 실컷 떠들더군요. 제 소견으로 판단하기에, 그는 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 같습니다. 나로 인해 자신의 힘겨운 삶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정말 어이없지 않나요? 이럴 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참 좋은 일이에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이 저를 만나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쾌함이지 않습니까? 궁금함 말고요. 이 부분은 제가 정말 당신을 높게 사지만, 이 남자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느꼈나요? 아니, 말해주지 않겠다고요? 당신은 생각보다 치사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역시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는 제게서 어떠한 대답도 받지 못하고 집을 나섭니다. 도박을 제외한 그의 마지막 이벤트인 음주를 위해서 말이죠. 그의 행위 구성만 봤을 때, 그의 삶은 정말 안정적입니다. 도박, 흡연, 음주 그리고 어쩔 수 없어하지만 사실 가장 큰 위로를 느끼는 잠까지. 네 가지 행위로 인생이 꽉 차 있으니 밥만 제때 먹으면 삶을 영위한다고 자랑스럽게 소리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문제는 그 삶이 일찍 마감될 만한 내용물인 것이겠죠.


그가 향한 곳은 피씨방이었습니다. 당신은 평소에 피씨방에서 끔찍한 행색으로 새벽에 앉아있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피씨방을 얼마나 가본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더라도 대답은 피씨방 알바생과 동일할 것입니다. 참 한심하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 남자는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그는 도박전용 피씨방으로 향했기 때문이죠.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는 이유는, 그나마 건전한 경우로 하나 꼽자면 현실을 잠시 잊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게임을 하는데도 지식이 필요하고, 뇌를 써야 하지만 그것들은 현실의 것과 꽤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잠깐의 현실 망각은 소량의 무기력함으로 교환하기에 훌륭한 장사인 것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진지한 도박이 망했으니 가볍고, 흥미 위주인 도박으로 잠시 쉬겠다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에게 혐오나 한심함을 느껴서 그에게 침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유능하기 때문에 그 어떤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경외감을 가지지 않고, 아무리 볼품없는 인생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경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포커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카드 게임을 잘만 합니다. 그의 삶이 망가졌다고 판단되지만, 일종의 교통정리는 말끔히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의 도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느껴집니다. 아 미안합니다.




그가 혼잣말로 저를 잠깐 불러서 말이죠. 옹졸한 언론의 검열같이 느껴지시겠지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금 같은 상황이 저로써는 꽤 골치 아파요. 어제 청년처럼 진득하니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홧김에, 각오 없이 저에게 몇 마디 던지는 저런 추한 모습은 차마 보기가 힘듭니다. 제 위상이 위협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런 사람들의 짧은 관심이 제 예상을 웃돌거나, 쳐지게 할까 봐 걱정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권리지만 여간 찜찜한 게 아니거든요. 저의 이런 답답한 감정을 알아채 준 걸까요? 그는 어느새부턴가 입을 조개처럼 앙 다문 채 병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합니다. 그의 오른쪽 검지가 격한 반복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요, 놀라운 점은 그가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소위 말해 멍을 때리고 있는데요, 써야 할 건 머리지만 책임 없는 오른손만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정신과 관련된 학문은 잘 모르지만, 일종의 강박증세? 혹은 불안증세라고 봅니다. 마우스를 던져버릴 것 같은 충동에 휩싸이기 직전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흡연실로 향합니다. 당신이 놀랄까 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자리를 피해 주셔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 웬일입니까. 이번에는 그가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걸 장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대화가 갑자기 끊기지 않은 점은 확실히 좋은 일입니다. 에라이




제가 괜한 말을 한 걸까요. 우리가 기쁨을 나누는 사이, 정확히는 제가 느낀 기쁨을 당신은 조금도 느끼지 않아 제가 다소 섭섭해질 때쯤, 그는 저에게 짜증 섞인 일갈을 반복했습니다. 흡연실을 나와, 피씨방을 나서고, 집에 올 때까지 계속 궁시렁거렸죠. 주변 행인이 주의를 줬지만 평소에 소심한 그라도 오늘만큼은 달랐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행인에게 주먹을 날렸고, 호되게 얻어맞았죠. 그가 시비 건 상대가 고등학생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육체적인 대가를 치르는 걸로 일단락됐기 때문이죠. 뒤를 따라 걷던 학생의 친구들도 가세해 그는 심한 몰골이 되었습니다. 그는 맞으면서도 저를 계속 언급했는데, 학생들은 그런 상황을 이상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했는지 이내 그를 놔줬습니다. 흥미가 떨어졌다기보다는 가진 흥미를 거둬야 할 정도로 그가 추했던 것이죠. 그는 앓는 소리를 멈추고 절뚝거리며 큰길로 향합니다. 그는 병원이 아니라 편의점으로 향했군요. 정말 진부하지만 복권을 한 장 사고 있습니다. 이러면 당신의 흥미가 걱정되는데요. 당신 괜찮나요? 저 남자의 예상 가능한 작태에 우리의 관찰을 그만두고 싶으신 건 아니죠? 저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지만 부디 저와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 하면 오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저와 함께하는 다섯 날은 정말 귀중한 시간입니다. 저의 유능함 덕분이죠! 네 알겠습니다. 재미있다고 영혼 없이 대답하시는 걸 보니 제 우려가 거슬렸나 보군요. 당신의 흥미가 어떻게 됐든, 중간에 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들었으니 저도 크게 만족합니다!


우리가 서로 더 각별한 사이가 되는 동안 우리의 주인공은 잠에 들었습니다. 피곤한 날이었나 보군요. 바로 6일 뒤로 떠나봅시다! 오, 당신. 이번에도 놀라시는군요. 저의 유능함을 아직도 의심한다는 소리 아닙니까. 사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제 잘못이 크니 별말 안 하겠습니다. 저는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뻔하기 그지없는 그의 6일을 건너뛰어 버린 것이죠. 이제서야 당신도 좀 익숙해지신 것 같군요! 달관한 표정이 정말이지 보기 좋습니다! 본제로 돌아와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자살한 반려견을 본 주인처럼 당혹스러워하고, 시력 교정 시술의 후유증이 이제 막 나았을 때 거울을 본 것처럼 기뻐하고, 일곱 번의 시도 끝에 얻은 한정판 초콜릿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복권이 당첨된 것입니다! 무려 1등으로요!


다시 한 달 뒤로 넘어가 봅시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능숙함을 실현했습니다. 당첨금을 수령하는 상상은 수십 번도 더 했기 때문이죠. 그는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수속을 밟은 뒤 가장 먼저 에어컨을 바꿨습니다. 덕분에 그가 여름밤에 분출하는 짜증이 사라졌습니다. 평소에는 자신에 대한 한탄과 더위에 대한 신경질로 불면증을 영위했을 텐데, 양쪽이 모두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진짜 놀라운 사실은, 그가 도박을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권 당첨 이후 어떠한 사행성에도 관심을 주지 않고, 일용직이지만 다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술에 쩔어 욕설을 내뱉지 않습니다. 좁디좁은 원룸텔을 탈출하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죠. 그는 어떻게 도박을 끊은 걸까요? 찾아온 찰나의 행운에 정신을 차린 것일까요? 아니면 도박사들의 흔한 원리에 따라, 남은 운이 다했다고 생각한 걸까요? 어찌 됐든 중요한 건 그가 더 이상 제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쁘지만 좀 억울하네요. 저에게 말을 걺으로써 그동안 버텨왔던 주제에 말입니다. 저라도 허공의 말상대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뎠을 텐데 말이죠. 사실 제 기준으로 봤을 때 큰 차이는 없으니 별로 개의치 않으려 합니다. 오늘은 어떠셨나요? 사실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은 다섯 날이 아니라 다섯 번이죠. 더 정확한 표현을 썼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제게 시간은 가장 무의미한 것 중 하나라서 말이죠. 지금 이 순간에서야 당신이 제게 익숙해졌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기분 나빠할 걸 알지만 아주 크게 칭찬합니다! 오늘도 정말 고생하셨고, 다음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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