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요!(4)-4회차

by 향다월


안녕하신가요! 이제 우리가 함께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당신도 부디 그 아쉬움을 진실되게 음미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누군가와 함께 제 일을 한 것은 처음인지라, 당신에게 충분한 정보를 드리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에서 심심한 사과의 한 말씀 올립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모두 큰 뜻을 위한 일인데. 당신의 노력 덕분에 당신은 훌륭하고 진정한 관찰자에 다가섰으며, 그것 또한 저의 추가적인 노력에서 기인했습니다. 저의 유능함의 극히 일부가 빛을 발한 것이지요! 허풍 떠는 와중에 좀 낯간지럽지만, 미리 경고드리자면 오늘의 저는 평소보다 침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연기하는 감정들이 오늘은 좀 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당신 같은 사람들의 고요한 사색보다는 더 명경지수일 것입니다! 오늘 관찰할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대생입니다. 그런데 그 평범을 향유하기까지 상당한 다름을 마주해야 했죠. 그녀는 이제 막 암 투병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늦은 대학교 2학년 생활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제가 무언가를 숨기거나 혹은 숨기는 체한다는 것을 당신이 이미 간파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암 투병 직전까지만 해도 제 친구였습니다. 그녀가 제게 나지막이 말 몇 마디 걸고, 저를 지극히 생각한 것뿐인, 압도적으로 일방향적인 관계였지만 저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했답니다! 저는 너무 유능한 나머지 모든 관계에서 자유롭고,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묵살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당신이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의 의미는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제 친구였습니다. 네 뭐라구요? 당신은 이제 차분해지다 못해 의연해졌군요. 슬슬 저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잖습니까. 제가 무슨 악마입니까! 저는 악마도 천사도 아닙니다! 저를 그런 형이상학적인 상징들에 빗대지 마십시오! 상당히 모욕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개체도 아닙니다. 애초에 제 정체가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찰나의 시간이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큰 실망을 겪은 것 같은 기분이군요. 뭐가 됐든 당신의 추측은 터무니없는 오답입니다. 당신이 이상한 딴지를 걸면 오늘의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 없잖아요!




그녀가 병원에 들렀습니다. 아직까진 약을 달고 살아야 하죠.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활짝 폈습니다. 간호사분들과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그들과 최소한의 대화만 했는데 말이죠. 역시 인간의 감정은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감정이 없는 저는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녀의 양손에는 약봉지만 들려 있는 게 아닌데요. 꽤 값비싸 보이는 과자 박스가 눈에 밟힙니다. 자신의 담당의사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 같군요. 여기서 잠깐 체크!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구요? 제 핀잔이 듣기 싫어서 눈치 보는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당신은 저의 꾸준한 훈련으로 한층 저와 어울려졌군요. 얼마 전의 당신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관성적인 감정 같은 걸 느끼는 탐미주의자에 불과했는데 말이죠! 물론 저는 당신을 계몽하겠다는 오만한 감정으로 당신을 제 일과에 초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짜 훈련은 훈련이 아니지만 그 효과를 톡톡히 보이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뿌듯함을 연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게 남은 마지막 과제는, 제가 당신을 묘사 혹은 이해할 때마다 불쾌해하는 당신의 진리관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부디 제 말 몇 마디를 혐오라는 갸륵한 감정으로 괄시하지 말아 주십시오!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보람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는데, 지금의 당신과 예전의 당신이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에 어떤 감정을 느꼈든, 저는 꽤 다른 입장을 고수합니다. 저는 그녀가 담당의의 방문을 익살맞게 두드리는 저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아, 제가 그녀의 잊힌 친구이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감정을 못 느낀다니까요! 그런 찌질한 감정은 연기하기 어려운 부류에 속합니다. 제가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는 척하는 이유는 그녀의 감정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때, 큰 수술을 하기 직전에 그녀는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저를 여러 번 부르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죠. 그 과정을 견디게 해 준 대상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에게 말을 거는 것과 그 담당의사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그 의사와 동일선상에 올라서 기분 나쁜 게 아니라고 분명히 하겠습니다. 저는 단순한 스토커가 아니라니까요! 되려 저는 그 담당의의 반대 격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녀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투병 기간 동안 그 담당의를 사랑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해 줄 존재라서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인지, 절망적인 개인 병실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하얀 가운이 너무나 깨끗해서인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그녀는 그 담당의에게 의존과 적대시, 희망과 포기, 익숙함과 지긋지긋함 사이에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담당의도 이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는 일반적이어서 훌륭한 의사상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환자와의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 환자의 미래였죠. 그의 감정이 수술 능력에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전혀 관심 없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녀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환희를 가족들과 나눴고, 의사는 몇 번 경험했지만 언제나 새로운 자긍심으로 그날 밤 동안 행복에 절여졌습니다.


여기서 정말 순리에 통하면서 역겨운 일이 발생합니다. 완치가 되자마자 그녀는 더 이상 그 의사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다정한 의사들이 흔히들 말하죠, 의사는 환자와 만나지 않기 위해 힘낸다고. 아름다움이 감정을 현혹하는 말이지만, 그 바람은 의사들의 것입니다! 결코 환자가 챙길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녀는 그 공리를 어떠한 자각 없이 이행한 것 같습니다. 저 보세요! 그녀가 의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의사를 사람 대하듯이 하지 않고 있잖아요! 상징적인 영웅을 대하듯이 과할 수밖에 없는 존경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역설하긴 했지만, 그녀가 후안무치의 개인주의자라고 못 밖은 건 아닙니다. 그녀 또한 느껴요. 희미한 아쉬움을 말이죠. 그리고 그 의사 또한 느낍니다. 그 아쉬움에 희미한 아쉬움을 말이죠. 그런데 그 작은 감정들은 어떠한 행위도 추가적으로 자극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저의 유능함이 없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어떠한 불순물도 없는, 해피엔딩의 피사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감정도 못 느끼는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우습지만, 감정이란 얼마나 덧없고, 무가치한 것입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저에 대한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고, 이윽고 정신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정말 바람직하지만 가소롭다구요! 제 거대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지금도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데! 아, 제 흥분 섞인 열연이 좀 과했군요. 잠시 쉬도록 합시다.




취소합니다. 저는 유능해서 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하, 당신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렇다고 당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번 관찰이 거의 끝나갑니다. 당신이 못 즐긴 휴식이 크게 아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는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와 더 기분 좋은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데리러 오기로 했거든요! 당신은 또 저를 뻔한 스토커 보듯이 바라보고 있군요. 이제 설명도 피곤하니 일단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는 암에 걸리기 직전이었는데, 그녀는 그럴 줄도 모르고 술을 엄청 마시고 다녔죠. 그래서 병원에서 통보를 받았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당연히 동아리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하고, 병문안도 많이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발길들은 다 끊겼습니다. 이제 막 신입부원이었던 그녀와의 친분은 투병 생활의 짧디 짧은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꾸준히 그녀를 방문했고, 수술 직전에도 진심으로 응원해 줬죠. 그녀는 투병 생활이 끝나자 담당의사에게서 이 남자로 시선을 옮긴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찝찝한 건 저만 그런 걸까요? 우리가 좋은 게 좋은 거지만 불편한 주제를 갖고 사담을 늘어놓는 사이 남자친구가 도착했습니다. 멋진 차와 함께 말이죠. 그는 그녀가 회복될 날을 동기 삼아 열심히 살았나 봅니다. 저 차의 광택이 그녀가 수없이 꽂은 링거 바늘로 인해 생겼다는 사실을 되짚어보니 상당히 수단적이지 않나요? 아무튼 그들은 드라이브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밝은 햇살을 차량 유리를 통해 일부만 맞으면서 조금씩 바다와 가까워집니다.




좀 이상한 타이밍에 끊겼죠? 저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 그 어떤 때보다 분노를 통감합니다. 그녀는 그와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저를 언급하더군요. 그리고 그 말에 남자도 동의하면서 행복해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무슨 싸구려 마약도 아니고, 왜 저의 존재를 언급하고, 무시하며 치워버리는 것만으로 그렇게 행복해지는 걸까요? 왜 저를 마지막으로 콕콕 찌름으로써 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종국에는 저와 다시 만날 작자들이 말입니다. 순간의 감정으로 불가결한 진리를 잊으려 하는 저 안일한 태도가 저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 제가 그러고도 그녀의 친구냐구요? 글쎄요…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사용하는 모든 표현은 차선택입니다. 제가 그녀를 친구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당신 같은 사람들의 딱딱한 언어와는 거리가 먼 존재인 거죠. 오늘은 이쯤에서 끝낼까요? 다음번이 마지막이니 당신을 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없는 사이 저 연인들을 관찰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저들이 짙고 농후한 감정에 젖어, 여행길을 관두고 저녁 때도 안 된 상황에 모텔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저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일찍 들어간 모텔을 호텔처럼 쓰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다음날도 고속도로에 오르지 않는 그 자동차 뒷바퀴를 응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흥분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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