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a > Heraklion Port
아래에 한꺼번에 적겠지만 이 숙소는 단점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숙소 중에 이곳을 제일 좋아했다. 그 많은 불편했던 점은 나중엔 다 잊어버리고, 비몽사몽 나와서 찬바람을 맞으며 이 풍경을 바라보던 새벽만은 오래도록 기억하겠지.
파란 현관문과 노란 바닥의 조화가 이렇게 예쁠 줄이야.
어쩐지 이날은 유난히 체크아웃하기 싫더라니.
그다음 숙소가 최악이 될 줄을 예감하고 있었나보다…
이곳이 2층 화장실.
이런 게 바로 내 방 거실(!)인 걸까…?
내 방 부엌…을 끝으로 내 방 투어 완료.
1층 부엌과 거실, 도아의 방. 툰의 방 사진은 안 찍어서 패스.
첫날 밤에 요긴하게 썼던 자쿠지. 자쿠지를 사랑하는 도아는 둘째날 밤에도 혼자 써서 뽕을 뽑았다.
통한의 체크아웃.
이곳은 툰에게는 최악의 숙소였다. 나도 납득할 만큼 단점이 많은 곳이다.
1. 주차장에서부터 가는 길에 오르막과 계단이 많아 캐리어를 들고 나르는 난도가 높다.
체크인할 때는 호스트가 도와주지만 체크아웃할 때는 알아서 가야 한다. 이 길 자체가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전형적인 유럽의 돌길이어서 캐리어의 바퀴가 상할 위험도 있다.
2. 숙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도아를 두 번 올라오지도 못하게 만들고 툰에게 부상을 입힌 그 무시무시한 계단. 1층과 2층이 분리된 게 장점이지만, 2층으로 캐리어를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어서 캐리어가 제일 가벼운 사람이 2층을 쓰게 되어 있다. 그게 나여서 다행이었다.
3. 이렇게 큰 숙소에 드라이기가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1층과 2층을 따로 쓰는데!
내가 쓰고 나서 이렇게 밖에 내다놓으면 툰이 올라와서 가져갔다. 다음날 또 내가 가지고 올라가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갬성 의자를 당근하시고 그 돈으로 드라이기를 하나 더 비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툰의 방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진다든지 도아의 방의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든지 하는 문제가 자잘자잘하게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저 세 가지였다. 특히 툰이 다친 다음날 체크아웃하느라 내 캐리어를 내려줘야 했을 때는 그냥 내가 내 캐리어를 계단 아래로 밀어서 굴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계단은 호스트 쪽에서도 주의를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도르래를 설치해서 캐리어만이라도 실을 수 있게 해주든가…
이 모든 불만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바처럼 나는 이 숙소가 가장 좋았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자쿠지, 조용한 새벽에 천천히 밝아오는 산토리니의 하늘, 그런 게 이 숙소의 기억이 될 거다.
마지막날의 일정은 피라마을 돌아보기.
여기가 입구인 줄 모르고 처음에 좀 헤맸다. 그냥 사진 찍는 용도의 인스타 핫플레이스인 줄 알았는데… 여기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식당이 나온다.
우리의 자리는 검은 가방이 놓여 있는 이 앞 테이블인데 저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금방 나갔다. 저 많은 빵에 손도 안 댄 것 같았다. 덕분에 혼자 이걸 다 먹는 컨셉의 사진이 나왔다.
이때 찍은 사진. 이렇게 파랄 수 있나. 떠나는 날인데 이러면 어떻게 가라고.
도아의 오렌지주스. 한화로 만 원 가까이 하는 가격이라 뭐가 이렇게 비싸? 했더니 작은 과육이 씹히고 생과일을 착즙한 오렌지 그대로의 맛이었다. 지금 당장 들이키고 싶군…
툰의 프레도 카푸치노.
도아에게 납작복숭아를 먹이겠다는 미션 외에 나에게는 또 툰에게 프레도 커피를 먹이겠다는 미션이 있었는데, 여기서 대성공했다. 나는 카페인 섭취가 금물이라 크림만 살짝 먹어봤는데 크으, 말해 뭐해. 여기 가면 꼭 이 커피를 마셔보길.
하지만 나의 과일요거트도 먹어야 한다. 그리스가 요거트로 유명함에도 식당에서 후식으로 몇 번 나온 것과 마트에서 사먹은 것 외에 식당에서 온전한 메뉴로 시켜먹은 건 처음이었는데 더 먹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과일도 어찌나 맛있는지. 저 복숭아가 너무나 달아서 도아는 마트에서 납작복숭아는 이만 포기하고 일반복숭아를 사 먹자고 했고 나는 납작복숭아 일반복숭아 다 먹게 해주겠어 하고 칼을 갈았다. 도아는 안 들리는 척했다.
아테네의 오믈렛을 추억하며 시켜본 오믈렛. 맛있었다. 아테네의 오믈렛이 아니었을 뿐…
그러나 여기의 메인은 팬케이크! 여기는 팬케이크가 진짜다.
저 알맞게 구워진 베이컨과 푹신한 빵과 흘러내리는 치즈… 이런 팬케이크는 어디서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오믈렛을 먹을 때마다 아테네를 생각하듯이 팬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산토리니를 생각하게 되겠지.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피라마을의 전경이 내다보이던 뷰.
다시 봐도 날씨가 어쩜.
툰은 최고의 식당을 고를 때 낙소스의 첫 식당과 이곳 중에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 많은 해산물과 고기를 다 제치고 브런치 카페를… 맛집 담당자로서 약간 허탈해지는 발언이었지만 그만큼이나 그 커피, 요거트, 팬케이크와 이 뷰는 다 최고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왔다고 해서 나는 그곳이 나의 로망 도시라는 걸 고백하며 부럽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나라의 브런치 카페에 앉아 옆 사람을 또 부러워하다니. 나는 내 작은 자취방에 돌아와 이때의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데 말이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는 젊으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거야. 그 언제가 언제일까요, 지금쯤 뉴욕에 계실 할아버지. 인생은 타인과 과거의 자기 자신까지 부러워하는 일의 연속인 걸 알아도 저는 할아버지가 부러워요.
이날은 간만의 모노스 데이였다. 브런치를 먹고 나와 헤어져서 돌아다녔다.
이 동네 특성인지 도로는 바다에 접해 있고 도롯가의 카페나 호텔은 바다를 향해 열린 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정말이지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그 기분.
호텔 입구가 이렇게 천국의 문 같을 수 있다니.
여기서도 마그넷을 열심히 사고 다녔다. 고르기 너무 어려워서 고민하는데 마침 도아가 지나가다 마주쳐서 골라주고 갔다. 이런 게 모노스의 맛.
사지도 못하는 건 왜 이렇게 많이 찍었을까…
블로그에서 추천 후기를 보고 찾아간 곳. 북스토어가 맨 앞에 있지만 책은 한 귀퉁이에만 있고 사실상 기념품 가게다. 후기대로 그동안 다녔던 곳 중에 이곳의 가격이 제일 저렴했다. 오일과 크림 같은 화장품도 많아서 그리스에서 살 수 있는 기념품의 총집합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마그넷을 두 개 샀다.
세상 힙한 맥도날드.
여기서… 또 내 취향의 마그넷을 발견했는데… 그래도 고민돼서 단톡방에 올려서 투표까지 받아서 마침내 결정했는데… 계산대에 가져갔더니 딱 50센트가 모자라서 못 사고 나왔다.
나는 핸드폰이 고장난 이후 트레블 월렛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툰에게 현금을 조금씩 빌려 쓰던 처지였다. 50센트 모자라서 못 샀다고 말했더니 툰이 빌려주겠다고 찾아왔다. 별점 5점 주고 싶은 찾아가는 대부업체 서비스.
…그 와중에 내가 지도 위치를 잘못 보내서 다른 데로 가게 했다. 한참을 서로 님 어딨어 넌 어딨어 하다가 다시 제대로 보내서 겨우 마그넷을 샀다.
모노스 타임을 끝내고 페리를 타러 주차장에 가는 길.
이날 도아는 새하얗게 입어서 또 완전히 김산토리니였다.
나는… 등산복 입고 꽃 사진 프사에 올려놓는 이모.
이때는 평소보다 더 여유 있게 선착장에 갔다. 우리는 매번 도시를 떠날 때마다 무슨 일이 터지곤 해서 이번엔 좀 기다리더라도 더 일찍 가기로 했다.
이렇게나 화창한 피라마을을 두고 언덕을 돌아돌아 항구로 내려왔는데… 저기 보이는 페리는 우리가 탈 페리가 아니었다. 체크인 정보를 받은 메일로도 별도의 연락이 와 있지 않아서 페리 회사 오피스를 찾아갔더니 그제야 한 시간이 연착됐다고 말해주었다.
그리스 페리가 연착 많은 거 아니까, 마지막 페리에서 겪은 것까지는 괜찮다 이거야. 그런데 왜 하필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게 하겠어! 하고 만반의 준비로 더 일찍 간 항구에서!
심지어 낙소스의 항구는 시내가 바로 앞이라 연착되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데 산토리니의 항구는 그저 항구였다. 대합실 내의 화장실은 유럽답게 1유로의 요금이 있었고 우리는 돈을 쓸 거면 카페에서 쓰자고 합의를 봤다. 밀크셰이크는 물 탄 듯 밍밍한 맛이었지만 대합실보다는 편안한 자리와 화장실을 덤으로 얻었다.
하 짜증나… 하고 앉아 있다가도 이런 거 하나를 보면 귀엽다고 찍었다.
볕에서 일광욕하는 도아의 키링 인형.
툰과 도아의 선물 개봉식. 도아는 내가 문이 있는 마그넷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알아차리고 나중에 바꿔주었다.
한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린 끝에 페리를 타러 갔다. 연착 때문에 마지막엔 좀 당황했지만… 나는 산토리니에 있는 내내 좋았다. 아테네와 낙소스에서는 여러 시행 착오를 겪고 이곳에서야 비교적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 핸드폰의 카메라와 정들면서 저기 가봐 저기 서봐를 자주 하게 된 곳도 여기서부터였다.
원래 나의 계획은 헤라클리온에 도착하자마자 렌트를 하고 항구에서 노을을 보고 식사하러 가는 거였는데, 연착으로 인해 이 계획이 다 어그러졌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불타고 있는 것처럼 새빨간 창밖을 보고 지금 당장 해가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여기서라도 봐야겠다, 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과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내가 좋은 시야에서 노을을 볼 수 있는 막차를 탄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이걸 보라고 동행인들을 데려올까 했지만 이 자리는 한 번 벗어나면 다시 차지할 수 없는 자리였으므로 카톡만 보냈다. 그러나 배 안에서는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나만 이 노을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내 앞에는 딱 한 명의 할아버지가 서 있었는데 비스듬히 비켜서서 나를 비롯한 뒷사람들이 이 풍경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덕분에 이 해가 완전히 바다에 잠길 때까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내 뒤에 있던 사람은 나에게 아이폰을 내밀며 이 풍경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열심히 찍어주는 한국인답게 세로로 찍어주고 가로로 찍어주고 확대해주고 난리부르스를 떨며 찍어줬다. 내 것보다 열심히 찍어준 듯…
그러니 아쉬운 건 노을이 아니었다. 페리에서 노을을 본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됐으니까.
문제는 식사였다. 항구에 도착해 렌트를 하고 미리 알아놓은 식당으로 갔더니 만석이었다. 플랜 B까지도!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때는 유럽 사람들이 한창 저녁을 먹는 시간대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페리나 렌트가 어떻게 될지 몰라 예약도 불가능했고(심지어 정말 연착돼서 예약을 해도 어차피 시간 맞춰 올 수 없었다…) 그냥 워크인이 답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식당에 우리도 줄을 섰는데, 얼마 후에 앞 사람들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빠져서 우리가 1순위가 됐다. 그래서 한 테이블만 일어나면! 들어갈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정말이지 앉아 있는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 사람들도 아마 한참을 기다리다 못 버티고 떠난 듯했다.
결국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식당에 들어왔다. 희한하게도 여기는 건물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 천막을 쳐 놓은 곳이었다. 비가 올 땐 어떻게 하려나.
음식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맛집 담당자이자 계획러가 좀 우울했을 뿐.
내 동행인들이 그리스에서 이런 흔해빠진 피자와 파스타를 먹게 하다니…
흔해빠진 피잣집에서도 나오는 디저트.
이렇게 세 개씩 나오는 작은 디저트는 어딘가 귀여운 맛이 있다.
우리는 음료를 마실 때나 디저트를 먹을 때는 짠을 자주 했는데 이때 툰이 눈치없이 먼저먹으려 해서 혼났다. 짠 하고 먹으라고요.
그 와중에 그대로 들어가긴 아쉬워서 근처의 크레페집에서 크레페를 먹었다. 딸기 크레페와 크레이지 크레페. 엠앤엔즈 몇 알이 귀엽게 올라간 이 크레페의 이름을 왜 크레이지라고 지어놨는지. 안에 초콜릿과 오레오와 쿠키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거 먹는 사람이 미친 사람은 아니다. 행복한 사람이지. 달지 않아서 좋아요, 같은 거 먹고 당 충전했다고 하는 한국인들 이거 보고 다 반성해야 한다.
진정한 당 충전을 하면서 쉬고 있던 중에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큰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복면을 쓴 무리가 뛰어가고 경찰들이 그 뒤를 쫓았다. 자정에 다다른 한밤중이었고 우리는 이제 막 이 섬에 도착한 외국인이었다. 당장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렇게 자정 넘어 체크인을 했더니 한순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이 숙소는 도아와 내가 이층 침대를 나눠써야 했다.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할 기력도 없어서 거실의 소파베드에서 잤다.
방은 작은데 거실은 너무 넓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감았는데 기절할 것처럼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어두운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오던 때의 기분이 남아 있었다. 이상한 하루였어. 그러니까 내일은 나아질 거야… 그게 마지막 생각이었던 듯하다. 때로는 인간이 다음날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