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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Feb 04. 2024

231002) 헤라클리온 2일, 하니아 1일


하룻밤 잤던 소파베드. 여기서는 1박만 한 게 다행이었다. 이틀을 이렇게 잘 순 없었을 거다.





우리의 숙소는 하나같이 뷰가 좋았다. 숙소 담당자 도아의 미감은 늘 틀리지 않지.






이것도… 바다뷰라고 할 수 있을까…





보이긴 보이니까…






그것보단 그냥 이 평범한 동네의 풍경이 좋았다.





내부는 다소 인간미 없는 대리석 인테리어. 도아의 방과 툰의 방도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사실 귀찮아서 안 찍었다.)


이렇게 무난해보이는 이 숙소를 나에게 최악의 숙소로 만든 점은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점. 겉으로 보기엔 개미새끼 하나 없을 것 같은 집인데도.


툰이 체크아웃 이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내가 씻고 나온 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세면대 아래에서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내가 씻는 내내 그 바퀴벌레와 화장실 안에 같이 있었다는 호러 실화… 아니 그 많은 목재로 된 집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바퀴벌레를 이렇게 새하얀 대리석 집에서… 심지어 새끼여서 밖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없었다. 이 집에 드글드글했다는 얘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는 1박만 한 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체크아웃을 하면서 터졌다. 우리가 이렇게 희희낙락 거울 셀카를 찍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나오던 툰이 문을 닫고서는 열쇠가 어딨냐고 물었다.


열쇠… 그놈의 열쇠. 첫 숙소에서부터 근교로 가던 길을 돌아오게 만들었던 그 존재.


툰은 우리가 문을 열고 나가서 열쇠를 가지고 나간 줄 알고 문을 닫았는데, 열쇠는 현관문 안쪽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이 문은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문이었다. 그동안 묵었던 대부분의 숙소가 닫고서도 온갖 방법으로 잠가야만 잠겨서 그렇게 번거로웠는데… 왜 하필 이 숙소에서. 어떻게 딱 하루 묵은 숙소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별 수 없이 바로 호스트에게 연락했고 호스트는 열쇠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은 친절하게 이 문은 복잡한 문이어서 여는 데 60유로가 든다고 알려주었다. 건물 입구의 문을 가리키며 이런 문은 단순해서 20유로면 여는데 그 현관문은 훨씬 어렵다고. 건물 입구 문은 몇 대 차면 부러질 것처럼 생겼는데 그 현관문은 밖에서 불나도 모를 것 같은 모양새긴 했다.


이렇게 60유로를 불태우고… 피눈물을 흘리며 숙소를 떠났다. 며칠 뒤에는 한 명당 60유로가 넘는 돈을 내게 될 줄은 모르고 말이지…






이날은 프리벨리 비치에 들렀다가 하니아에 가는 일정이었다. 점심을 먹기가 빡빡해 차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여기는 샌드위치를 샀던 가게 앞 분수대.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예뻤지만… 몰라 나 헤라클리온이랑 안 맞는 것 같아… 하면서 도시를 벗어났는데 말이지.





Phyllosophies


이게 바로 혼파망일까…?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툰을 위해서 프레도 카푸치노를 샀는데 의사 소통에 오류가 있었는지 따뜻한 커피가 나왔다. 아이스로 재주문을 하기에는 툰이 차 댈 곳이 없어서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어 급하게 나와야 했다. 식혀서라도 마시려고 했으나… 툰이 티셔츠와 바지에 확 엎지르는 일까지 일어났다.


체크아웃하면서부터 터진 사고에 다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우리는 그 길로 프리벨리를 포기했다. 한껏 흔들린 이 사진이 그때의 우리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저 어쩔 줄 모르는 채 매달려 있는 곰돌이까지도…






하니아의 숙소에 다다랐을 때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이때부터 모든 게 편해졌다. 진짜로 헤라클리온이랑 안 맞았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하니아가 너무나 아름다워보였다.


여기서도 납작복숭아를 찾아헤맸다. 도아는 나에게 그만 찾으라고 말하다 지쳐서 이제는 찾아도 안 먹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건 더 이상 도아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서 모노스 데이에도 슈퍼만 보이면 들어가서 과일 코너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곳에 일반 복숭아뿐 납작복숭아가 보이지 않아서 더 오기를 불태우게 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는 납작복숭아 찾기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가는 걸음.


처음에는 이 하얀 재킷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상체만이라도 장군감으로 보이게 해줘서 좋다.




  


차 댈 곳도 없이 빡빡한 헤라클리온의 시내에 있다가 한적한 곳에 오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기도 했다. 헤라클리온에도 이런 곳이 있기야 하겠지만… 난 다음에 크레타에 가도 하니아에만 갈래…






그렇게 하니아의 숙소에 체크인했다.


이곳을 더 고대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테네의 두 번째 숙소 이후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이어서 우리의 캐리어를 도맡아 날랐던 툰도 쉴 수 있었고, 산토리니와 헤라클리온의 숙소에는 세탁기가 없어 계속 빨래를 못했는데 여기에 세탁기가 있어서 체크인을 하자마자 미뤄온 빨래를 할 참이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드디어 빨래! 하면서 갔는데… 일단 엘리베이터는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고장 나 있었다. 환장할 노릇. 


2층이라고 해서 또 툰이 우리 캐리어를 다 가지고 메시지에 적혀 있었던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무리 열어보려고 해도 열쇠가 안 맞았다. 생각해보니 유럽은 0층부터 시작해서 2층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3층이었다. 남의 집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문을 열려고 시도하던 중에 나는 복도 불을 켜는 형광등인 줄 알고 버튼을 눌렀다. 띵동, 하는 커다란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게 초인종이었던 거다. 도아와 툰이 어찌나 기겁을 하던지. 아니 진짜 형광등 버튼처럼 생겼는데. 그 집은 비어 있었던 데다 알고 보니 호스트 집이어서 더더욱 다행이었지만.


그 캐리어를 가지고 또 한 층을 더 올라가서야 체크인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먼저 빨래부터 하려고 했더니 이번엔 세제가 없었다. 환장 환장 대환장. 호스트에게 연락하니 다음날 가져다준다고 해서 또 하루를 기다렸다.


빨래는 다음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수리가 안 됐다. 무려 5일을 있었는데. 그 큰 엘리베이터를 두고 매일을 걸어다녔다… 체크아웃하는 날에는 호스트가 와서 짐 내리는 걸 도와줬다. 





그래도… 예뻐서 용서됐다. 비앤비는 단점 백만 가지를 하나의 장점으로 승부하는 듯하다.





나와 도아의 방. 이 침대도 붙어 있었는데 떨어뜨려 퍼스널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또 문제는 이 화장실. 이 방의 문을 열면 바로 이 모습이다. 저 간살 파티션 옆에 보이는 게 변기 맞다. 세면대 옆이 샤워실 맞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문이 아예 없는 게 맞다. 프라이버시는 그렇다치고 여기서 씻으면 그 습기를 어떻게 하라는 거지…? 아니 프라이버시도 그렇다 칠 게 아니다. 나와 도아는 매번 방에 들어올 때마다 조심해서 들어왔다.





씻는 건 당연히 이 공용 욕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명이 약간 정육점을 연상시킨다. 저 어메니티가 좋았다. 도아가 사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못 찾았다고 했다.






툰의 방.





잠깐 쉬니 해가 지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이때부터였을까요… 하니아와 사랑에 빠진 게… (처음부터였다는 뜻이다.)

우리의 숙소 앞이다. 차로 지나올 때부터 여기 뭐야! 이따가 사진 찍자! 하고 급하게 캐리어 챙겨서 들어갔는데 작정하고 나오니 이렇게 예쁠 수가.






하니아에 오자 귀신같이 하니아 주민 김하니아씨가 된…




 


오늘 이사 와서 두리번거리는 사람.





이런 동네라면 이사 와서 두리번거릴 만하니까(의식의 흐름).





동네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우리에게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아침부터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 집을 보면 괜히 더 반갑다.


여기서 사진을 찍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꺅꺅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녕하세요, 하는 서툰 한국말이 들렸다. 바로 이 집의 저 불 켜진 창문에 네 명 정도 되는 자매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싸랑해요 하면서 손가락 하트를 날리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냥 사진을 찍고 있었을 뿐인데… 아직도 그 애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bts 같은 k팝 팬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여기 오는 관광객들마다 아이돌 체험을 시켜주는 놀이가 있는 게 아닐까…?


얼떨떨하게 손을 같이 흔들어주고 또 우리끼리 놀다가도 너무 강렬하게 느껴지는 눈길에 뒤를 돌아보면 꺅꺅 손을 흔들었다. 아이돌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면 하니아의 이 빨갛고 하얀 주택가를 찾아가보길… 너무 신기해서 도아가 캠코더로도 찍었는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결국 우리가 사진을 다 찍고 떠날 때까지 네 자매는 저 창문을 떠나지 않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사랑한다고 소리쳤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돌 체험이 아니라 이 정도면 국가에서 지령을 받은 게 맞지 않을까… 관광객의 행복지수를 높이라는 좋은 지령. 






이런 강렬한 환영 인사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도로에 걸린 가랜드마저 괜히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의도치 않게 LA 감성으로 찍어준 툰.

(사실은 찍고 나서 발견…)







전날 지옥 같은 웨이팅을 경험하고 이날은 저녁 먹을 식당을 예약했다. 다행히 당일에도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항구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이라 경치가 좋았다. 우리는 쉬다 나오느라 해가 진 뒤 도착했지만 여기서 노을을 보며 식사해도 좋았을 것이다.





PALLAS


이 식당의 백미는 맨 아래 사진의 위쪽, 오래 구운 돼지고기. 단독 사진도 없지만… 식감은 족발인데 맛은 한국의 갈비찜과 비슷하다. 그리스에서 찾은 고향의 맛이었다. 






동행인들이 논알콜 칵테일을 주문했다. 논알콜에도 소량의 알콜은 들어 있어서 이럴 때마다 나는 늘 구경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0% 알콜프리 칵테일이 하나 있어서 주문해보았다. 정말 그냥 음료수였고 입맛에도 잘 맛았다.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셋 다 칵테일을 시켜서 기분 좋게 먹고 마셨다. 






반나절 전에 우리는 어처구니 없이 돈을 날리고 제일 가고 싶었던 비치를 포기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크레타 섬을 묵묵히 달려왔다. 그게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아침과 낮에 무슨 일이 있었어도 밤에 무사하고 안녕하다는 건 선물이다.

복면 무리와 경찰의 등장에 서둘러 들어갔던 전날 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치고 한가롭게 숙소로 귀가하는 길에 툰이 작은 과일가게를 발견했다. 가볼까? 가볼까? 차 세워! 세워봐! 흥분해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우리를 포기시키기도 지친 도아는 난 안 가! 하고 차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러든 말든 우리는 냅다 달렸다. 





세상에, 2주 가까이 그리스의 온갖 마트를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던 그 납작복숭아가!

마지막 도시에서!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


심지어 이 가게는 그때 문을 닫고 있었다. 툰은 너무 급하게 오느라 돈도 안 가져와서 다시 차에 다녀와서 계산했고, 우리를 마지막으로 이 가게는 이날의 영업을 종료했다. 





납작복숭아 미션 완료.

이렇게 귀한 용안을 뵙습니다.


납작복숭아 세 알에 일반복숭아에다가 자두까지 샀는데도 이 모든 게 4.5유로라는… 귀한 용안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 한국에서는 복숭아 한 알에 사오천원 하는데. 손을 부들부들 떨며 깎아보았다.


그 맛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입안에 은은한 향기가 남는 맛. 그 맛을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건 식탁에 둘러앉아 흰 과육을 잘라 나눠먹고 아무 걱정 없이 떠들었던 평온한 밤 덕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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