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민족의 이름으로 2/5

by 화가 경영학자


20210605_074011[1].jpg Fashion Show Series no.6 Louis Vuitton

2023/6/11


제가 어렸을 때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두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일본인들이 더 잘하고 더 옳다는 인식이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의 기를 꺾기 위해 봉우리마다 박아 놓은 쇠기둥만큼이나 굳건하게 한일 양국 사람들의 가슴에 박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80년대에 더욱 굳건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미국을 능가했다는 일본의 경제력에 미국에서도 일본을 배우는 것이 경영학계에서 하나의 풍조가 되었습니다. 저에 있어서 일본은 선망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본과 연결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습니다. 한두 학기 정도 일본에 가서 강의나 연구를 할 기회를 찾던 차에 일본 외무성에서 아시아지역 교수를 일본 내 대학으로 초청해 교류와 친선을 도모하는 장학금 프로그램과 연결되었습니다.


2000년 저와 연결된 대학은 명문 국립나고야대학 국제대학원이었는데 지원 조건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일본 정교수의 월급, 왕복 항공료, 매월 다 쓰기 어려운 책구입비, 2회의 국내여행비 등이 지급되고 연구실도 제공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걸어가는 기분으로 일본에 도착했는데 오래지 않아 기분 좋은 교류와 친선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마주치는 그 어느 누구도 싸늘한 표정으로 사무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그 대학의 교수와의 접촉은 아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냥 일본에 돈 받고 와서 유배생활을 하는 것이 제 일본에서 경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보다 가까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관찰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구조적이고 깊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조용함이라는 베일 아래 집단성의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조용하고 가려진 폭력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제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제공한 융숭한 대접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는 거의 매년 한두 번씩 업무나 관광으로 일본을 여행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두 나라 간에 교류가 많고 여행을 많이 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가까우니까 부담 없고 비슷하니까 편안하고 또한 다르니까 재미있는 여행이 됩니다. 즐거운 여행이니 그 나라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고야에서의 실망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격차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고야의 보수적 지역 특색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종적으로는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빼면 장학금 같은 노력 없이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도쿄 여행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정답고 즐거운 도시입니다. 마침 열린 마티스 특별전과 수많은 작가 회원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미술 클럽 정기전도 가고,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마티스 작품 두 점 함께 올립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저의 직간접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늘 소개하는 1.5세 재미 작가 이민진 씨의 소설 파친코는 일본사람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한국사람의 성격적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한국 할머니 이야기 같은 소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고 TV드라마로 만들어져 히트 쳤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한국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재미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을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지하철 통근 시간에 읽고 있는 중인데 가슴 조이며 눈물을 참으며 읽다가 매번 내릴 역을 놓칠 뻔하다가 어제는 드디어 지나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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