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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by 제법 Dec 18. 2024

나는 10여 마리의 남의 개를 키우는 소위 랜선 집사이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반인반수의 통계를 보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귀엽거나 잘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금수들은 특별히 더 귀엽다는 특징이 있다. 퇴근 후 녀석들을 둘러 살피는 시간은 머릿속에서 회사를 완전히 차단하는 스위치 역할을 했고 그래서 더욱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크거나 작고 영특한 털뭉치들은 보호자의 말을 잘도 알아듣는다. 간식 봉지를 부스럭부스럭 뒤적이면 챱챱챱 소리를 내며 어느새 주인 앞으로 달려와 꼬리꼽터를 풀가동하며  앉아 있다. 몇몇은 얼굴에 달고 있는 수제비 같은 귀를 펄럭이면서 뛰어온다. 나라면 그 모습에 반해 뭔가를 부수지는 못할 망정 낚아부아앙 배방귀 하든가 간식 봉지라도 통째로 풀어헤쳐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화면 속 진짜 집사들은 일용할 한 알의 간식을 들고는 말한다.

"기다려"

그러면 털뭉치들은 앞발은 가지런히, 눈은 착하고 동그랗게 주인을 응시해 결국에는 틀림없이 간식을 얻어낸다. 나의 셀럽 강아지들은 다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 과정을 능숙하게 해낸다. 특히 S견은 웹툰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적이 있는 꽤 유명한 흰색 수컷 포메라니안이다. 그는 "기다려" 한마디에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주인도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모범을 보여 당당히 지역순찰견으로 합격하였다. 늠름한 자태로 지리는 매력에 공무원 스펙이라니 알파견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제야 몸을 들어 저녁으로 먹을 냉동 만두를 꺼낸다. 세... 개 정도? 늘 모자라서 한판 더 돌리게 되지만 다이어터로서 처음부터 여섯 개를 먹을 생각을 할 수는 없다. 텅텅텅 바스켓에 무심하게 만두를 떨구고 에어프라이어는 180도 10분으로 맞춘 다음, 다음 영상을 시작한다.


P견은 리트리버와 진돗개 믹스인 걸로 추정되며, 새끼 때 드센 형제들에게 치여 가출했다가 현재의 주인에게 입양됐다. P견의 영상은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동화 같은 시골 풍경이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인데...


만두 익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 배가 고파진다. 핸드폰은 그대로 자리에 두고 에어프라이기 앞에 서서 조금 기다려보는데, 아직도 족히 3분은 남은 것 같다. 톡톡톡 초조한 검지가 연신 식탁을 두드리다 참지 못하고 바스켓을 당겨 열어본다. 익은 것 같은데? 한입 베어 물었더니 역시다. 겉뜨속차. 아직 속까지 다 데워지지 않았다.


때마침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기다려"


뱉을 수 없어 우적우적 만두를 씹으며 '인'생도 기다려가 됐을 때 비로소 보상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남은 만두를 내일까지 기다리면 어떤 보상이 주어질까? 견생을 교훈 삼아 오늘은 만두 한 알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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