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끊었다.
'끊다'가 외국인이 한국말을 어려워하는 이유로 꼽히는 표현 중 하나라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수영을 끊었을까 혹은 끊었을까.
수영을 시작한 건 순전히 D때문이다. D는 입사 동기로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이지만 운동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20대부터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골골거리는 타입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에 운동이란 옵션은 없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로 서로의 근황에 소홀한 몇 달 동아나 그녀는 수영에 푹 빠져 살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걷기 외의 운동을 한 것도 신통한데 돈 들여 운동을 하다니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D는 신입 때 200만 원 남짓되는 월급에 자취를 하면서도 월 100만 원씩 저축을 하며 허튼 곳에 -예를 들자면 헬스장에 가지도 않으면서 등록 자체로 위안 삼는- 돈을 쓰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어디가 크게 아픈 것과 싶기도 했지만 건강 상의 이유보다는 수영장이 어쩌구 강사님이 어쩌구 특히 수영 자체가 '재미'있다는 말이 D의 입에서 나왔다. 평소 우리는 헬스장의 런닝 머신은 지겹다 필라테스와 요가는 너무 정적이다는 등의 운동 두루 까기에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이였기에 D가 검증한 운동에 대해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겨울철이라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어렵지 않게 등록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수영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에 옮긴 적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수영복이었다. 수영을 처음 시도했던 20살 시절의 라떼만 해도 다들 원피스 수영복을 착용했다. 나는 하체비만이라 아무런 외부 텐션이 주어지지 않고 허벅지가 오로지 공기압에만 의존해 라인을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강습용 수영복은 특히 더 몸에 밀착하도록 탄력이 좋은 재질이다. 덕분에 상체는 보정 속옷처럼 어느 정도 잡아주는 반면 하체는 더 도드라져 껍질이 벗겨진 소시지처럼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2022년에는 원피스 대신 허벅지까지 덮는 5부 수영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졌다. 매무새를 신경 쓰지 않고 발차기를 마음껏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다리를 덮는 천쪼가리 하나에 빈약한 자신감을 보강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물에 들어가는 순간 얼굴만 동동 뜬 상태가 되며 물안경을 쓰고 있어서 비수영인이 보기에는 울트라맨 n명으로 점철되는 정도이다. 개인의 개성과 개별성은 굳이 화려한 수영복을 선택한 경우, 뛰어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기량을 가지고 있을 때만 드러났다. 알고 보니 종목 불문 운동만 하러 가면 주눅이 드는 내향형 비만인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나는 민폐 끼치는 것을 질색하기에 뒤에서 따라오는 다음 사람에 방해가 될까 봐 본의 아니게 죽을힘을 다할 수 있다.
물론 수영을 한다고 해서 한 달에 7킬로 감량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영을 격하게 하면 신체에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주어 지방이 연소되지 않는 듯했고 적당히 하면 입맛이 돌아 밥을 많이 먹게 되었다. 그래도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감량의 간증을 때때로 수혈하며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U자 형으로 양끝이 활처럼 구부러졌던 어깨가 펴지면서 전보다 건장해졌고 배가 살짝 들어갔나 싶을 때쯤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수영도 끊게 되었다.
어영부영 2년간 다른 운동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 다시 수영을 끊었다. 회사 사람이 없을 만한 수영장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리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했지만 돌고 돌아 내향형 비만인은 또 수영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