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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환승입니다

앙리 루소와 나, 그리고 꿈


꿈,  앙리루소, 1905

 

 깊은 정글 속,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이 쇼파에 누워 한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그리고 뻗은 손 끝엔 원숭이와 사자, 뱀이 등장한다. 야생적이며 몽환적인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앙리 루소이며, 이 그림은 바로 그의 걸작 <꿈>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작품 뒤에 놓여진 그의 삶 이야말로 ‘꿈’을 쫓는 여정, 그 자체인 것만 같다.  

    

램프가 있는 화가의 초상, 앙리 루소, 1903

 루소는 평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젊은 시절,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다 말단 공무원이 되었고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 다녔다.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별명이 ‘일요일의 화가’였던 그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적은 월급마저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주로 받은 평가는 비웃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프로작가로 인정하지 않고 아마추어 작가라 불렀다. 그가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탓에 주는 그의 그림이 주는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의 그림이 극찬받게 된 것 또한 그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동 시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던 원시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흐르는 그의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피카소조차 낯설고 싱싱한데다 원초적인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앙리 루소의 삶을 떠올리게 된 건 내 고민 때문이다.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고 있다. 무슨 글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시간 날 때마다 생각하며 집안일도, 수업 연구도 뒤로 한 채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내가 이렇게 글쓰기에 전념해도 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십 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초등교사로 살아온 내가 마치 내 것이 아닌 걸 탐내고 있는 느낌이다. 이래도 되는걸까?   


 뚱딴지같은 소리지만, 나는 환승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리고 다시 한 번 타야 하는 그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오던 익숙한 일 대신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여지껏 내가 해 온 노력이나 쌓아온 경력들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고 나는 또 초보가 되어 새로운 시작선 앞에 놓인 것만 같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 와 꿈을 쫓아 새롭게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조바심도 든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럼에도 루소를 생각하면 설령 내가 꿈을 쫓아 환승하더라도 살아온 시간과 쏟아 부은 노력, 체득된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진다. 마치 미술학도가 아닌 공무원으로의 과정을 거쳐온 그 만이 그릴 수 있었던 이질적이고 몽환적인 작품들처럼 삶은 환승하는 승객에게 한 번 더 승차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그의 지나간 시간과 경험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새로운 노선에 올라타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동안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간다. 어떤 방식으로 그곳에 다다를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엔 처음 택했던 노선을 고수하거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문항도 있을 터였다. 정답도 오답도 없는 그 기로에서 나는 다만 목적지를 향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나의 방향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예전에 만든 꿈 지도를 꺼내들었다. 내가 내 삶을 통틀어 닿고 싶은 곳, 나의 목적지를 적어놓은 꿈 지도엔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지원 센터 건립 그리고 10권의 책 출판이 쓰여 있었다. 계속 글을 써도 될까 고민하던 지금의 나는 꿈지도를 따라 꿈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맞는 방향이구나. 나는 더 이상 고민않고 계속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낯설지만 한 번 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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