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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신발은 신발장에

내 삶을 바꿔 줄 마법의 주문을 찾는다면

“비결이 뭐야?”

오랜만에 집에 놀러온 친구가 물었다. 나처럼 아이 셋을 키우느라 허덕이고 있는 육아동지였다. 

“어째서 애가 셋인데 이렇게 깨끗하지?”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대답하였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기만 하면 돼.”


 나에게도 현관이 물건으로 뒤덮였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직을 하던 시기였다. 처음 겪는 육아의 힘듦과 스트레스를 나는 쇼핑으로 풀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는 교구와 읽어줘야 한다는 책, 출산 후 변한 내 몸에 맞는 옷. 세상 모든 물건을 사들일 기세로 매일 주문하기를 클릭해댔고 덕분에 문 앞에는 택배 상자가 항상 쌓여 있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화면 속 멋진 옷과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 그저 그런 것으로 변해버렸다. 아무래도 다른 걸 또 다시 사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핫딜과 구매대행까지 손을 뻗어가던 어느 날,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엿보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거실, 여유가 느껴지는 옷장. 나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그들의 집을 처음 봤을 땐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왜 저렇게 살지? 그러나 그들은 미니멀 라이프가 자신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하였다. 마침 신혼집을 매매로 내 놓은 참이었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사람들은 집이 빨리 팔린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흉내나 내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도전한 구역은 현관이었다. 신발을 신발장에 들여놓기만 하면 되니까 제일 간단할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신발을 신발장에 들여놓지 않았다. 집에 들어올 땐 현관에 벗어두었고, 집을 나갈 땐 현관에 있는 신발 중 하나를 골라 신었다. 남편 또한 나와 비슷해서 우리 집 현관에는 늘 몇 켤레의 신발이 나와 있었다. 남편과 나의 크고 작은 슬리퍼와 출근용 구두, 뒷꿈치가 구겨진 운동화까지. 현관만 보면 우리 집엔 대여섯명의 어른들이 사는 것 같았다. 막상 나와 있는 신발을 들여놓으기에 신발장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굽이 너무 높거나 불편해서 안 신는 운동화, 앞코가 헤진 플랫을 비웠다. 나의 첫 비움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현관에서 뒹굴던 신발들을 들여놓았다. 현관은 금새 깔끔해졌다. 


 현관이 깨끗해지자 미니멀라이프에 아주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점차 다른 곳도 깔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옷장 가득히 들어있던 내 옷과 쌓여있던 교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옷을 비우고, 잘 쓰지 않는 살림살이들도 비워냈다. 비움은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텔레비전 수납장과 쓰지 않는 책상, 작은 가구를 비워냈고, 7단짜리 책장은 3단으로 바뀌었다. 물건들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집의 여백은 점점 늘어갔고 빈 벽이 보일 때마다 짜릿함을 느꼈다. 그렇게 대대적인 비우기가 마무리 될 무렵, 1년간 매매가 되지 않던 집이 기적처럼 드디어 팔렸다. 


 집을 모두 비워버릴 기세였던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쌍둥이들의 탄생으로 인해 브레이크가 걸렸다. 다시 육아를 시작하며 아이 물건이 정확히 두 배가 되어 집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커다란 구덕(제주전통 애기흔들침대)도 두 개, 보행기도 두 개, 아기그네도 두 개.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발만큼은 신발장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움과 정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새 둘째와 셋째가 다섯 살이 된 지금,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집은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 쇼파와 텔레비전 말곤 물건이 하나도 없어 말소리가 울렸던 거실은 아이들 작품으로 채워지고, 손님용 방으로 비워두었던 작은 방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선에서 나는 여전히 비우고 정리하고 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기 시작하며 내 생활은 조금씩, 그러나 많이 변화하였다. 우리 집의 물건들은 모두 정해진 자리가 있으며 예전처럼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잔뜩 사두거나 쓰지 않아도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없다. 그러면서 흐트러졌던 나의 삶 또한 정리가 되었다. 불필요한 관계들을 정리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비웠다. 앞으로 어떤 거대한 벽 혹은 과제를 만나더라도 나는 신발을 신발장에 들여놓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인생은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부터 변화가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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