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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나의 발작버튼 극복기

 어린 시절, 나는 육아 난이도 0을 자랑하는 순둥이였다. 넘어져도 웃고, 간지럼 태우는 손이 겨드랑이에 닿기도 전에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였는데 이러한 기질은 자라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스무살이 넘어서도 그 성향은 그대로라 전공 교수님은 나에게 긍정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만난 스트레스와 이해가 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상황, 막막한 업무들은 나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도 긍정의 여왕답게 모른 척하며 모든 걸 견뎌내고자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그 전엔 몰랐던 발작버튼이 삐쭉 하고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에 그 버튼은 뾰루지마냥 티 나지 않게 작은 사이즈였다. 하지만 여드름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점점 더 커져갔다. 특히 불합리하거나 차별을 느낄 때, 내가 무시받았다고 생각이 들어진다면 그 즉시 눌리곤 했다. 안타깝게도 버튼이 눌러질지언정 이제 막 사회초년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친구들을 모아 술을 마시거나 다른 동료들과 함께 분노한 마음을 나누는-속된 말로 뒷담화 하는 게 전부였다. 아주 가끔씩 버튼이 연속적으로 쉼없이 눌려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가 되어서야 살짝 굳은 얼굴과 딱딱한 말투로 드러낼 뿐 그 당시 나의 발작은 정작 그 원인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버튼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건 결혼 후 였다. 발작 버튼을 누른 상대방이 바로 내 옆에 있었고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입었던 옷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나가거나 사용한 물건을 제 자리에 두지 않았을 때, “니가 여자라서 모르겠지만”이라며 시대에 역행하는 말을 지껄일 때면 내 버튼은 그 즉시 눌러져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날카로운 말이 나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를 달래려던 상대방도 결국엔 같이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는 말처럼 한 번 눌려진 버튼은 그 다음엔 너무도 쉽게 눌러졌다. 또, 버튼을 누르는 힘이 크든 작든, 사사로운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간에 일단 한 번 눌러졌다 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와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내 버튼을 누르지 마. 

누구든 내 버튼에 손대지 말라고.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면 생각했다. 버튼을 누르는 이들이 좀 사라져 줬으면. 그럼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텐데. 왜 다른 이들은 자꾸 나의 버튼을 누르고 마는 것일까. 


 그 즈음 첫째의 1학년 입학을 핑계로 휴직을 결정했고 나는 당분간 나의 버튼이 무사할 것이란 사실에 안도하였다. 그리고 1학기가 지날 때 쯤,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버튼을 누르는 손이 항상 밖에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안에도 그 버튼을 누르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야 만 것이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들 중 어떤 사건이 내 버튼을 누를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자꾸만 그 일들을 반추하게 하더니 나로 하여금 그 버튼을 누르도록 교묘히 유도하였다. 그렇게 버튼이 눌러질 때면 작동상 오류가 발생했는데 발작의 원인이 과거 기억의 한 단면이었기 때문이다. 기억따위를 대상으로 남편에게 그랬듯 화를 내거나 분노를 쏟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때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해결되지 못한 나의 버튼 덕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고 무거워졌으며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과거의 내가 후회되었고 미래의 내가 행복할 거란 자신이 없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 언저리에 머물던 어느 날, 다이소에서 칭찬스티커를 사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연히 본 다람쥐 그림의 칭찬스티커가 마음에 들어 아이들 것과 별개로 구입했다. 그리곤 이 스티커를 어딘가에 붙이고 싶어 플래너를 꺼내 월간계획표를 펼쳤고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어느 칸에 붙이고도 여백이 남아 그 날 하루 내가 한 일을 간단히 적어봤다-‘글쓰기를 함.’ 습관처럼 매일 하던 글쓰기가 ‘참 잘했어요’가 붙어있으니 내가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뿌듯함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짬을 내어 내가 한 일들을 간단히 적고 어울리는 스티커를 고심 끝에 골라 붙여 놓았다. 사실 칭찬을 받을만큼 훌륭한 날은 없었다. 하지만 아주 귀여운 ‘최고에요’ 다람쥐 스티커가 그 날에 붙여져 있기에 나는 최고였다고, ‘대단해요’ 스티커가 붙여진 어느 날의 나는 대단했다고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중에야 이 작업에 ‘칭찬일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한 일을 기록하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해낸 나를 칭찬해 주는 것, 이게 칭찬일기의 전부다. 성실한 편은 결코 아닌데 쓰기 시작한 후로 하루도 미루지 않았다. 아니, 너무 좋아서 안 쓰고는 못 베겼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9월에 쓰던 칭찬일기


 이 칭찬일기를 쓰며 나의 발작버튼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달은 건 얼마 전이었다. 남편은 가끔 본인 뜻대로 안되면 짜증내거나 욱할 때가 있는데 그 날도 그랬다. 내가 약속에 늦었다는 이유로 보자마자 짜증을 내었다. 내가 늦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을 미리 전화로 설명했는데도 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득달같이 받아쳤을 것이다. 어쩌면 남편의 인내심 부족과 속 좁음에 대해 예전 일까지 들먹이며 다그쳤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속으론 오늘 칭찬일기에 남편에게 사과한 것을 적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냥 미안하다고 하였다. 물론 진심 100퍼센트의 사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억지로 하는 사과도 아니었고, 억울한 사과도 아니었다. 그냥 내 평온하고 잔잔한 생활을 유지하게끔 해주는 말이었다. 미안하다 말하고 나서 알았다. 나는 이제 발작버튼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버튼을 누르지 마라고 고래고래 외치던 예전의 나는 없다. 누군가 내 버튼을 누를까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던 나도 없다. 대신 자신을 다독이며 순간을 살아가고 나의 하루를 소중하게 기록한다. 그게 요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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