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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주정차 금지

더 이상의 주정차는 없다!

 왠지 몸이 무겁고 모든 게 귀찮아 지는 아침이었다. 연휴와 개인적인 일정으로 인해 열흘 만에 운동을 가는 날이었다. 혹시 아픈데는 없는지, 잊어버린 약속이 있는 건 아닌지 핑계 거리를 떠올려 봤지만 애석하게도 전혀 없었다. 못 갈 이유가 없어서 결국 체육관으로 운전하던 참이었다. 그동안 수백번은 지나다녔을 길 위에 주정차 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간혹 누군가 주정차를 하게 되면 뒷차들이 꼼짝 못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아오며 해왔던 나의 많은 주정차가 떠올랐다.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 여러 가지에 도전해 봤다. 장르도 제각각이라 성악, 우쿠렐레, 스쿼시, 도예까지 배울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시작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지껏 계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현재는 전혀 할 줄 모른다. 사실상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그것들을 배우기 위해 들였던 경제적, 시간적 지출은 아무 가치가 없어진 셈이다. 이 모든 게 바로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주정차를 한 까닭에서다. 어떤 사유에서든 일단 한 번 멈추고 나면 다시 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품었던 미래의 내 모습은 물거품이 된다. '우쿠렐레를 멋지게 연주하는 나', '땀 흘리며 스쿼시 시합에 열중하는 멋진 나'와 같이 내가 꿈꿨던 모습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대신 당근마켓에 내놔도 팔릴 법한 새 것 같은 우쿠렐레와 스쿼시 라켓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고보면 내 인생을 통틀어 단 한번도 주정차를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피아노다. 유치원에 다니던 일곱 살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십 여년간 계속 레슨받았다. 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단순했다. 그만두겠다고 할 때 마다 엄마한테 혼났기 때문이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 실력은 다들 엇비슷했지만 홀로 계속 피아노를 배운 탓에 시간이 지나자 나는 친구들 중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아이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점점 더 피아노를 좋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그만두긴 했지만 그 뒤로도 피아노는 수시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중창반 연주자로 활동하며 받았던 상은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이 되었고 교대 수업에서도 음악 실기 만큼은 항상 만점이었다. 무엇보다 클래식을 즐기고 음악적 소양을 기르며 내 삶의 질이 한층 더 올라갔다. 이 모든 게 멈추고 싶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던 덕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멈추었던 다른 것들도 만약 멈추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다. 

작년 가을, 아이들과 함께 한 연주회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폰더씨를 존재할 뻔 했지만 결국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모아놓은 장소에 데려간다. 그 곳에는 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물건뿐만 아니라 미처 태어나지 못한 폰더씨의 아이까지 있었다. 어째서 인간들이 이것들을 갖지 못했는지 따지는 폰더씨에게 가브리엘은 위대함까지 가는 길에 장애물을 만나면 그만둬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들이야 말로 당신의 미래가 당신의 어깨 위에 걸린 바로 그 순간입니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앤디 앤드루스, p. 211)

 

 어떤 일이든지 간에 내 목숨과 직결된 게 아닌 이상 멈추거나 그만두어야 할 수 백가지의 이유와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바빠서,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싶어서, 약속이 있어서. 하지만 이 모든 것들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것이니 한다는 단순한 원칙 하나만 끌고 간다면 가브리엘이 말한 위대함까지는 몰라도 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작은 보물 하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는 보물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원석들을 가만히 살펴 본다. 돌멩이처럼 보이는 이것들 중 어떤 것부터 골라 조금씩 갈고 닦아볼까. 무엇을 고르든 일단 그 것 하나는 명심 해야 한다. 빛이 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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